과시욕까지 삼킨 스포츠카의 질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9.0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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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1억원 넘는 외제도 판매량 급증…30~40대 전문직이 실수요층

뉴 아우디 RS5

날렵한 모양새와 폭발적인 주행력을 자랑하는 자동차가 스포츠카(sports car)이다. 일반적으로 차체 높이가 낮고 2인용이며 많은 짐을 싣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대중적인 차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 소비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서서히 스포츠카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스포츠카 시장 규모와 관련한 통계는 없다. 스포츠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은석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차장은 “스포츠카를 정의하는 기준이 모호해서 시장 규모나 판매량에 대한 통계를 잡지 못한다. 예컨대, 디자인은 스포츠카가 아닌데 고성능 자동차라고 해서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애매하다”라고 설명했다.

한 업체의 스포츠카 연간 판매량으로 이 시장의 성장세를 가늠해볼 수 있다. 독일 자동차업체인 아우디(AUDI)가 지난 2007년 국내에 선보인 스포츠카(R8)는 첫해 12대 판매에 그쳤지만 해마다 판매량이 늘어나 지난해에는 73대가 팔렸다. 올해에도 7월까지 41대가 판매되는 등 지난 6년 동안 2백58대가 새 주인을 찾았다. 국내 소비자들이 스포츠카로 시선을 돌리자 외국 자동차업체들은 스포츠카를 쏟아내고 있다.


왼쪽부터 BMW Z4 sDrive35i, 메르세데스-벤츠 뉴 SLK200 블루이피션시.
아우디와 메르세데스-벤츠, 신제품 출시

아우디코리아는 최근 RS5라는 스포츠카를 선보였다. 스포츠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력한 힘을 강조한다.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경주대회(르망24)에서 우승한 차량에 사용해서 내구성이 입증된 엔진을 사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그 힘을 바퀴 네 개에 전달하는 사륜구동식이어서 악천후나 험한 길에서도 고성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도 올해 초 스포츠카(뉴 SLK200 블루이피션시)를 출시했다. 이 자동차는 편의 사항이 눈에 띈다. 지붕을 뒤로 접을 수 있고(컨버터블), 지붕에 있는 보조 창(선루프)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햇살이 강한 날에는 선루프가 어두워지고, 약할 때에는 창을 투명하게 만들어 따뜻한 햇볕을 받을 수 있다. BMW코리아의 스포츠카로는 2009년 일찌감치 내놓은 차량(Z4 sDrive30i/35i)이 대표 주자이다. 강력하게 주행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km당 1백69g)을 낮춰 유럽 기준에 맞춘 점을 부각했다. 

공통으로 스포츠카는 강력한 힘(1백50~3백50마력), 세련된 디자인, 최첨단 편의 장치를 강조하며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특히 20~40대 남성에게 스포츠카는 갖고 싶은 매력 덩어리이다. 그러나 한 대의 가격이 1억원을 넘나드는 고가인 탓에 실제 스포츠카를 사는 주 소비층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로 얇은 편이다.

직장인들이 지붕이 있는 자동차(세단형 승용차)를 선호한다면 스포츠카는 의사, 변호사, 사업가가 선호하는 차종이다. 조직 생활에 얽매지지 않아 비교적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두 대 이상 가지고 있다. 출퇴근이나 가족용으로 사용하는 차는 세단형이나 SUV이고, 스포츠카는 개인 여가 생활용으로 사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스포츠카는 사람의 질주 본능을 건드리는 자동차이다 보니 이따금 고속 주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주로 사용하는 자동차는 따로 있고, 스포츠카는 레저용으로 즐기는 것이다. 또 일부는 과시용으로 구입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팔리는 외국산 스포츠카는 한 업체당 수백 대에 머무른다. 세단형 승용차를 선호하는 소비 형태 탓이다. 게다가 실내 공간이 좁아 가족용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동차업체들이 꾸준히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이유는 상표를 알리기 위함이다. 한동률 아우디코리아 차장은 “아우디코리아는 5월부터 8월까지 거의 한 달에 한 대꼴로 고성능 차량을 출시했다. 최근에는 RS5라는 스포츠카를 선보였다. 이 차는 1억원이 넘는 고가이다. 판매량이 세단형 승용차보다 훨씬 떨어진다. 국내에 50~60대 정도만 판매할 계획이다. 그러나 스포츠카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차이므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제품이다”라고 말했다.


보급용 스포츠카도 시장 진입

스포츠카를 사고 싶지만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사람을 겨냥한 자동차도 나오고 있다. 2인용 세단형 승용차(쿠페)가 대표적이다. 고급 스포츠카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모양새가 닮은 자동차이다. 한 대당 가격은 5천만원 이하이다. 토요타가 지난 4월 출시한 차(토요타86)는 두 달 만에 56대가 팔렸다. 폴크스바겐코리아가 올해 2월 내놓은 차(시로코 R-라인)는 4천만원대로 연비가 리터당 15.4km라는 점을 내세웠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BMW 미니의 2인승 쿠페는 소형이지만 엔진 성능을 높여 스포츠카 마니아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혼다의 차(CR-Z)는 주행 형태에 따라 운전 상태(스포츠·일반·절약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다.

이 대열에는 국산 차도 뛰어들었다. 2008년에 출시한 현대차의 제네시스 쿠페는 2천만~3천만원대로 수입차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4월 선보인 현대차의 벨로스터 터보는 2백마력의 힘을 자랑하면서도 2천만원대 초반 가격이다. 오는 9월 선보일 아반떼 쿠페는 기존 아반떼 차체를 기본으로 하고 문을 2개만 달아 역동적으로 보이게 했다. 업계 관계자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처럼 고급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20~30대 젊은 층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스포츠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쿠페가 시장에서 시선을 모으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포츠카를 시장에 내놓는 국내외 자동차업체들은 한결같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강조한다. 그만큼 빠르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지형과 도로 사정을 고려하면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정지이다. 정지하는 능력도 소비자에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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