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장비 입찰에 특혜 있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9.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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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산업진흥원 내부 문건 단독 입수 / 심사 직전 특정 업체 비호한 내용의 요약본 배포

지난 8월27일 서울 마포구 한 음식점에서 민간 기상정보업체 케이웨더 김동식 대표가 장비 납품 의혹 수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상청 산하 항공기상청이 지난해 기상 관측 장비인 ‘라이다(LIDAR)’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비호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라이다는 활주로 주변의 순간 돌풍을 감지한 뒤 공항 관제시설 등에 경고하는 장비이다. 항공기상청은 지난해 6월부터 기상청 산하 기상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을 통해 라이다의 입찰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지지하는 내용의 문건을 평가위원에게 배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진흥원 내부에서조차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토로할 정도이다. 기상청은 지난 2008년에도 납품 비리가 불거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검찰은 기상청 공무원과 납품업체 직원들의 유착 관계를 밝혀내고 무더기로 기소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기상청의 장비 구매를 진흥원에게 대행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해묵은 납품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기상청 안팎에서는 “내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특정 회사가 기상청 장비의 납품을 독점하다 보니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일부 간부들과 납품업체 간의 유착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입찰 땐 ‘부적격’으로 일괄 표기

<시사저널>이 입수한 진흥원 내부 문건에서도 문제를 엿볼 수 있었다. 문제의 문건은 ‘입찰 제안서 요약본’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되었다. 지난 2011년 9월 실시된 입찰 평가 직전에 평가위원들에게 배포된 것이다. 문건에는 특정 업체를 두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문건은 ‘케이웨더의 장비가 현업에 설치된 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케이웨더의 제안서는 위조·변조하거나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언급하면서 입찰 경쟁사인 웨더링크를 비호했다. 입찰 평가를 주도한 한 직원은 평가를 앞두고 “발주 기관인 항공기상청이 웨더링크를 원한다. 케이웨더의 장비는 규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평가위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한 평가위원은 “이렇게 입찰을 할 것이면 우리를 왜 불렀느냐”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또 다른 문건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언급되어 있었다. 진흥원은 입찰 평가를 앞둔 2011년 6월 ‘단일규격 사유서’를 조달청에 제출했다. 웨더링크에서 공급하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제품이 사업에 적합하다는 내용이었다. 조달청은 입찰의 공정성을 이유로 제안을 반려했다. 이후 웨더링크와 케이웨더가 공개적으로 경쟁을 벌였지만, 편파 입찰은 여전했다. 진흥원 내부의 감사 등에서 문제가 발견되면서 두 번이나 입찰을 했다. 두 번째 입찰 평가 때는 평가위원들이 케이웨더에 대해 점수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웨더링크측은 현재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평가 과정에서 직원들이 특정 업체를 지지하면서 평가위원들과 마찰이 적지 않았다. 한 평가위원이 점수를 주지 말고 ‘부적격’으로 처리하자는 제안을 했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진흥원 내부에서도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입찰 평가를 앞두고 특정 업체를 비호한 내용을 담은 기상산업진흥원 내부 문건. ⓒ 시사저널 최준필

수십억 원 규모의 예산 부풀리기 의혹도

잇따른 입찰 논란은 결국 조달청과의 소송전으로 비화되었다. 조달청은 11월 이전의 두 차례 입찰을 모두 취소하고 재입찰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웨더링크 대신 케이웨더가 장비 납품업체로 선정되었다. 웨더링크는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조달청측은 “법원에서 기각한 사안이다. 입찰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불가피한 조치였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웨더링크측은 소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케이웨더를 낙찰자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기상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기상청장이 케이웨더에 근무한 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항공기상청이 75억원의 예산을 타 낸 배경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해 서울 김포와 인천, 제주공항에 라이더 장비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75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예산이 장비의 실제 가격을 지나치게 웃돌았다. 록히드마틴 사는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공항에 동일한 모델을 공급했다. 공급 가격은 대당 1백20만 달러(13억5천만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나 물가 변동률을 감안해도 20억원 가까이 차이를 보이면서 예산 부풀리기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항공기상청은 75억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구입 규모를 3대에서 2대로 축소했다. 그럼에도 예산은 전혀 줄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혹이 더하다. 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예산 문제는 기획재정부 승인 사항이다. 최소한 청장의 승인이 나야 하는데, 근거가 전혀 없다”라고 지적했다.


“조직의 치부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다”
기상산업진흥원 고위 관계자 인터뷰

라이다 장비 납품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이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조석준 기상청장이 입찰에 관여한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케이웨더 본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는 경찰의 편파 수사를 꼬집었다. 그는 지난 8월2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조석준 기상청장이 입찰에 개입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경찰이 한쪽 말만 듣고 편파 수사를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항공기상청 직원들이 지난 3월 조석준 기상청장을 방문해 라이다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재촉한 문건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장비의 관측 거리로 압축된다. 조청장이 지난 6월 선진화포럼에서 장비의 관측 거리를 15km에서 10km로 변경하도록 압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케이웨더가 입찰 참여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상산업진흥원의 고위 관계자가 공개한 내부 문건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조청장이 선진화포럼을 3개월 앞둔 3월에 이미 10km로 보고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난 3월 항공기상청 직원들이 조석준 청장을 방문해 라이다 장비 도입을 재촉했다. 당시 직원들이 놓고 간 문건에도 10km로 되어 있었다”라면서 경찰 수사를 전면으로 반박했다.

진흥원측은 일부 직원이 가격 담합이나 납품 비리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앞서 관계자는 “조직의 치부일 수도 있지만 웨더링크의 소송에 진흥원 내부 문건이 유출되었다. 일부 문건은 외부에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내부 직원을 통해 문건이 유출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적 대응을 통해 후속 조치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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