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벼랑으로 모는 사회가 문제”
  • 이규대 기자·김지은 인턴기자 ()
  • 승인 2012.09.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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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건강학과장 인터뷰

사회를 경악시키는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리키는 ‘사이코패스’가 주목되곤 한다. 최근 잇따른 ‘묻지 마 범죄’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외톨이’ 성향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을 사이코패스 환자와 동일시하는 시선도 많아지고 있다. 과연 이들을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사이코패스 전문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이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도 드물뿐더러, 이를 치유하는 매뉴얼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공격성 때문에 의사들 또한 진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시 북부병원 정신과 전문의인 김윤기 정신건강학과장은 최근 다수의 사이코패스 환자들을 진료하고 직접 진단을 내린 독특한 이력이 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다룬 영화의 한 장면. 왼쪽 사진은 김윤기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묻지 마 범죄’ 사이코패스로 규정 어렵다”

김윤기 과장은 최근 언론에서 ‘사이코패스’라고 이름 붙이는 기준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많은 수의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고 해서 사이코패스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살해 수법만 보고 판단을 내릴 것이 아니라 공감 능력, 죄책감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묻지 마 범죄’의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정신적 불안이 극단까지 가는 바람에 범죄를 저지른 경우이다. ‘여의도 칼부림’을 벌인 가해자는 현장 검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 이런 가해자들을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 사이코패스 범죄에서는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범행을 저지른 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김과장은 “사이코패스들은 스스로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자신이 사회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료한 환자들도 군대 면제 등을 목적으로 왔거나, 가족들에게 이끌려서 온 경우였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사이코패스 환자들의 특징에 대해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이다. 이들은 전형적으로 힘을 숭상하고, 힘에 굴복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다른 환자들처럼 따뜻한 공감을 바탕으로 진료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이코패스의 경우, 따뜻하게 대해주는 순간 ‘파워게임’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상상이 충족되면서, 의사나 상담자를 이용하려 들 수도 있다. ‘경찰서로 인계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등 힘을 이용해 누르는 방식으로 상담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과장은 사이코패스들이 갖고 있는 ‘공격성’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선천적으로 공격성을 타고나기도 하지만, 후천적 영향도 크다. 폭력적인 성향의 부모 아래서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어느 정도 충동성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안정적인 환경에서라면 발현이 덜 된다. 누구에게나 반사회적인 기질은 조금씩 있다. 무단 횡단을 한다든지, 거리에 침을 뱉는 등 소소한 규칙을 어기는 경우, 그런 부분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는가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죄책감이 무디고 기본적인 원칙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 사람들에게 내재된 충동도 활개를 칠 것이고, 사이코패스 환자들의 사회적 해악도 커지게 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개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우리의 사회 분위기가 인격 장애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충동을 억제할 수 있도록 서로 다독이고 기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첫째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기가 힘들다. 남을 누르고 힘을 가지는 것이 전부가 되는 사회에서는 범죄가 거리낌 없이 발생한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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