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범죄’ 추적하니 ‘은둔형 외톨이’ 있었다
  • 이규대 기자·김지은 인턴기자 ()
  • 승인 2012.09.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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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자기만의 방 속에 갇힌 이들’의 세계

ⓒ시사저널 전영기

8월22일 여의도에서 칼부림을 벌였던 김 아무개씨(30)는 신림동에 있는 2평 남짓 되는 고시원 지하 방에서 홀로 살았다.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독방 안에서 김씨의 마음속 ‘괴물’은 탄생했다. 8월18일 의정부 전철역에서 난동을 부린 유 아무개씨(39)도 마찬가지였다. 일정한 직업 및 주거지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온 그는 사회관계가 전무했다. 휴대전화조차 없을 정도였다. 지난 8월13일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이유만으로 호프집 주인 및 종업원을 살해한 부산의 일용직 노동자 신 아무개씨(43) 또한 지난 2004년 이혼한 뒤 홀로 고시원에서 은둔 생활을 해온 인물이었다.

은둔형 외톨이는 1인 가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도,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은둔형 외톨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빈번히 나타났다. 지난 8월25일, 세종시에서는 정신분열증을 앓아온 서 아무개씨(42)가 가족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와 형은 숨졌고, 이를 말리던 어머니는 크게 다쳤다. 서씨 또한 근 10여 년간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며 가족들과도 대화를 단절한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웠다.

최근 ‘묻지 마 범죄’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며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특정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 때문에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각 사건의 피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실직 상태이거나 일용직·비정규직 노동자로 불안한 생계를 유지해왔으며,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무와도 관계를 갖지 않은 채 ‘자기만의 방’ 속에서 살고 있었다. 사회를 향한 불만, 타인에 대한 증오는 바로 그곳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외부 도움은 거부…극단적 충동 노출하기도

왜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일까.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개중에는 선천적으로 사회성이 부족한 체질이 원인인 사람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신질환을 가지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가 생겨나는 이유는 선천적 요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은둔형 외톨이의 탄생에는 후천적·사회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44쪽 상자 기사 참조).

‘은둔형 외톨이’들의 목소리를 취재진이 직접 듣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들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거의 유일한 곳이 있다. 바로 온라인 공간이다. 오프라인에서는 극도의 폐쇄성을 보이는 이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곳인 셈이다.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모인 클럽이나 카페들이 수십여 개씩 만들어져 있다. 회원 수가 1천명이 넘는 대형 카페에서부터 수십 명이 소규모로 활동하는 카페 등 형태도 다양하다. 물론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회원 가입을 하고 별도의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카페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들이 일반인의 기준에서 볼 때 납득하기 힘든 생활 습관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씻을 필요가 없다” “하루에 18시간씩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에도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5년 동안 ‘히키’(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일본어 ‘히키코모리’의 준말)짓을 했다. 치료를 하러 병원에 가려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조차 두렵다” “방 안에서 먹고 자고 싸는 것을 다 해결한다” “누군가가 자꾸 나를 비웃는 것만 같다” 등 비정상적인 생활상을 고백하는 내용들이 올라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올라오는 게시물 중에는, 어떻게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는지를 토로하는 성격의 글 또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주로 왕따, 소극적인 성격, 실직, 사업 실패, 부모님의 이혼, 친구나 연인으로부터의 배신 등이 주된 계기들이었다.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 1학년생인 정 아무개씨(여·19)는 지난 5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정씨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거리를 지나다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 경험이 그의 인격을 일그러뜨렸다. 성격이 소심해졌고,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줄곧 왕따로 지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친구들은 이내 관계에 서툰 정씨 곁을 떠나갔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단체 생활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 정씨에게는 친구가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벌어져 전혀 의지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과거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던 정씨는 최근 다시 자살을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정서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기자는 어렵게 정씨와 연락이 닿았다. 정씨는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인 것 같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도 다 싫고, 더 외로워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사저널>의 정식 인터뷰 요청에 “한낱 한 사람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반응했다.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뜻의 완곡한 거절이었다. 수차례 설득을 했으나, 그는 끝내 입을 닫았다. 정씨에게는 은둔형 외톨이인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이 ‘한낱 한 사람’으로서 혼자 감내해야 할 몫이었던 셈이다.

방 안에 틀어박힌 지 약 50일이 지났다는 한 남성은 “살아 있음을 저주한다”라는 표현을 했다. 그는 소심한 성격 탓에 마음에 상처를 가진 인물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무서워 집에서 소일거리만 하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지만, 소심한 성격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내 고민을 나눠줄 친구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나타나는 순간 나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것이 무섭다”라는 것이다. 상담센터에도 수차례 글을 올렸으나, 막상 센터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는 너무 놀라 세 번이나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듯 많은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의 처지를 고통스러워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면서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는 사례가 많았다.


서울 여의도에서 흉기 난동을 벌인 피의자 김 아무개씨가 지난 8월26일 사건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폭력 갈망’ ‘살인 충동’ 고백하는 글 남기기도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내용은 은둔형 외톨이 카페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리 이겨내려 발버둥쳐도 힘들고 지친다. 이제 모든 끈을 놓고 싶다” “연탄을 피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지 않기를, 어디선가 불현듯 나에게 사고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같은 식이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맺혀 있는 자살 충동을, 익명의 공간 안에서 풀어내고 있었다.

다소 우려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죽어 하늘에 가면 나를 태어나게 한 신부터 살해하고 싶다”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갈기고 싶다” “칼로 사람의 배를 찌르면 기분이 어떨까” 등 폭력에 대한 갈망, 살인 충동 등을 고백하는 글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들이 그냥 방치된 채 실제 행동에까지 이르게 되면 사회를 경악시키는 끔찍한 대형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은둔형’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10대 및 20대가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해당한다. 인터넷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이다. 익명의 공간에서조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수많은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더욱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서울 마포구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단순히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알코올 중독, 우울증 등 여타의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로 하여금 치료를 받게 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지역 정신보건센터 상담사들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들이 치료를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센터의 관리 대상은 병원이나 민간 시설에서 치료의 필요성을 의학적으로 입증받은 정신질환자가 중심이 된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이들의 심리 상태까지 파악하고 돌보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이 때문에 상담가들은 더욱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일찍 병원이나 정신보건센터를 찾아 도움을 받을 것을 강조한다. 서울 용산구정신건강증진센터의 한 상담가는 “정신 보건 서비스나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좀 더 열린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할 때,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 외톨이가 탄생하는 배경에는 왕따 문화, 가족 해체, 고용 및 생계 불안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징후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 외톨이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도 관련 깊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진단한 ‘은둔형 외톨이’의 심리 상태

‘은둔형 외톨이’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을까. 이에 대해 정신의학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를 일종의 ‘정신이상자’로만 여기고 거리를 두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말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가해자 개인의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집단 따돌림, 사업 실패, 실직, 이혼 등 개인의 사회적 관계에 타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과 좌절의 감정이 차차 잦아들며 회복 단계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거나, 그 충격이 너무 커 시간이 지나도 당사자가 심리적인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 현상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사회적 안전망이 허약한 우리 사회에서는 정서적으로 의지하거나 도움을 얻을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린 개인은 ‘스스로의 처지가 비참해 더는 살 가치가 없다’라고 느끼기 쉽다. 그렇게 한 번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심리적으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에 대해 김윤기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자신이 초라하고 무능력하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창피해하거나 꺼린다. 그렇게 자책과 우울감이 계속 쌓이면서 내면의 병은 더욱 깊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심리적 고통은 급기야 자살 충동으로까지 이어지기 일쑤이다. 이로부터 벗어나는 유력한 수단이 바로 ‘외부로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극단적인 자기 부정의 욕망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사회를 적대하게 되는 것이다. 김세주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부 현실에 책임을 돌리면, 자책감이 있던 자리에 공격성과 분노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 여기에 충동까지 더해지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묻지 마 범죄’가 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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