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사기극이었나, 공천 장사였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9.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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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과정에서 수십 억 수뢰한 혐의로 구속된 양경숙씨 의혹의 행적 추적

민주당 공천 헌금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양경숙 라디오21 전 대표(가운데)가 8월28일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 뉴시스


“알고 나면 깜짝 놀랄 사람이다.”
인터넷 방송국 ‘라디오21’ 전 대표인 양경숙씨(51)가 공천을 대가로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사실이 알려진 후, 양씨를 잘 아는 한 민주당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양씨의 사업에 관여한 적이 있는 또 다른 인사는 양씨를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면서 “터질 것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양경숙은 시한폭탄, 터질 것이 터졌다”

‘양경숙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양씨는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약속하며 32억여 원에 이르는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공천 헌금’으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씨에게 돈을 건넨 공천 신청자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한편, 박원내대표가 이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박원내대표를 겨냥한 검찰의 칼끝이 다소 무뎌지는 분위기이다. 검찰이 초반 기세를 올리며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민주당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출제될 문제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구체적인 답변을 즉각적으로 내놓고 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이 사건이 있다는 것을 포착한 지 꽤 오래되었다. 당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했고, 관련되었다고 지목된 분들에 대해 사실 관계를 파악했다”라고 밝혔다.

분위기는 점점 ‘양씨의 1인 사기극’으로 급변하고 있다. 도대체 양씨는 어떤 인물이기에 공천을 미끼로 한번에 30억원이 넘는 돈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양경숙 미스터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외부로 알려진 양경숙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KBS에서 PD·성우·방송 진행자로 활동했고, TBN 교통방송 개국 멤버로서 본부 총괄 방송제작국장을 역임했다는 것이다. 거평그룹 계열 홍보회사 대표도 지냈고, 한화갑 대표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 방송연설기획실장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씨의 이력 중 상당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KBS와 TBN에서 맡은 역할이 실제와 다르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학력 위조도 의심받고 있다. 출신 고등학교가 그동안 전주여고로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만큼 양씨의 과거 행적이 베일에 쌓여 있는 셈이다. 실제 양씨와 함께 일을 한 인사들 중에서도 양씨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어떤 경력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때 “양경숙이 본명이 아니다”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력과 무관하게 양씨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비슷했다.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사업가 기질을 지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고 독선적이라서 적을 많이 만든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친노 진영의 한 인사는 “좌충우돌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06년에 치러진 5·31 지방선거 당시 로고송 사업 논란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선거 후 열린우리당 소속 출마자들이 로고송 제작·공급업체 ‘㈜미디어쿨코리아’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미디어쿨코리아는 2005년 10월 ‘㈜라디오21’이 상호를 바꾼 회사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선거 로고송으로 <오 필승 코리아>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로 계약했는데 저작권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았다. 당시 양씨가 ㈜미디어쿨코리아에서 사업을 주도했던 책임자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정치권에서 양씨를 신뢰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 라디오21 홈페이지 캡쳐
서울서부지검에서 사기 혐의로 양씨 조사 중

주목되는 부분은 “양씨가 사고를 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야권에서는 오래전부터 나돌았다는 점이다. 민주당 한 대선 주자의 캠프에서 일하는 친노 인사는 “공천을 빌미로 해서 투자를 유치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1년 전부터 떠돌았다. 이번에 사건이 터지는 것을 보고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지금 돈을 건넸다는 공천 신청자들 말고 다른 투자 피해자가 이미 검찰에 고발을 한 지가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서울서부지검에서 13억원의 사기 혐의로 양씨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총선에 출마했던 한 예비후보는 “총선이 있기 전인 3월에 이야기가 나와서 이미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양씨가 박원내대표 이름으로 공천 신청자들에게 조작된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월9일 전송된 ‘박지원이 밀겠습니다. 이○○, 이○○, 정○○ (비례대표) 12번, 14번 확정하겠습니다. 이번 주 8개(8억)는 꼭 필요하고, 다음 주 10개 완료돼야…’라는 것 등 공천 대가로 돈을 요구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원내대표는 이 문자가 전송되었다는 시각인 2월9일 오후 2시에는 광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며 ‘문자 조작’을 주장했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이번 사건은 ‘공천 헌금’보다 ‘투자 사기’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이다. 전당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박원내대표는 4·11 총선 당시 당내 주류 세력에서 밀려나 공천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위치에 있지 못했다. 오히려 당 주도권은 친노 세력이 잡고 있었다. 양씨 또한 이러한 당내 역학 구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양씨를 잘 알고 있다는 친노 진영의 한 인사는 “당 고위직에 돈이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씨와 엮여서는 뒤끝이 안 좋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 만약 박원내대표가 돈을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라고 밝혔다.


서울 여의도 소재 라디오21TV의 사무실 입구. ⓒ 시사저널 박은숙
32억여 원의 용처 찾는 것이 수사 핵심

그렇다면 과연 32억여 원이라는 거금이 어떻게 쓰였을까. 양씨 혼자 이 돈을 모두 개인적으로 챙긴 것일까. 이에 대해 검찰은 이 돈이 수천만 원 단위로 쪼개져서 전국으로 송금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양씨가 이사로 있는 ‘사단법인 문화네트워크’ 등의 명의로 된 다섯 개 계좌에서 20여 명의 개인 계좌 등으로 자금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계좌 추적과 함께 관련자 소환 조사에도 들어갔다. 정치권에서는 양씨가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양씨의 한 지인은 “여기저기에 일을 많이 벌인다. 그리고 돈 씀씀이가 엄청 헤프다”라고 말했다. 1년여 전 ‘라디오21’이 서울 공덕동에서 여의도로 사무실을 옮기고 최신 시설과 장비를 마련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공덕동에 있을 때는 사무실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는데 여의도 사무실은 월세만 2천만원 넘게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가 봐도 무리하게 옮긴 것이다. 어떻게 감당하려나 싶었다. 직원들 월급 밀린 것도 적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 사무실로 옮기는 것을 보고 어디서 큰돈을 투자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사건 직후 한때 검찰과 민주당 사이에 격렬했던 공방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이다. 하지만 향후 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인 셈이다. 검찰로서는 이번 사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대검 중수부가 직접 칼을 빼들었는데도 민주당이나 박지원 원내대표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양씨 1인 사기극’으로 끝나면 상당한 역풍이 예상된다. 공천 헌금 의혹의 경우 일반적으로 공안부에서 수사를 해왔다. 지난 7월30일 중앙선관위로부터 이첩된 새누리당 공천 헌금 의혹 사건은 부산지검 공안부가 맡고 있다.

검찰은 박원내대표와 한때 밀착했던 사이의 양씨가 어떤 식으로든 박원내대표를 위해 돈을 사용한 흔적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노진영 인사들의 이름도 일부 거론되고 있다. 양씨가 올해 대선 정국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해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경숙씨가 대표를 지낸 ‘라디오21’은 2002년 12월 대선 직전인 11월에 개국한 ‘노무현 라디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탄생한 매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 초대 회장을 지낸 배우 명계남씨가 대표를 맡았는가 하면, 역시 노사모 대표를 지낸 바 있는 노혜경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사내이사를 맡기도 했다. 양씨도 초창기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이번 공천 신청자들의 돈이 들어간 통장은 사단법인 문화네트워크 명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네트워크 역시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지난 2004년 1월에 설립되었다. 양씨와 노 전 비서관 이외에도 이기명 전 노대통령 후원회장, 최종원 전 의원 등이 이사를 역임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한때 ‘라디오21’과 공덕동 사무실을 함께 쓰다가 지난 2011년 4월 서교동의 한 빌딩으로 사무소 주소지를 옮겼다.

양씨가 관여한 회사와 단체에 친노 인사들이 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향후 불똥이 친노 진영으로 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씨는 구속되기 며칠 전인 8월21일 페이스북에 ‘공천 헌금이라니? 한번 모두 함께 죽자고? 죽으려고? 쓰레기 청소하는 날이 되려나?’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이 글에서 양씨는 ‘박, 최, 김, 임 그리고 유’라며 특정인들을 지칭했다. 해당 인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자신만 뒤집어썼다는 식의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 대부분이 친노 성향의 인사들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주당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친노 인사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검찰의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이다. 실제 8월31일 검찰 주변에서는 양씨의 32억원의 사용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친노 핵심 인사들에게 억대의 돈이 송금된 정황을 확인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민주당이 사실 확인을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친노 인사는 “이 바닥에서 양씨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돈을 받아 쓰겠는가”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워낙 럭비공 같은 여자라 어디로 튈지...”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예측 불가능한 양씨의 행보에 친노 진영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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