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과 검찰 숙명의 대결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9.0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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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현영희 의원의 공천 헌금 파문이 인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민주당에도 공천 헌금 의혹이라는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그 중심부에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서 있다. 박원내대표는 인터넷 방송국 ‘라디오21’ 전 대표인 양경숙씨의 공천 헌금 의혹과 관련된 것 외에 고려조선 전 아무개 대표의 비자금 조성 건 등과 연관해서도 검찰 수사의 타킷이 되어 있다는 정황이 최근 포착되었다.

대검 청사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 시사저널 임준선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을 궁지에 몰았던 검찰의 ‘공천 헌금 수사’가 민주당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준 현영희 의원 공천 헌금 의혹 파문에 이어 인터넷 방송국인 ‘라디오21’의 전 대표 양경숙씨(8월28일 구속)의 공천 헌금 의혹 사건이 터졌다. 민주당은 졸지에 공격에서 수비로 진용을 가다듬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민주당을 휩쓴 공천 헌금 의혹 파문의 한가운데에 또다시 박지원 원내대표가 있다는 점 또한 주목되는 대목이다.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힘겨루기를 하던 박원내대표와 검찰이 속된 말로 ‘죽고 살기’ 식의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내대표는 지난 2003년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과 첫 악연을 맺은 후, 현 정부 들어서도 야당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사건마다 검찰의 ‘최종 수사 목표’로 인식되었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국회와 검찰 주변에서는 박원내대표와 관련된 갖가지 의혹이 흘러 다닌다. 박원내대표가 현재 민주당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에 그에 대한 수사는 대선 정국과 직결된다. 민주당으로서도 박원내대표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 또한 야당의 상징적 인물을 건드린 만큼 민주당의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이라는 공격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양측은 배수진을 치고 생사를 다투는 싸움을 하고 있다. 

검찰이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또 다른 칼을 겨누고 있는 정황이 최근 포착되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심재돈)는 8월30일 전남 목포에 있는 고려조선㈜ 전 아무개 대표를 비자금 조성과 기상청 로비 혐의로 불러 조사했다.

이보다 앞선 같은 달 7일 검찰은 고려조선 사무실과 회사 경영진 자택, 기상청 사무실 등 3~4곳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당초 검찰의 수사 방향은 고려조선이 지난 2009년 기상청과 맺은 해양기상관측선 ‘기상1호’ 수주 계약 비리 의혹 수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8월1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고려조선 대표 부인과 오랜 친분 있어”

하지만 검찰이 고려조선과 계열사인 고려중공업 등 자금 관리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참고인 신분 조사를 벌이고, 계좌 추적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검찰 수사의 목표가 박지원 원내대표를 겨냥한 권력형 비리 수사이다”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박원내대표와 고려조선의 실제 소유주로 알려진 전대표의 부인 한 아무개씨가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려조선 수사는 단순한 납품 비리 수사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박원내대표 부분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어떤 부분과 관련해 박원내대표를 주목하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고려조선은 지난 1989년 7월 설립된 업체로, 2010년 기준으로 매출 2백7억여 원대 규모의 중소 조선업체이다. 고려조선의 등기상 대표(현재 관리인)인 전대표는 전남 진도가 고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조선은 지난 2009년 사업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일대에 고려중공업을 설립했다. 전남 진도는 박원내대표 부친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전 대표의 부인 한씨는 지난 2007년 5월 설립된 ㅎ건설의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전대표는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떠났다 돌아온 고향에 대한 애정이 컸고, 그만큼 지역 출신 인사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 녹진리에서 수목원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였던 전대표 부부는 재경향우회 회원들을 수목원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검찰이 고려조선 사건과 박원내대표를 연관 짓는 것도 전대표 부부가 지역에서 차지했던 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시사저널>은 고려조선 전대표와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고 문자메시지도 남겼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대표의 부인인 한씨 역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박원내대표는 8월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향인데 당연히 알고 지내는 지인은 맞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내가 (경제적인) 도움을 줬으면 줬지, 내가 (돈을 받거나) 그럴 처지는 아니다”라는 말로 검찰 주변에서 나오는 커넥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최재경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지난해 11월2일 대검찰청에서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지검 특수부까지 동원된 것 납득 안 돼”

검찰에서는 일련의 사건 수사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박원내대표를 겨냥한 ‘표적 수사’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박원내대표측은 검찰이 이른바 ‘박지원 털기’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최근 박원내대표가 거론되는 수사를 살펴보면 이런 정황이 엿보이기도 한다. 박원내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고려조선 비자금 횡령·로비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심재돈 부장검사는 지난 7월 중순께까지 특수3부의 부장검사로 일해왔다. 그가 부장검사를 맡을 당시 특수3부는 오문철 보해저축은행 전 대표로부터 4억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박원내대표를 수사한 부서이다. 심부장검사는 해당 사건을 대검 중수부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으로 넘긴 후 특수2부로 자리를 옮겼고, 여기서 다시 고려조선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심부장검사는 검찰 내에서도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이른바 ‘강골 검사’로 통한다. 그가 보해저축은행 건에서 손을 뗀 후 특수2부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공교롭게도 바로 박원내대표의 고향 기업에 손을 댄 것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의혹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법조계 출신인 한 민주당 의원은 “지역 기업의 비자금 횡령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까지 동원되어 전방위로 수사에 나선 데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수사 강도를 높이면서 검찰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꿰맞추기 수사를 하려는 냄새가 난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태도 또한 이런 의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검찰은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의 공천 헌금 의혹 사건을 부산지검 공안부에 배당한 것과 달리, 양경숙씨 사건은 대검 중수부에 배당해 형평성 논란을 빚었다. 검찰의 최고 특수통 검사들이 모두 모여 있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모두 박원내대표에 대한 수사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과 대척점에 서 있던 박원내대표는 저축은행 비리 사건과 관련해 ‘야당 탄압’을 구실로 검찰의 거듭된 소환 통보를 무시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30일 기습 출두를 한 데 대해 검찰 내부에서 당황스러움과 함께 격앙된 반응이 많았다. 이른바 ‘노회한 정치꾼에게 당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서초동의 이런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민주당 내에 ‘박지원 블랙홀’ 경계 목소리도

날 선 두 칼날이 부딪히고 있는 박원내대표와 검찰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고려조선 수사나 양경숙씨 수사 역시 지난번 저축은행 사건 때처럼 검찰이 박원내대표에게 끌려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칫 검찰이 ‘표적 수사’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원내대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검찰과 갈수록 험한 각을 세우는 박원내대표가 장기적으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심하고 뭔가 털려고 덤벼들면 먼지 하나쯤 안 털리는 경우가 어디 있겠나”라는 민주당측 인사의 말처럼 검찰과 계속 감정적 대립을 하는 것이 불필요한 소모전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민주당 내에서도 ‘친노’와 ‘486’을 중심으로 “‘박지원 블랙홀’에 민주당 전체가 빨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각 후보 진영도 호남 지역 등의 경선이 마무리되면 박원내대표와 거리를 두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탓일까. 박원내대표와 민주당의 대응도 과거와는 달리 즉각적이면서도 치밀해 보인다. 지난 저축은행 사건 연루 당시 검찰을 향해 “내가 돈을 받았으면 목포 역전에서 할복하겠다”라며 감정적 발언을 한 박원내대표는 최근 언론 창구를 우원식 원내대변인으로 단일화한 채 최대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박지원과 검찰의 전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지금의 대선 정국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 “나와 관련 없는 수사라면서 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월28일 인터넷 방송 ‘라디오21’ 전 대표인 양경숙씨를 둘러싼 공천 헌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고, 조직적으로 검찰의 수사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원내대표는 8월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양씨와 관련한 사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공천 헌금 등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는) 우원식 원내대변인과 통화를 해달라”라고 공식 인터뷰를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검찰이 고려조선 수사를 진행하면서 역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억울하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고려조선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는 전 아무개 대표에 대해 박원내대표는 “동향인데 당연히 알고 지내는 지인은 맞다. 그 사람들 벌써 몇 년째 힘들게 사는 사람이다”라면서 전대표 부부에 대한 애틋함을 나타냈다. 그는 또 “차라리 내가 (경제적인) 도움을 줬으면 줬지, 내가 (돈을 받거나) 그럴 처지는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원내대표는 특히 “검찰에서는 (고려조선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나하고는 관련이 없는 수사라고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검찰이 고려조선 쪽 사람들을 불러서 조사를 하면서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다고 하더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면 (나와 관련성이 없고 내가 억울하다는 것이) 다 드러날 것이다.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난타전 끝없는 10년의 악연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검찰의 ‘10년 전쟁’이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양측의 악연은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대북 사업 추진 편의 대가로 현대그룹으로부터 1백50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박원내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이후 검찰은 2004년 금호그룹과 SK그룹으로부터 각각 3천만원과 7천만원을 받은 혐의(알선 수재)로 박원내대표를 추가 기소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은 박원내대표와 검찰이 1승1패를 주고받는 무승부로 끝났다. 지난 2006년 법원은 현대그룹 수뢰 혐의는 무죄, 금호그룹과 SK그룹과 관련한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3년,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이후에도 양측의 모진 인연은 이어졌다. 2007년 사면 복권을 받고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원내대표는 2009년 당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긴 셈이었다. 박원내대표는 19대 총선 이후에도 국회 법사위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검찰 개혁을 향한 칼날을 갈고 있다.

검찰의 반격 공세도 만만치 않았다.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여권 인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면서도 동시에 박원내대표를 겨냥한 수사에도 눈독을 들여왔다. 박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현재 구속 기소 중)이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혔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내며 한때 ‘권력의 2인자’로 불렸던 박원내대표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 7월30일 저축은행 합수단의 세 차례 소환 조사에 불응했던 박원내대표는 예상을 깨고 검찰의 허를 찌르는 ‘기습 출두’로 일거에 상황을 역전시켰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박원내대표는 다시 ‘공천 헌금 의혹’ 중간에 서서 검찰과 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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