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 띄워 올린 ‘광폭 샘플링’의 힘
  • 김봉현│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12.09.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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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은 음악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았나

6집 수록곡 에 피처링을 한 박정현과 함께 작업하는 싸이. 사진 제공 YG 엔터테인먼트


싸이가 불러일으킨 <강남스타일> 열풍은 이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다만 최근 들어 미국 케이블 음악 전문 채널의 <빅 모닝 버즈 라이브>에 싸이가 출연해 말춤을 추었다는 점, 이 열풍을 이끈 주요한 당사자(?) 중 한 명인 미국의 알앤비·팝 스타 티-페인(T-Pain)이 트위터를 통해 싸이에게 직접 공동 작업을 요청했고 싸이가 이를 수락했다는 점, 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스까지 자신의 트위터에 <강남스타일>을 언급했다는 점 등을 보면 ‘강남스타일 붐’에 합류하는 미국 유명인은 계속 늘어나고 추세이다.

그동안 <강남스타일>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노래’임에도 음악에 대한 분석보다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강남스타일> 열풍에서 음악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무언의 합의처럼 보인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이 열풍의 한가운데에는 ‘뮤직비디오’의 시각적 재미와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악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개인적으로는 싸이의 음악적 역량을 크게 신뢰해온 편이 아니다. 가창력, 랩 실력, 라임을 쓰는 실력, 작사 능력, 작곡 능력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종 인터뷰로 미루어볼 때 스스로를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로 여기고, 예술가의 작가적 역량보다는 대중의 기호와 구미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상업 가수의 정체성을 견지하는 그에게 이러한 분석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다만 그가 지금껏 사용한 ‘샘플링’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싸이는 <새>에 바나나라마의 <Venus>를 샘플링했고 <챔피언>에는 영화 <베버리힐스 캅>의 주제가인 <Axel F>를 사용했다. 물론 ‘기존의 다른 노래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했다는 면에서 보자면 이 노래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때문에 실제로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고 하는 ‘표절 혐의’는 싸이에 대한 대중의 무지이자 폭력이다.

오래전 유행한 <마카레나>와 여러모로 유사

그러나 절차와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서 이 곡들이 음악적인 의미에서 제대로 된 샘플링인지는 의문이다. 가수와 노래 제목을 모를 수는 있어도 음악을 듣는 순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전 세계인의 노래’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던 그의 행위는 샘플링이라는 작법이 왜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창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그 근본을 되돌아보게 한다.

샘플링을 창작의 뿌리이자 장르적 특성으로 지닌 힙합 음악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힙합 프로듀서에게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남들이 모르는 음악을 발굴하는 일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옛 고전 LP를 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음악을 찾아내고, 그 음악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그것을 영리하게 샘플링해 자신의 창작으로 흡수하는 행위는 전통적 의미에서 힙합 프로듀서의 기본이다.

물론 잘 알려진 음악을 샘플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는 ‘낯설게 하기’가 특별히 더 요구된다. ‘노래를 들을 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나 유명한 노래를 샘플링했더라’는 것은 노래를 만든 프로듀서가 자신의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독창성이야말로 샘플링이 ‘합법적인 음악 도둑질’이 아니라 ‘온전한 창작 행위’일 수 있는 토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와 <챔피언>은 어쩌면 부끄러운 곡이다. 원곡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 유명한 노래의 후광을 그대로 업고 가겠다는 안일함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엔터테이너이자 상업 가수를 자처하는 그에게 이러한 음악적 비판 역시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강남스타일> 역시 싸이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을 바꾸어놓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싸이는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싸이가 작사·작곡에 참여하고 그룹 언타이틀의 전 멤버이자 싸이의 오랜 작업 파트너인 유건형이 편곡한 이 곡은 장르적으로는 일렉트로닉 댄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본질은 해당 장르에서 기대하는 예술적 완성도와는 무관한, 대중 본위로 짜인 상업 가요에 가깝다. 그것이 싸이와 유건형의 의도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의도든 아니든 사실은 그렇다. 가사와 멜로디에서 엿보이는 것 역시 관습적인 ‘싸이 스타일’이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작곡가는 “그냥 상업 음악이었다. 일렉트로닉 장르로 보았을 때는 무언가 모자라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이 음악적으로 훌륭했다고 하더라도 최근의 ‘열풍’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열풍의 핵심은 음악이 아닌 뮤직비디오이고, 청각이 아닌 시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각적 이미지 중에서도 독특한 춤이 포인트라는 점에서 <강남스타일> 열풍은 십수 년 전 <마카레나>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빌보드 14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마카레나>와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한 구석이 있지만, <마카레나> 역시 노래가 발표된 지 몇 년 만에 달성한 성과라는 점을 참조한다면 <강남스타일>이 앞으로 미국에서 어떠한 흥행을 거두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K팝의 보편적 성공으로 보기에는 무리

다만 (이른바 ‘K팝 열풍’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고는 하나) <강남스타일>에 실효적인 지지를 보탤 수 있는 미국 내 인구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마카레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래 자체나 안무의 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인종이 얽혀 있는 미국 시장의 인종적 특수성에 기인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시 <마카레나>는 미국 내 스패니시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라티노의 지지를 얻고 대성공을 거둔 리키 마틴 역시 비슷한 예이다. 미국 내 아시아 인구는 아직 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와는 별개로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K팝의 위상과 연결 짓는 것은 다소 과잉이거나 엉뚱한 해석이다. 우선 K팝의 ‘위상’이라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와 관련해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김영대씨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내에서 K팝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형적인 금발의 백인 여성도 빅뱅을 잘 알고 있고, 현아의 노래 가사를 외우고 다닌다. 하지만 미국인이 스시를 위대한 음식이기 때문에 먹는 것이 아니듯 K팝 역시 훌륭한 음악이라서 관심을 가진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K팝은 아직까지 흥미로운 레어 아이템, 혹은 새로 발견한 맛있는 음식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K팝이 외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실체는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강남스타일>과 K팝의 공통분모는 크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강남스타일> 열풍은 K팝이 만들어놓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같은 국적’인 싸이가 자신의 재기 어린 뮤직비디오와 코믹한 춤으로 적절한 미디어 시스템의 수혜를 입어 이루어낸 개인적 성공에 가깝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해석일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K팝의 위상을 드높였다거나 K팝의 음악적인 면모를 이어간다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과잉된 애국주의와 실체 없는 바람보다는 분별력 있는 판단과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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