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싸이 월드’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9.0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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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그가 볼록 솟은 배에 매달려 있는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댈 때마다 세계가 웃는다. <강남스타일>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 중 하나이다. 한국산 콘텐츠가 국내 발표와 동시에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비되는 풍경은 아마 건국 이래 처음일 것이다. 2010년 가을 한국산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폭발했을 때를 K팝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고 한다면, 이번 싸이의 <강남스타일> 붐은 올림픽 금메달에 비길 만하다.

 

사진 제공 YG엔터테인먼트

<강남스타일>의 돌풍은 K팝의 토양에서 전 세계에 통하는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싸이가 지난 7월 중순 6집 앨범 <6甲>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계획했던 해외 활동은 9월께 일본 진출이 전부였다. 일본에서 6집 신곡과 기존 히트곡을 함께 넣은 미니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 목표였다. 싸이 자신의 표현으로는 “아주 잘되거나 X될 것 같다”라는 정도였다. 그런데 7월14일 유튜브에 올라간 뮤직비디오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강제 해외 진출’. 싸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SNS 미디어의 특성상 알아서 퍼가고, 알아서 찾아보는 덕분에 전 세계의 음악팬들이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된 것이다. 유튜브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관람 횟수가 비슷하고, 한 번이라도 <강남스타일>을 본 나라는 2백20개국에 이른다. 이 정도면 음악 올림픽 댄스 뮤직비디오 부문에서 금메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한국 시장과 실시간으로 함께 움직이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은 물론, 거대 음악 시장이라고 불리는 북미권과 유럽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만큼이나 조회 수가 늘어나고 있어서 주류 팝 시장인 미국에 K팝이 본격 상륙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면 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와 통하게 된 것일까.

유튜브에 올라온 해외 반응을 보면 <강남스타일>을 보고 한국인이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과 외국인들이 재미를 느끼는 지점에 별 차이가 없다.

싸이가 주는 재미는 무엇일까. 섹스의 즐거움을 찬양하고, 가끔 욕도 천연덕스럽게 하고, 스스로 양(아치)스럽다는 표현을 쓰는 싸이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이런 ‘상스러움’에 도리질을 칠 것 같은 20대 젊은 여성들이 그의 공연장에 넘쳐나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유튜브의 뮤직비디오, 어디서 얼마나 보았나. 자료제공: 구글코리아

여성들까지 들썩이게 하는 퍼포먼스의 마력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기획했던 이길용 LP팩토리 대표는 싸이의 콘서트에 대해 “요즘 콘서트는 노래나 음악성보다는 퍼포먼스 위주로 가야 재미있다고 한다. 특히 콘서트의 핵심 소비 계층인 젊은 여성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싸이의 입담이나 노래도 재미있지만 플러스알파가 많다. 그것이 20대 여성에게 어필한다. 젊은 여자들이 찜하면 남자들은 당연히 따라가는 것이고. 싸이 쇼는 손해 보았다는 기획사가 없고 다녀온 사람들이 ‘재밌다’라고 입을 모으는 쇼이다. 티켓 박스를 열자마자 1만2천~2만장이 매진된다. 하지만 큰 흑자는 없을 것이다. 싸이는 공연의 재미를 더하는 퍼포먼스를 위한 설비 투자를 위해 자기 개런티까지 깎아 가면서 쇼를 꾸미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 특히 여성들이 환호하는 것을 ‘재미’라는 한 가지 이유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영화를 읽어내는 황진미 평론가는 싸이의 노래 가사를 빌려 이를 설명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뭘 좀 아는 놈이 있고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남자라고 하는데 싸이는 그 말에 합당하다. 한국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말의) 강도에 따라 여자들이 어떤 경우는 성폭력으로, 어떤 경우는 비폭력으로 느낀다고 오해하고 있다. 문제는 질이다. 싸이의 상스럽기조차 한 농담이나 퍼포먼스를 여자들이 성폭력으로 느끼지 않는 것은 같이 장난치는 음란함이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남성 섹슈얼리티를 보여주지만 그것은 상대를 윽박지르고 위협하려는 방식이 아니다. 싸이는 즉석 만남에서 ‘언니들 멋지다’라고 추어주면서 같이 질펀하게 놀아주는 상대이다. 대다수 한국 남자는 근엄한 척하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성적 욕구를 분출하는데, 싸이는 그렇지 않다. 뮤직비디오에서도 현아를 만났을 때 ‘아름다워’ 하고 눈빛을 주고받지 않나. 여자들에게는 즉석 만남과 관련해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상대가 갑자기 미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싸이는 안심하고 놀 수 있는 양아치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싸이의 퍼포먼스를 보고 흥겨워하는 것이다.”


“싸이 특유의 개성이 세계를 녹였다”

물론 싸이는 남자에게도 거부감이 없다. ‘군대 두 번 간 강남 오렌지’라는 점은 그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친근한 쪽으로 끌어다놓았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싸이는 자기를 희화화한다. 유학파, 강남 부잣집 아들이라는 배경을 재수 없게 풀지 않는다. 얘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나랑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싸이가 “이 시대가 남자에게 요구하는 재미나 문화를 충족시켜준다. 싸이 콘서트는 예술을 추구하는 아티스트가 위에서 군림하는 콘서트가 아니다. 관객과 함께 수평 구조에서 논다. 싸이는 쌍방향 소통을 한다”라고 분석했다.

싸이의 이런 행보는 초기부터 그랬다. 그런데 유독 왜 이번 앨범에서 터진 것일까. 물론 유튜브와 트위터가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미 구축된 전 세계 K팝 팬이 확산을 도운 측면은 있지만 미국에서의 발화 지점은 기존 K팝의 접점이 아닌 곳이었다. 배평론가는 “이번 앨범에서 싸이는 최신 유행의 일렉트로닉 음악을 ‘싸이스럽게’ 소화했다. 예전 싸이 음악은 최신의 느낌은 안 주었는데 이번 앨범은 미국의 최신식 사운드를 도입하고 동시에 비디오에 싸이 특유의 유머를 넣었다. 그게 통한 것 같다. 5집은 싸이의 자의식이 강해서 대중이 부담스러워했다. 실험적인 측면도 있었고. 싸이는 6집에서 다시 원래의 싸이, 광대로 돌아왔다. 싸이는 기본적으로 엔터테이너이다. 그 임무에 충실할 때 가장 싸이다운 음악이 나온다”라고 평했다.

미국에서는 유독 화장실 유머를 구사하는 SNL과 같은 TV 쇼나 <아메리칸 파이>나 <행오버> 같은 영화가 시리즈로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는 코드이다. 영어권 관람자들은 대개 싸이의 허리춤이나 노홍철의 골반 댄스에 폭소를 터뜨린다. 국내에서도 최근 화장실 유머가 붐이다. 수시로 치질 걸린 사실을 들먹이며 허리 돌리기 막춤을 추는 노홍철이나 유재석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이다.

내용을 몰라도 화장실 코드의 코미디임을 알 수 있는 뮤직비디오, 최신의 댄스음악과 따라 하기 쉬운 댄스 동작이 <강남스타일>을 ‘강제 해외 진출’시킨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강제 해외 진출’이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낼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일단 싸이는 9월에 저스틴 비버와 모종의 이벤트가 있을 것임을 밝혔다. 싸이가 만약 영어판 <강남스타일>을 미국 시장에 발매한다면 ‘빌보드 통합 순위’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고 상당한 음반 판매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유튜브를 통한 ‘강제 해외 진출’ 방식으로는 많아야 10억원 안팎의 음원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이다. 다만 ‘금의환향’한 싸이에 대해 내수가 폭발하면서 국내 광고 모델로 나서면 추가 수입을 올릴 수는 있다. 싸이는 10여 개의 광고 출연 계약을 맺었고 대략 이 금액이 40억원대 안쪽이다. 또 8월 초에 진행한 <더흠뻑쇼>에서 3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그가 쇼에 쏟아붓는 비용이 많기 때문에 큰 수익을 남기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속한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YG가 자체 스튜디오에서 양성한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싸이는 공연이나 음원 수익에서 자신의 몫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실질적으로 YG의 수익성을 개선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회성일지, 롱런일지는 9월 방미에 달려

<강남스타일>이 1회성 해외 토픽으로 끝날지, K팝의 또 한 번의 도약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될지는 9월에 있을 그의 방미에 달려 있다. 유튜브 조회 횟수는 1억번을 향해 진격 중이고 CNN과 미국의 <타임>, 영국의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 프랑스의 <르 파리지앵>, 호주의 <시드니 모닝헤럴드> 등 각 대륙의 주요 언론들이 모두 <강남스타일>과 싸이를 다루었다. ‘토종 쌈마이’ 싸이가 메이저 팝 배급망을 타고 오프라인의 각 대륙으로 진출할지 궁금해진다.


‘일부 계층’에 발 묶인 남미의 K팝

연수차 칠레에 간 어느 한국 분이 칠레에서 열린 WCG(World Cyber Games) 2012 Pan American Championship을 보러 갔는데, 마이크 테스트를 하던 장내 아나운서가 갑자기 “오빤 강남스타일!”이라고 중얼거려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칠레가톨릭대학교를 방문한 한국 교수가 강의하던 중, 올해 초에 칠레에 다녀간 그룹 JYJ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군지 알죠?” 하고 묻자 학생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룹 JYJ의 칠레 공연 소식을 전한 칠레 최대 언론인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 신문은 JYJ의 공연에 대해 보도하며 묘한 행간의 의미를 남겼다. “남한에서 온 새로운 청소년 밴드, 수백 명의 열광적인 소녀팬, 그들이 어린 관중에게 노래를 하자, 미친 듯 소리를 질러대는 관중의 흥분한 외침과 통역의 난해한 한국어 억양 ….”

K팝은 남미의 ‘일부 계층’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남미 전역에 빅뱅,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2PM, 2ne1 등의 팬클럽이 있고, 이들의 춤과 노래를 모방하는 그룹 그리고 심지어 모방 그룹을 지지하는 팬클럽도 있다. 칠레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는 모방 그룹을 대상으로 매년 K팝 경연대회를 연다.

팬클럽 회원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여학생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 계급 인식이 뚜렷한 남미에서 K팝을 좋아하는 청소년 그룹은 ‘평범하지 않은’ 혹은 ‘사회 계층이 높지 않은’ 집단으로 여겨진다. 니콜라스 레타말(칠레가톨릭대학교 학생·남·23)은 “K팝을 좋아하는 계층은 대규모라기보다 일종의 ‘언더그라운드’라는 느낌을 준다”라고 말했다. 마델레이네 솔라노(칠레가톨릭대학교 학생·여·22)는 “K팝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한국 혹은 한국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민원정 ㅣ 칠레가톨릭대학교 아시아학센터 교수


 
 

존재감 키운 유럽의 K팝,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팝의 고장 미국에 상륙하면서 유럽에서 K팝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는 모양새이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파리지앵과 공중파인 M6TV에서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이, 유럽 작곡가들이 SM에 곡을 팔아 수익을 올리고 있는 현상을 자세히 보도하며 K팝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지난 8월 초 BBC는 KBS와 공동으로 K팝 콘서트와 고품격 K팝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K팝이 유럽에서 ‘한국’ 브랜드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적지 않게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북에이레 벨파스트에서 열린 MTV 유러피안 뮤직 어워드에서는 유럽인들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빅뱅이,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제치고 베스트 월드와이드 액트 어워드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팬들의 온라인 투표로 결정된 수상 결과는 빅뱅의 유럽 내 인기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 지난 6월 인기 그룹 샤이니가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녹음 장소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현지 음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쇼케이스도 한국 대중음악사에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행사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K팝이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K팝은 유럽 팝 시장에 겨우 존재감을 알렸다. 유럽에서 K팝 CD를 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K팝이 유튜브와 블로그 등 인터넷을 주요 전달 경로로 삼고 있는 탓에 음악을 주로 CD나 디지털 음원으로 소비하는 유럽인의 문화 생활 패턴과는 거리가 멀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이 K팝의 주요 소비층이라는 점도 넘어야 할 한계로 꼽힌다. 

브라이튼(영국) · 라제기 ㅣ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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