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우리 음악, 굿판에도 있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9.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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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굿음악제에서 돋보인 김반장 인터뷰

레게소울 밴드 윈디시티의 리더 김반장. ⓒ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9월15일 남한산성에서 기발한 페스티벌이 열렸다. ‘굿음악제’. 현대적 록 페스티벌과 우리의 전통 굿이 결합된 무박 2일 음악제였다. 록음악이 서양식으로 관중의 혼을 쏙 빼놓는 카타르시스를 경험시켜준다면, 굿은 우리의 전통음악과 춤으로 굿판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경험시켜주는 한바탕 잔치판이다. 이 행사에는 황해도 굿의 김매물 만신과 전라도 씻김굿의 진금순 당골, 한영애와 한상원 밴드, 레게소울 밴드 윈디시티, 펑크록의 대명사 크라잉넛 등이 출연했다.

“한국의 흙냄새 담긴 ‘청국장 레게’ 하고 싶어”

이들 출연진 가운데 눈길을 모으는 출연자는 윈디시티이다. 윈디시티의 리더 김반장은 언니네이발관에서 1집까지 활동하다가 탈퇴한 뒤 2000년대 초반부터 소울 취향이 짙은 아소토유니온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홍대 앞에서 거리 공연을 펼치며 스트리트 펑키 밴드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이 발표한 1집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리듬앤블루스소울 상을 타는 등 음악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반장은 아소토유니온을 깨고 2005년 윈디시티를 결성했다. 펑크 소울에서 레게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윈디시티를 만든 것이다. 윈디시티는 2010년 김반장을 남기고 멤버가 모두 바뀌었다. 레게에 우리 전통음악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월드뮤직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2000년 이후 김반장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미국적인 펑크 소울을 하던 음악인이 자신의 출발점인 레게음악을 지키면서 전통음악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자신의 음악 영역을 확장시켜 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윈디시티가 지난 6월 발표한 앨범에는 황해도 굿에서 멜로디를 빌려온 <모십니다>와 ‘청국장 레게’라고 부르는 <잔치레게> 같은 음악이 실려 있다. 지난 8월에는 KBS의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이장희의 <그건 너>를 레게와 굿거리 장단과 테크노음악을 이용해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음악으로 선보였다. 일반 시청자들에게 낯선 윈디시티는 이 노래로 <불후의 명곡>에서 3승을 했고, 방송사에서는 오는 10월 윈디시티를 ‘다시 모실’ 계획이다. 굿음악제의 주최측에서도 김반장을 기자간담회에 간판으로 배치했다. 그 행사에서 김반장은 <모십니다>를 불러 굿음악제가 왜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이 만나는 자리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국의 흙냄새가 담긴 ‘청국장 레게’를 하고 싶다는 그는 “우리의 장단이 좀 더 영적이라고 느껴진다. 아프리칸 리듬은 거기까지는 못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가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윈디시티를 만들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명이나 뽕이라고 불리는 음악적 감성이 한국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것이 국경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보편적인 정서이다.”

소울과 펑크, 레게를 탐험하던 그는 그때부터 굿판에 나타났다. 김매물 만신의 굿판을 2년 전 찾아본 뒤 김매물 할머니의 ‘팬클럽 회원’이 되었다. 그는 굿판에 다니면서 진짜 생활 속의 음악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방송에서 ‘허름한 식당에서 윈디시티가 연주하기 시작하자 밥 먹던 장삼이사들이 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이것은 김반장과 윈디시티가 추구하는 일상 속에서의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김반장은 1년 전부터는 판소리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과거 아소토유니온 시절의 창법과 최근 그가 레코딩에 남긴 소리나 라이브 영상을 보면 음색과 창법이 변한 것이 느껴진다. 그는 “판소리는 소울보다 많은 소리를 낸다. 아프리칸 리듬이 심장 박동에 기인한 것이라면 판소리는 호흡이다. 가락과 장단이 오묘하게 엮여 있다. 이런 것은 아프리칸 리듬에 뿌리를 둔 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아프리칸 음악이 더 심플하게, 듣는 이에게 다가서는 것 같다. 판소리는 그보다는 복잡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예를 갖추게 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삶에 대한 자세를 바꾸게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15일 남한산성에서 ‘굿음악제’가 열렸다. ⓒ 경기문화재단
“굿판 안에 예술과 춤과 음악이 다 들어 있다”

그렇다면 레게와 판소리, 전통음악에 공통 요소가 있었던 것일까. “산업혁명 이후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 일하면서 무슨 노래가 나오겠나. 육체 노동을 통해 밥을 만들던 시절에는 배에서 노를 젓든, 벼를 벨 때든 같이 호흡을 맞춰야 했고 그것이 놀이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레게는 노동의 현장에서 빚어낸 삶의 블루스이다. 그래서 삶에 대한 의연함, 자기 중심이 느껴진다. 판소리에서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다만 자아보다는 더 어른스러운 감정이 느껴진다. 판소리는 자기중심적이라기보다는 자연과 순환하고 호흡하는 느낌이 난다.”

그는 자신이 옛 음악에 주목하는 이유가 “지금의 음악을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지만, 만약 있다면 옛것을 오늘에 맞게 새로이 개선하는 것, 그게 새것이다. 문화는 리싸이클링이다. 지난 것들에 영향을 받는다. 다만 리싸이클링의 방향이 중요하다. 외국 공연을 갔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굿판에 가보면 우리가 생각이나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 서양화되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서양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음악과 예술을 재단하고 있다. 굿판은 판이 하나이고 그 안에 예술과 춤과 음악이 다 들어 있다. 서양식으로 재단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이런 작업은 일단은 나를 위한 것이다.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음악을 하면서 커지고 성숙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게 해보니 한국의 전통이라는 멋을 숨길 수가 없다. 음악관이 바뀌게 되었다. 윈디시티의 멤버가 2년 전에 대폭 바뀐 것도 음악적인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통음악을 되살리자는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지금 대중의 입에 착 달라붙게 만들어준 이는 드물었다. 어느 날 김반장이 옛것을 다듬어 쓴 노래를 들고 나와 부르기 시작했다. “모십니다, 모십니다, 반가운 여러분. 우리 음악으로 모십니다. 수많은 세월을 돌고 돌고 돌고 돌아서 어떤 인연으로 우린 만나게 됐는지…모십니다 모십니다….”


대중가요와 굿음악이 ‘합창’하는 이유 

굿음악제의 박흥주 예술감독은 이번 행사의 특징 중 하나를 ‘굿색이 강한 대중음악과의 만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굿을 할 때 쓰이는 음악을 ‘굿음악’이라고 하는데 풍물·민요·가요 등 동서고금의 그 어떤 음악이라 해도 굿에 쓰이면 ‘굿음악’이다. 굿음악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대중음악이었다. 동서고금의 그 어떤 음악과 선율도 거부하지 않고 내 친구나 부모, 형제, 애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면 적극 수용하고 받아들였다. 이미 굿판에서는 트로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록을 즐겼던 사람, K팝을 즐겼던 사람을 위로하는 굿판에서 평소 그들이 즐겼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다. 실제로도 재즈음악으로 굿판을 벌이고 레게음악도 굿음악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 제사상에는 전통 가례집에는 나오지 않는 초콜릿이나 바나나, 케이크 등 20세기 이후에 새로 만들어지거나 수입된 식품이 올라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즐기던 게 그것이라면 그것을 올리는 게 제사상의 기본이라는 인식에서다. 박감독의 말은 그런 맥락이다.

그는 이번에 초청한 대중음악인을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 “‘굿성’이라는 점에서 한영애와 수리수리마수리 밴드를 초청했고, ‘판성’이라는 점에서 크라잉넛과 니나노난다를 초청했다. 윈디시티는 굿음악을 수용해 새롭게 창작했다는 점에서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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