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이단아’, 한국 영화계의 주류로 진입할까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9.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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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기간 중 한국 유명 영화인과 몇몇 기자가 현지 한인 식당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하려 했다. 우연찮게도 김기덕 감독이 이창동 감독과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식당 입구에 서 있었다. 많은 영화인이 합석을 권했지만 그는 손사래만 쳤다. 다른 영화인과 함께하는 자리를 그는 몹시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감독과 충무로 영화계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김감독은 흔히 ‘충무로의 이단아’라고 불린다. 전통적인 충무로 제작 방식을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작업 스타일을 시사하는 별칭이다.

그는 시작부터 비주류였다. 1995년 <무단횡단>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발을 내딛은 그는, 1996년 <악어>로 곧바로 메가폰을 거머쥐었다. 연출부 생활이 없었기에 선배나 은사 감독도 없다.

그럼에도 김감독의 초기 영화는 주류 영화사와의 협력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명필름(<섬> 제작)이나 LJ필름(<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쇼이스트가 그의 파트너였다. 그는 제작자와 투자자에게 거의 매번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는 ‘좋은 감독’이기도 했다. LJ필름의 이승재 대표는 “유럽 등에서 흥행에 성공한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아마 충무로 사상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영화일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2004년 <빈집> 이후 김감독의 행보는 많이 달라졌다. 같은 해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까지 거머쥔 김감독은 <빈집> 흥행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빈집>은 전국에서 9만4천9백28명이 관람하는 데 그쳤다. 전통적인 개봉 방식에 회의를 느낀 김감독은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려 했다. 기존 배급사를 통한 떠들썩한 개봉 대신 자신이 직접 극장과 접촉하고 조금씩 상영관을 늘려가는 방식을 2005년 <활>로 실험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집계에 따르면 <활>은 1천3백98명만이 보았다. 2006년 그는 “한국도 내 영화 수출국 중 하나에 불과하고, 이번이 마지막 수출이 될 것이다”라는 깜짝 발언과 함께 <시간>을 개봉했으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김감독은 2008년 자신이 처음 제작한 <영화는 영화다>의 흥행으로 주류로 진입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화는 영화다>의 배급대행사가 파산하면서 그는 가장 크게 흥행하고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독한 역설을 경험한다. 이어 자신과 일했던 젊은 감독과 프로듀서가 자신을 떠나 대형 투자배급사와 손잡고 대형 흥행작을 만들어내게 된다. 충무로의 냉혹한 흥행 메커니즘에 대한 김감독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피에타>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김감독의 충무로 입지는 많이 달라질까. 그의 영화를 향한 투자자들의 시선은 대체로 부드러워지겠지만 대형 투자배급사가 적극적으로 돈을 대겠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해외 예술영화 시장에서 김감독의 영화는 더욱 각광받겠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돈이 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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