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비리 추적하니 관련 업체들 ‘넝쿨째’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09: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 재향군인회-시행사-시공사 커넥션 수사 중

서울 송파구 신천동 향군잠실타워 건축 현장. ⓒ 시사저널 최준필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의 대출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향군은 최근 전·현직 임직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주택사업부장 출신 안 아무개씨와 U-케어 사업단장 최 아무개씨가 이미 검찰에 구속되었다. 사업 시행사 등에 수백억 원을 불법 대출해준 혐의였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사업 시행사와 알선 회사도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향군 안팎에서는 검찰이 향군의 PF 대출 비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대출 비리가 검찰에 포착되었다. 향군의 부산 및 창원 지역 공사 시공사인 정우개발이 문제가 되었다. 이 회사는 지난 2008년 미국 투자업체인 ㅋ파이낸스로부터 45억원을 대출받았다. 재향군인회가 지급 보증을 섰다. 하지만 정우개발이 미국 투자회사에 제출한 서류는 모두 위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향군의 시공사가 해외 발전소에 납품하기로 한 확인서와 재무제표, 감사보고서 등을 위조해 대출 회사에 제출한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주원)는 지난 9월1일 불법 대출을 주도한 이 회사의 임원 김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정우개발에 대출 사기를 당한 미국 투자회사는 지난 6월 한국 지사를 폐쇄했다. 금감원 상호여전감독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 본사에서 여신 전문 금융업 등록 말소를 요청했다. 그에 따른 후속 조치로 본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정우개발의 불법 대출 문제가 국제적인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기자는 정우개발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지난 2010년 부도가 난 상태였다. 결국 지급 보증을 선 재향군인회가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주목되고 있다(49쪽 상자 기사 참조).

지난 5월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향군 율곡포럼에서 박세환 회장(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향군측 “우리가 검찰에 고발한 것”

향군측은 “시공사의 물건을 상당 부분 확보해놓은 만큼 자금을 회수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검찰 조사 역시 재향군인회가 먼저 수사를 의뢰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검찰에서 수사 중인 내용은 이미 지난해 내부 감사를 통해 밝혀낸 것이 대부분이다. 직원들 스스로도 20% 월급을 삭감하는 등 내부적으로 경영 정상화에 힘쓰며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과를 지켜봐달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이참에 향군과 사업 시행사, 시공사로 이어지는 검은 커넥션을 도려낼 분위기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정우개발 역시 뒷말이 많았다. 도급 순위가 50위권 밖임에도 부산과 창원 지역 시공사에 선정된 배경을 놓고 내부적으로 의문이 일었다. 향군 역시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시공사를 선정했다는 점에서 공모 의혹이 제기되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가보훈처의 감사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보고서는 ‘향군이 재무 상태나 신용도 검증 없이 시행사와 시공사를 선정했다. 전·현직 간부들이 회사 선정을 주도한 만큼 유착이 의심된다’라고 지적했다.

한 사례로 향군은 지난 2007년 8월부터 부산에 주상복합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시행사인 ㅈ사는 2백억원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했다. 자기 자본도 없이 개발에 참여한 것이다. 전직 사업부장인 안 아무개씨가 시행사 대표 이 아무개씨를 밀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2007년부터 진행된 창원 오피스텔 사업 역시 ㅊ사가 시행을 맡았다. 이 회사 역시 신설 법인으로 개발 사업 경험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시행사를 선정한 과정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정우개발은 부산과 창원 사업의 시공을 맡았다. 사업 규모만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난 2010년 5월 부도가 나면서 향군 역시 타격을 받았다. 향군 내부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을 정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향군 관계자는 “정우개발이 시공사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도급 순위를 조작했다. 이와 관련된 조사 역시 지난해 수사 의뢰로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검찰 역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건설협회가 당시 정우개발의 도급 순위 조작을 묵인했는지 여부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난 9월1일 구속된 김 아무개씨는 평소 시행사 대표와 재향군인회 사업부장과 수시로 접촉해왔다. 이들이 대출 과정에서 공모했을 가능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1차 조사를 통해 상당 부분 근거를 확보했다. 현재 부산 및 창원 사업장의 시행사와 재향군인회 직원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조만간 수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사기 대출 놓고 국제적 법정 분쟁 벌어질 수도…  

검찰의 향군 대출 비리 수사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국제적인 법적 분쟁 가능성이다. 정우개발에 수십억 원을 대출해준 ㅋ파이낸스는 미국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이다. 전 세계에 운용하는 자금만 현재 80억 달러(한화 9조원 상당)에 달한다. 이 회사는 지난 2006년 처음 한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불법 대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6년여 만에 한국 지사를 폐쇄했다.

ㅋ파이낸스는 현재 한국 지사 폐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기자는 국제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여러 차례 미국 본사에 질의서를 보냈지만, 현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출 과정에서 정우개발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이 경우 재향군인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향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재향군인회가 관련 대출의 지급 보증을 선 것으로 알고 있다. ㅋ파이낸스에서 구상권을 청구하게 되면 책임이 재향군인회로 넘어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불법 대출 문제가 국제적인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진출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부사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시장 조사를 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향후 법정 다툼 가능성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불법 대출에 ㅋ파이낸스의 대출 담당자인 김 아무개씨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정우개발의 위조 서류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1억3천만원을 수수했다. 해외로 도피한 김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향군의 한 관계자는 “ㅋ파이낸스측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부도 난 정우개발의 오피스텔 등을 매각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주요 기사]

▶ 문재인 앞에 놓인 세 장의 카드

▶ 안철수 지지 모임, 너무 많아서 탈?

▶ ‘동해’ 홍보 책자에 ‘독도’가 없다니!

▶ 김기덕 감독,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방식으로 전했을 뿐”

▶ 한국 항구에 쌓이는 일본산 석탄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