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항구에 쌓이는 일본산 석탄재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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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논란 와중에도 ‘시멘트 원료’라며 들여와…4년 전 대비 수입량 두 배 늘어

2007년 11월27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폐타이어 등 유해 산업 폐기물 수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반도가 일본산 석탄재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석탄재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연소하고 남은 재를 모은 산업 폐기물이다. 납이나 카드뮴, 크롬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방사성 원소인 우라늄U나 토륨Ta 등을 포함하고 있어 건축 자재로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의 해외 논문도 발표되었다. 이 석탄재가 국내에서 시멘트 원료로 둔갑하면서 그동안 안전성 논란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본산 석탄 폐기물의 수입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환경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으로 수입된 일본산 석탄재는 1백12만6천t에 달한다. 전년에 비해 17%나 증가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수입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일본에서 수출되는 석탄재는 모두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한반도가 일본 석탄 폐기물의 처리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는 이유이다. 

업체별로 보면 쌍용양회의 수입량이 59만1천t으로 가장 많다. 뒤이어 동양시멘트(36만4천t), 라파즈한라시멘트(11만9천t), 한일시멘트(4만5천6백t) 순이었다.

일본 석탄재 수입 줄이는 자율협 ‘무용지물’

이들 업체는 t당 5천~6천 엔(한화 8만원 안팎)을 받고 일본 석탄재를 한국에 들여온다. 물류 비용을 제외해도 4만원 정도 이익이 남게 된다. 전체 수입량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는 지난해에만 일본산 석탄재를 수입해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산 석탄재를 수입하는 시멘트 제조업체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70억원 수준이다. 건설 경기 악화 등으로 입은 손해를 일본 석탄재를 수입해 생기는 이익으로 보전하는 셈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나마 2008년 이전에는 세금조차 내지 않았다. 일본 석탄재가 수출입 허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멘트업계는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세관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시멘트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 수입한 물량까지 소급 적용해서 2008년에 세금 처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세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관 관계자는 “돈을 받고 들여오는 폐기물에 대한 법 조항이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상징적으로 t당 1엔으로 신고받고 있다. 사실상 운송 비용에 대해서만 세금을 책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도 손해 날 것이 없다. 석탄재를 매립하기 위해서는 우리 돈으로 t당 50만원 이상의 처리 비용이 든다. 한국에 보낼 경우 그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화력발전소에 대한 의존도가 부쩍 높아졌다. 석탄재에 대한 처리 문제가 일본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의 시멘트업계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익이라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앞서의 관계자는 “지난 2002년부터 일본 석탄재를 수입하면서 국내 석탄재의 매립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관련 비용만 지금까지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지난 2009년부터 국내 발전회사와 시멘트 제조업체를 상대로 협상을 벌였다. 2009년 9월에는 국내 석탄재를 우선적으로 재활용하는 내용의 자율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석탄재 수입은 수출용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물량으로 최소화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수입되는 석탄재 물량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 4월29일 부산에서 열린 한·중·일 환경장관회의. ⓒ 연합뉴스
후쿠시마 인근 발전소 방출 물량도 있어

국내 시멘트업계는 “수출용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산 석탄재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라고 토로한다. 석탄재는 보통 바닥재(Bottom Ash)와 비산재(Fly Ash)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비산재는 이미 콘크리트 제조용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바닥재는 냉각수 역할을 하는 바닷물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시멘트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바닥재는 바닷물로 인해 염도가 높아져 시멘트 제조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일본 발전소는 담수로 소각로를 식히기 때문에 바닥재도 재활용이 가능하다”라고 해명했다.

국내 발전소가 일련의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화력발전소는 석탄재 전량을 시멘트업계에 제공했다. 하지만 석탄재가 국내 콘크리트 첨가물로 각광받으면서 일방적으로 제공 계약을 취소했다. 발전소의 물량만 믿고 광산 개발을 중단했던 시멘트 제조업체는 위기에 빠졌다. 결국 일본의 석탄재를 수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산 석탄재의 비중이 계속해서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발전소는 물류 비용까지 시멘트업계에 전가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업 폐기물은 만드는 쪽에서 처리해야 한다.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국내 석탄재를 이용하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환경부 역시 조율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국내산과 일본산의 처리 비용에 차이가 많이 난다. 민간 기업에게 막연한 희생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일부의 시각은 달랐다.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전 서울환경연합 감사)는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산 폐기물 수출의 위해성을 지적하는 시위나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석탄재가 우수했다면 수출 물량의 100%가 한국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08년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도 관련 내용이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국내산 석탄재와 일본산 석탄재의 성분 비교를 전문 기관에 의뢰한 결과 일본산 석탄재의 구리나 납, 카드뮴, 크롬 등의 비중이 국내산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국내 시멘트업계가 주장했던 염분의 농도 또한 몇 배 이상 높았다. 국내 시멘트업계의 주장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그동안 수입된 석탄재 중에는 일본 후쿠시마에 위치한 발전소 물량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해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지역이다. 시멘트 제조업계에서는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에서 들어오는 물량을 모두 취소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방사능에 오염된 석탄재의 국내 유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환경부는 최근 일본산 석탄재의 일부 시료를 채취해 중금속이나 방사능 오염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채취하는 시료나 시기가 단발성이다. 그나마 방사능 검사는 업계 자체적으로 하고 문제가 있으면 통보하도록 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관련 당국에서 좀 더 철저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 시멘트 업체의 석탄재 수출·입 관련 협조 요청 문서. ⓒ 시사저널 최준필
일본 석탄 폐기물 수입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을 끄는 사실이 있다. 일본 환경성은 지난 2008년 2월 석탄재의 한국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일본 석탄재가 한국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일본 환경성을 방문했던 환경부 민관협의회 위원의 문제 제기가 발단이 되었다. 이 위원은 “일본에서 보내온 석탄재로 인해 바다와 토양이 오염되고 있다”라면서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 환경성 역시 내부 회의를 거쳐 한국 수출을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한국 환경부는 한 달 후인 3월에 석탄재 수출 재개를 요청하는 공문을 일본 환경성에 보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공문은 최 아무개 과장 명의로 작성되어 있었다. 공문에는 ‘석탄재 하역 작업 과정에서 일부 회사의 조치가 미흡했다. 석탄재 수입이나 하역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조치했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공문은 이어 ‘기존에 한국 시멘트사와 일본측의 석탄재 수출사 간에 체결한 계약이 재개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정부 부처가 국민의 건강이나 환경 오염 문제를 배제한 채 특정 업체만을 두둔하는 공문을 일본측에 보낸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수입 재개 이후에도 석탄재의 관리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부두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한 시멘트업체를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최병성 목사는 “일본 석탄재의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공문을 보낸 정황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감사원도 지난 2009년 환경부 감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감사원은 “환경부가 시멘트업체의 요청을 받고 무리하게 공문을 보냈다”라고 지적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시멘트업계로부터 환경 개선을 위한 계획서만 제출받은 상태에서 석탄재 수출을 재개하는 협조 공문을 일본측에 발송했다.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시정 조치를 환경부측에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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