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지지 모임, 너무 많아서 탈?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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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우후죽순…“옥석 가려내야” 목소리도 커져

9월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철수산악회’를 주축으로 범국민 대표들이 안철수 원장의 대통령 국민 후보 추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 9월12일 오후 5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 입구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대통령 국민 후보’로 추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날 행사 주최는 ‘100만 희망 한꿈세 시민운동본부’ ‘철수산악회’ ‘철수포럼’ 등 안원장을 지지하는 모임들이었다. 이들은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안원장을 “국민에 의해 발견되고 발탁된 존재이다”라며 이른바 ‘국민 후보’로 추대한다고 밝혔다. 또 안원장을 향해 “시대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라며 대선 출마를 촉구했다.

그런데 기지회견이 있기 직전, 모임에 관여해온 것으로 보이는 한 인사가 자리 배정을 놓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자신의 자리가 앞줄이 아니라는 항의였다. 주최측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명패를 작성할 테니 앞에 앉으라”라고 설득했지만, 그는 “억지로 앉으면 뭐 하나. 돈 내는 순으로 (자리를 배정) 하는지 한번 따져봐야겠다”라며 불쾌한 심경을 계속 표출했다.

행사 진행도 매끄럽지 못했다. ‘안철수 대통령 국민 후보 추대 34인 대표’ 중 한 명으로 첫 인사말이 예정되었던 김병상 전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공동대표가 참석하지 않아 행사 진행 중 회견 순서를 바꾸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임박해지면서 안원장을 지지하는 모임들도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고 있다. 안원장이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두어온 만큼 상당수 모임이 인물과 조직을 내세워 ‘선점 경쟁’을 펼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벌써부터 불거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강도가 더해가는 분위기이다. 이 때문에 안원장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를 이들이 갉아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7일에는 ‘CS코리아’ 원로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 역시 “길을 잃고 표류하는 이 나라를 생각하면 이제 떨쳐 일어날 때가 되었다”라며 안원장의 조속한 출마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안원장 추대를 위한 촉구 결의대회를 열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역시 뒷말을 낳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안원장과 경쟁해야 할 민주당측이 ‘안원장 후보 추대’ 기자회견을 주선해준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기 전 “민주당 전직 원로 의원들이 현 시국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오셨다”라고 소개를 했다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런 기자회견인지 몰랐다. 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해명에 나섰다.

다음 날에도 기자회견은 이어졌다. 안원장을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10개 단체로 구성되었다는 ‘대통령 국민 후보 추대 범국민연대’가 “도덕적이고 비전과 통찰력을 두루 갖춘 안원장은 국민의 희망을 대선 출마로 응답해야 한다”라고 촉구한 것이다. 여기에는 ‘CS코리아’ ‘철수처럼’과 함께 ‘철수산악회’의 이름이 명단에 올랐다. 그러자 ‘철수산악회’측이 발끈하고 나섰다. 이 단체에 가입한 적이 없는데 ‘철수산악회’ 명의를 임의로 도용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체 불명의 단체’라는 표현을 써가며 명예훼손으로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대해 정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자리 배정’ 등 둘러싸고 고성 오가기도

국회 앞에 사무실을 둔 ‘철수산악회’는 현재 안원장 지지 모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원 3만명 규모를 자부하는 ‘철수산악회’는 광역단체별로 지부를 두고 그 아래 지회까지 결성하는 등 전국적인 조직의 골간을 갖춘 채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100만 희망 한꿈세’ 운동을 주도하면서 이종걸 민주당 최고위원, 양승택 전 정통부장관,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 정대철 민주당 고문 등 유력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해 포럼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 모임이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의 지지 모임인 ‘길벗산악회’를 모태로 한 것임이 알려져 뒷말이 나오고 있다. 엄대우 ‘철수산악회’ 중앙회 회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옛 민주계 인사이다. 엄회장은 김 전 장관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부산시장 후보로 선전을 펼친 후 대선 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지 모임인 ‘길벗산악회’를 결성해 지원에 나섰다. 부산 지역의 한 정치권 인사는 “지난 4·11 총선에서 김 전 장관이 낙마하자 산악회를 해체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철수산악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히려 조직을 확대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정창덕 고려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CS코리아’도 충북본부에 이어 인천, 제주, 전북 등 지역별로 창립대회를 개최해 조직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9월 말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창립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가 이끄는 ‘한국비전2050포럼’은 안원장에게 제안할 정책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 밖에 ‘안사모’도 지역별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등 활동 폭을 넓히고 있으며, ‘철수처럼’도 안원장 지지 관련 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

이처럼 안원장 지지 모임이 ‘난립 양상’을 보이면서, 선거철을 틈탄 정치 브로커들이 활개 칠 가능성도 제기되는 등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안원장 지지층 주변에서는 “하루빨리 지지 모임을 정리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은 어디를 중심으로 모이게 될지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원장 지지 모임 결성에 초기부터 관여해온 한 인사는 “모임이 여러 군데이다 보니 복잡해 보이지만,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지난 2월 ‘나철수’ 결성 때 함께하려고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통합될 것이다. 그리고 안원장 추대는 7월부터 준비되어온 일이다. 한두 군데에서 움직인 것이 아니다. 어느 모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지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나철수’는 지난 2월 안원장 팬클럽을 표방하며 출범한 모임이다. 

이처럼 지지 모임들 간 경쟁이 격화할 경우 안원장의 대선 행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실제 안원장측은 지금도 이와 같은 지지 모임에 대해 “자발적인 모임을 안원장과 연결 지을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거리를 두고 있다. 취재 결과, 지금 거론되고 있는 모임의 대다수가 안원장과 이렇다 할 교류 없이 자생적으로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엄대우 회장은 “안원장과 전혀 상의가 안 된 상태로 순수하게 지지하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엄회장은 “안원장에게 가장 필요한 조직과 단체이다”라고 자신했다.

안원장측이 지금은 이들 모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반응이다. 기존 정당의 도움 없이 대선 정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세력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지 모임들이 규모를 확대하는 배경에 이러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원장을 돕고 있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모임 내에는 정말 안원장의 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참에 줄 한번 잡아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생적으로 생기는 모임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다만 대권 출마를 선언하게 되면 그때는 옥석을 가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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