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앞에 놓인 세 장의 카드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9.18 10: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동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파죽지세로 달려온 문재인 상임고문 앞에는 새로운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 위기의 민주당을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 중진 의원들과 초선 의원들도 모임을 갖고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문재인 고문 캠프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문고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제 ‘안철수와 따로 가기’ ‘손학규-김두관 끌어안기’ ‘이해찬-박지원 밀어내기’ 세 갈래이다. 이 카드를 모두 승부수로 띄울 수 있을지는 문고문의 몫이다.

ⓒ 문재인 제공
 #1. 1997년 11월3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 후보와 자민련 총재인 김종필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서명한 직후였다. 김대중 후보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서고, 두 당이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는 합의문이었다. 이 합의는 두 김씨의 담판에 의해 이루어졌다. 양측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대중 후보는 “기적을 이뤄냈다”라며 감격해했고, 국민회의는 완전히 잔칫집 분위기였다. 반면 자민련의 분위기는 마지못해 박수를 치면서도 어두운 표정이 역력했다. 김종필 후보는 “단일화는 꼭 필요하지만, 어떻든 나를 대선 후보로 선출해준 당원들에게 죄송하다”라고 밝혔다.

#2. 2002년 11월16일, 자정을 막 넘은 새벽 0시40분경. 국회 귀빈식당에 급히 기자회견장이 만들어졌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들어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는 가운데,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과 국민통합21 김행 대변인은 방금 막 합의에 이른 단일화 경선 방침을 발표했다. 열흘 후인 25~26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에 의뢰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높은 지지율이 나온 후보로 무조건 단일화한다는 내용이었다. 12월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 후보 단일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장이었기에 합의안이 발표된 이후 양측의 분위기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3. 2007년 12월4일,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식이 열린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 앞에 나란히 앉은 정동영 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두 분이 같이 앉아 있으니 보기 좋네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민주 진영의 두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이루라는 뜻이었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크게 뒤져 있던 두 후보는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 큰 입장 차를 나타냈다. 두 후보는 이날 단일화를 약속했지만, 6~7일 협상 과정에서 끝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채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김대중·노무현의 길을 갈까, 김종필·정몽준·정동영의 길을 갈까

‘3자 구도’의 선거판에서 두 진영이 단일화를 이루면, 균형은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1997년과 2002년 대선은 단일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 반면 단일화에 이르지 못한 2007년에는 두 후보 모두 패배했다. 물론 2007년 대선은 이미 승부가 너무 기울어진 탓에 단일화를 했더라도 그 효과를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또 그 때문에 단일화에 실패한 측면이 크다. 1997년의 단일화는 두 후보 간의 담판에 의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열세인 후보의 ‘양보’로 이루어졌고, 2002년 단일화는 양측의 팽팽한 지지율 탓에 협상에 의한 표 대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2012년 대선 역시 후보 단일화 여부가 대선 판도를 좌우할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9월14일 현재 경기와 서울 경선만을 남겨둔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유력시되는 문재인 상임고문은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짧은 기간 내에 정치 초년병으로서 제1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에까지 올라섰지만, 그는 지금 ‘정치 지도자 문재인’의 검증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가 김대중·노무현의 길을 갈지, 아니면 김종필·정몽준·정동영의 길을 갈지 여부가 곧 판가름 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최근 안철수 원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진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결국은 2002년 단일화의 표 대결 방식이 아닌, 1997년 단일화 때처럼 두 후보 간의 결단에 의한 담판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100%라고 본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 안철수-박원순 담판의 형태로 갈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후보 단일화가 결코 쉽지 않다”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2002년처럼 단순 여론조사 방식의 표 대결은 민주당 입장에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지금 민주당 입장에서 제일 바람직한 것은 문고문과 민주당이 쇄신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려서 안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양보’를 다시 한번 이끌어내는 것인데, 지금 문고문이 보이는 지도력으로는 이것조차도 불투명하다”라고 밝혔다.

김교수나 신교수 모두 지금 민주당이 위기라는 인식은 공감했다. 자칫 민주당이 이번 대선 정국에서 제3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교수는 “민주당이 답답한 상황을 더 연출해서 안원장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말 그대로 ‘두안신민(頭安身民)’이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즉, 민주당 몸통에 머리는 안원장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김교수는 “민주당은 자칫 대선 후보를 못낼 경우 ‘불임 정당’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 논리는 맞지 않다고 본다. 박원순 시장이 경선에서 이겼다고 해서 민주당이 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은 박원순 시장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은 것이 아닌가”라고 밝혔다. 마치 민주당에게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대선 후보를 선출해낸 잔칫집 민주당에게는 결코 달가울 리 없는 전망이지만, 그만큼 지금 민주당과 문재인 고문의 위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고문을 비롯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지난 8월25일 제주도 제주한라체육관에서 열린 대선 후보 선출대회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 문재인 제공
“이젠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주문 많아

지난 9월10일 4선급 이상의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급히 회동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종걸 최고위원은 9월13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위기 국면이라는 점에 다들 공감했다”라며 “당 쇄신을 하자는 요구가 사실상 처음 시도되었다”라고 밝혔다(28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는 “중진들만의 모임에 그치지 않고 폭을 넓혀나갈 것이다. 아마 바로 뒤이어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 어떤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그 다음 날인 14일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선이 끝나면 당 지도부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선대위 구성을 포함한 당 운영의 권한을 대선 후보에게 위임함으로써 후보자가 당의 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사실상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문재인 고문 캠프의 움직임도 긴박해지는 모습이다. 그동안 문고문 주변에서는 문고문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건의하고 그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온건한 화합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서로 대립하는 양상이라는 전언이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전자를 ‘쇄신파’라고, 후자를 ‘통합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라는 주장과 함께 문고문 캠프 주변에서 주문하는 향후 문재인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 가닥으로 갈린다. 첫째는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를 더는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각각 독자 출마를 불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쪽에서 먼저 매달리듯이 단일화를 거론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안원장 무시’ 전략이다. 둘째는 손 전 대표와 김 전 지사를 반드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고문측의 한 인사는 “솔직히 손 전 대표나 김 전 지사의 입장에서 보면, 향후 단일 후보로 문고문이 되는 것보다 안원장이 되는 것이 자신들의 운신의 폭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원장으로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손 전 대표와 김 전 지사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이는 자칫 당에 더 큰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만큼, 손 전 대표와 김 전 지사를 반드시 우리 편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정권에서 손 전 대표는 ‘책임 총리’를, 김 전 지사는 ‘차기 대선 주자’를 노릴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안원장이 집권한다면 훨씬 가능한 그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점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세 번째 승부수이다. 지금의 ‘이해찬-박지원 대표 체제’와 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쇄신파의 목소리가 강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고문이 앞장서서 이대표와 박원내대표를 쳐낼 각오도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고문을 잘 아는 주변과 당내 비주류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최근 문고문은 “쇄신과 통합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상 쇄신보다는 통합 쪽에 더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고문 캠프의 한 핵심 측근은 “문고문이 어떻게 이대표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손 전 대표 캠프 진영의 한 인사는 “문고문이라고 해서 ‘이-박 체제’가 자신의 대권 가도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점을 왜 모르겠나. 하지만 그의 성향으로 볼 때 자신이 먼저 칼을 들이대지는 못할 것이다. 알아서 그만둬주기를 바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고문의 차이이다. ‘리더형’의 노통과 ‘참모형’의 문고문의 차이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사실 문고문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단순하다. 이대표와 박원내대표를 당분간 2선으로 후퇴시키는 길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손 전 대표와 김 전 지사를 끌어안을 수 없고, 안원장과의 단일화 협상 등 대선 정국을 자신이 주도할 수도 없다. 너무나 간단명료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문고문이 과연 정치 고단수인 이대표나 박원내대표를 상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라고 밝혔다.

9월9일 대전에서 열린 대전ㆍ세종ㆍ충남 순회 경선에서 한 후보의 지지자들과 진행 요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김한길측 “문재인에게 숙제 냈다”

당내 상황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당내 비주류 진영의 한 의원은 “박원내대표도 그렇지만, 특히 이대표는 자신의 주도하에 대선을 치러야만 야권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 ‘정치도 모르고 선거도 모르는 문재인이나 안철수로 어떻게 박근혜를 이길 수 있나’라는 강한 확신이 그것이다.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 인사는 “이대표가 자아도취에 빠졌다”라며 노골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당내 중진 의원 모임에 참석했던 한 중진 의원은 “이대표를 20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봐왔고 존경해왔지만, 최근의 모습을 보면 균형 감각이나 판단력을 많이 잃은 듯해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힘을 느끼게 된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이대표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분위기도 긴박하다. 김한길 최고위원과 가까운 한 측근은 “김최고위원은 지금의 당으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고문을 만나 ‘숙제’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숙제에 대한 문고문측의 답안을 보고 나서 판단할 것으로 본다. 생각하고 있는 바를 실행에 옮길지, 아닐지 말이다”라고 밝혔다.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상상하는 그대로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만 남겼다. 자신을 비롯한 다른 최고위원들과 함께 최고위원직 동반 사퇴를 통해 지도부를 스스로 허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선 후보 선출 이후 민주당이 한 차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시사저널 주요 기사]

▶ 문재인 앞에 놓인 세 장의 카드

▶ 안철수 지지 모임, 너무 많아서 탈?

▶ ‘동해’ 홍보 책자에 ‘독도’가 없다니!

▶ 김기덕 감독,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방식으로 전했을 뿐”

▶ 한국 항구에 쌓이는 일본산 석탄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