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 영웅들 ‘명장 혈전’ 속으로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10.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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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대표팀·K리그 등에서 지도자로 활약

ⓒ 연합뉴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미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 오늘을 보면 미래는 얼마든지 내다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2012년은 한국 축구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한·일월드컵이 열린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10년 전 한국 축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한국 축구의 장점과 선수의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며 세계의 벽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그때의 자신감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이후 월드컵과 올림픽, 청소년 대회에서 잇달아 좋은 성적을 내며 세계 속에서 당당한 경쟁력을 갖췄다. 한국 축구의 성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유망주를 육성하고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을 끌어내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히딩크 감독이 남기고 간 “10명의 스타플레이어보다 한 명의 뛰어난 지도자가 더 중요하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변화는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한·일월드컵 당시 선수 황혼기에 있었던 주역들이 지도자로 변신했고, 올해를 기점으로 그 결실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4강 신화의 영웅들이 지도자로서 펼치는 선의의 경쟁이 한국 축구를 이끌고 있다.

신화를 쓴 홍명보와 그 뒤를 쫓는 K리그의 잠룡들

지도자 세대교체의 선두에는 단연 홍명보가 있다. 독일월드컵 당시 대표팀 코치로 합류하며 지도자로 변신한 홍명보는 2009년 U-20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자신의 축구 철학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2009년 U-20 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의 숙원이던 메달 획득(동메달)에 성공하며 감독 부임 후 불과 3년여 만에 신화를 썼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할 때까지 보여준 일관된 목표 의식과 탈권위적 리더십은 축구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롤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감독 홍명보가 각급 대표팀을 택했다면 다른 영웅의 선택은 한국 축구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인 K리그였다. 2008년 황선홍이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신호탄을 쏘았다. 중·하위권 팀 부산을 맡아 3년간 리그컵과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경험치를 올린 황선홍 감독은 2011년 선수 시절 친정 팀이었던 포항 스틸러스로 둥지를 옮겼다. 지난해 정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증명한 그는 올 시즌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즌 초반 몇몇 주전들의 공백으로 인해 부진에 빠졌던 팀을 여름 들어 다시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현재 FA컵 결승에도 진출해 감독 인생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 기회를 맞았다.

2011년에는 최용수와 유상철이 시즌 중 나란히 K리그 감독으로 등장했다. FC 서울에서 코치로 긴 시간을 보낸 최용수는 시즌 초반  전임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자 감독대행을 맡았다. 최용수 감독의 적극적인 스킨십과 자신감 고조로 팀 분위기가 살아난 서울은 후반기 대반전을 거두며 정규 리그를 3위로 끝마쳤다. 시즌 종료 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최용수 감독은 올 시즌도 기복 없이 팀을 이끌고 있다. 시즌 내내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서울은 현재 K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유상철은 2011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왕선재 감독을 경질한 하위팀 대전 시티즌에서 도전에 나섰다. 승강제 도입을 앞두고 강등에 대한 위험 부담이 컸지만 외국인 선수를 성공적으로 영입하고, 경험 많은 선수를 다른 팀에서 임대해 현재 전력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정원(수원 삼성 수석코치), 김태영(전 올림픽 대표팀 수석코치), 최진철(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최성용(전 강원 FC 코치), 이민성(강원 FC 코치) 등도 지도자로의 변신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멤버는 아니지만 동일 시대에 선수 생활을 한 신태용은 2009년 성남 일화의 감독으로 K리그에 입성해 2010년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구어내며 젊은 명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에는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전남 드래곤즈의 정해성 감독을 대신해 ‘왼발의 달인’ 하석주까지 감독으로 K리그 무대에 등장하며 40대 초반의 젊은 감독들이 K리그 전체 감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합리성과 소통으로 선수들 마음 사로잡아

젊은 감독들의 본격적인 등장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준비가 안 된 젊은 지도자를 축구계가 지나치게 신뢰하는 바람에 생긴 급진적인 세대교체라는 지적도 있다. 지도자는 많은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와 직관력이 중요한데, 지도자로 전환한 지 3~4년 만에 그것이 생길 리 없다는 것이 50~60대 지도자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4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들은 “나이가 꼭 경험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황선홍 감독은 “나이가 곧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독이 어떤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팀을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얼마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팀과 감독이 얼마나 잘 맞느냐가 중요하지, 나이의 많고 적음은 중요치 않다. 성적이 안 좋으면 그만둬야 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는 우리 세대가 많은 기회를 받고 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물러날 수밖에 없다”라며 기존 지도자와 동일한 기준에서 평가받고 있음을 설명했다.

황선홍 감독의 말처럼 최근 축구계에서는 성적에 따른 감독 평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K리그는 승강제와 스플리트 제도의 도입으로 각 팀의 성적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며 감독 교체 빈도가 더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구단의 수장들이 기존의 지도자보다는 혁신과 변화를 줄 수 있는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지도자의 변화된 분위기는 그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다. 40대 초반의 지도자는 글로벌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유럽 등으로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된 세대이기 때문이다. 해외 생활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정보의 양을 늘렸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며 자신들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를 고민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차범근, 허정무 등도 1970~80년대에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성공적으로 했지만 그 지식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해외 생활을 통해 경험한 외국인 지도자에 의해 새롭게 눈을 뜬 경우도 많다. 최용수 감독은 “J리그 시절 이비차 오심 그리고 서울에서 감독으로 모신 세놀 귀네슈 등 세계적인 명장으로부터 많은 것을 흡수했다”라고 말했다. 유상철 감독 역시 “2002년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발상의 전환과 약팀이 강팀을 잡는 방법을 현재 대전에 잘 적용하고 있다”라며 당시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축구에 대해 열린 눈은 합리적인 결정과 소통을 강조하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이어진다. 홍명보 감독은 “우리는 선수 시절 결과를 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했던 축구 기계였다. 하지만 지금 선수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오늘 실패하더라도 내일의 가치를 더 높이려고 한다. 그들을 비합리적으로 대우하고, 과거 지도자들이 했던 것처럼 강압적으로 이끈다면 절대 실패한다”라고 말했다. 황선홍 감독도 “선수들이 원하는 것과 지도자가 바라는 것이 합치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러려면 지도자가 선수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역 시절 우리는 옛 지도자들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했다. 각자 감독이 되어 그 약속을 잘 지켜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젊은 지도자들의 등장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은 “감독의 밑바탕은 결국 현역 시절의 경험과 고민이다. 국제 경험이 다양하고, 시야가 넓은 젊은 지도자들의 급부상은 예고된 결과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기존 지도자가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현재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대 간의 괴리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며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그것이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 이것이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 가져다줄 궁극적인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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