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에 대한 경호 활동 백태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10.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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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붙어 있거나 없는 듯 움직이거나

8월2일 열린 ‘대전ㆍ세종ㆍ충북ㆍ충남 합동연설회’에서 한 지지자가 박근혜 후보에게 다가서서 편지를 전달하려 하자, 경호원이 제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마치 대통령을 수행하는 것처럼 제왕적인 경호를 하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여권 인사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한 경호 행태에 대해 걱정했다. 박후보 주변을 경호원들이 마치 ‘인의 장막’처럼 둘러싼 모습이 너무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후보는 누구보다도 유권자들을 가까이 접해야 하는데, 그 사이를 경호원들이 가로막는 듯한 인상을 주면 여론이 나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반 경호와 달리 이른바 ‘정치 경호’는 후보의 신변 보호도 중요하지만 표심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후보들에 대한 경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보 경호는 역할에 따라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뉜다. 후보가 방문할 현장을 사전에 점검하는 ‘선발 경호’와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호하는 ‘수행 경호’이다. 선발 요원들은 미리 현장을 찾아가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후보의 동선을 확보해놓는다. 그런 다음 수행 요원들이 후보와 함께 현장으로 이동해 오면 돌발 사태에 대비하며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흔히 경호라고 하면 후보와 동행하는 ‘수행 경호’를 떠올리게 되지만, 후보의 안전을 지키는 데는 ‘선발 경호’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고 한다.

경호 주체에 따라서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보호를 받는 ‘경찰 경호’와 당이나 후보측에서 개별적으로 임무를 맡기는 ‘사설 경호’로 구분이 된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경찰의 경호는 최고 등급인 ‘을호’ 수준이다.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에게 적용되는 경호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물론,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도 이러한 등급의 경찰 경호를 받고 있다. 현재 후보별로 10~20명의 경찰관이 파견되어 있는데, 11월25일 정식 후보 등록을 마치면 인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경호를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 우선 사고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7대 대선 때부터 대통령 후보 경호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경찰에서 파견 나온 경호 요원들은 총을 소지할 수 있다. 실탄은 경찰서에 맡겨두는데 총기 담당이 아침에 수령해왔다가 행사가 끝나면 반납하는 식이다. 물론 실제로 총을 사용할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일반 경호와 비교할 때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가 전국 어디에서든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현지 경찰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큰 혜택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러한 특별 대우에도 후보들은 ‘경찰 경호’와 별개로 ‘사설 경호’를 두고 있다. 특히 후보를 가장 가까이서 보호하는 ‘측근 경호’ 임무는 경찰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보 유출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정치권의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대선 때 유력 후보를 수행했던 야권의 한 인사는 “후보의 개인적인 일정에는 경찰관을 잘 데리고 가지 않는다. 보안 때문이다. 후보가 누구를 만나는지도 노출시켜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경찰은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테러 트라우마’ 박근혜, 근접 경호 논란

안철수 후보가 9월19일 서울 구세군 아트센터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할 당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측근 경호’의 경우 전문성보다 충성도가 우선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 형태는 소속 정당과 후보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야권의 유력 후보인 문후보의 경우 ‘원거리 경호’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경호원이 후보와 밀착해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안후보도 ‘근접 경호’는 지양한다는 입장이다. 안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경찰 인력은 10명 안팎으로 다른 후보의 절반 정도인데, 이 정도 규모가 적당하다. 그리고 인파가 너무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근접 경호는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반면 여권의 박후보는 ‘근접 경호’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러다 보니 행사장이나 거리 유세에서 박후보에게 접근하려는 지지자들을 경호원들이 저지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박후보에 대한 경호를 두고 ‘과잉 경호’ 논란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박후보측이 갖고 있는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해석이 있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지원 유세 도중에 뺨이 면도칼에 베이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통 경호’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청와대 생활을 해 ‘근접 경호’에 익숙하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박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문후보나 안후보는 정치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근접 경호’를 받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고 또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생각이 바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후보에게 ‘근접 경호’는 양날의 칼이다. 신변 보호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지나칠 경우 유권자들에게 거부감을 심어줄 수 있다. 20년 가까이 정당 대표와 대선 후보의 경호 업무에 관여해온 한 인사는 “테러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작정하고 달려들면 아무리 가까이서 경호한다고 해도 막기 힘들다. 어떻게 하든 막아보겠다고 ‘병풍’을 치면 위압감만 커진다. 지지자들은 후보를 보겠다며 몇 시간씩 기다리는데 접근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면 좋은 말이 나오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호 전문가는 “언론을 통해 후보와 밀착해 있는 경호원들의 모습이 부각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후보와 근접해 경호를 하더라도 카메라를 피해가면서 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해서인 것 같은데 나중에 지적 사항이 되는 행동이다”라고 설명했다.


미래 권력에 줄서는 ‘경호 경찰’ 행태는 그대로 

경찰청은 올해 대선 후보 경호 요원을 선발하면서 예전에 없던 응시 자격을 몇 가지 제시했다. 그중에서 ‘현 계급 임용 3~5년 이내’ 부분이 논란이 되었다. 유능한 경호 요원을 뽑는 기준으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경호를 마친 후 인사상의 특혜를 배제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경찰 내부에는 대선 후보 경호가 승진 코스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그랬다. 과거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경호를 맡았던 경찰관들이 진급을 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졌다. 대선이 다가오면 정치권에 ‘줄 대기’를 하는 경찰관도 적지 않았다. 후보측에서 원할 경우 특정 경찰관을 경호 요원으로 발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경찰 안팎의 시각이다. 대선 후보 경호 실무를 총괄한 적이 있는 여권의 한 인사는 “경호 업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예전에는 노고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진급을 시켜주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청와대에 데리고 들어가거나 공기업에 괜찮은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워낙 말이 많다 보니 대놓고 그러기 힘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를 경호하려는 경찰 내부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지난 7월8일 지원 접수를 마감한 결과 3백12명의 경찰관이 지원했고, 이 중에서 1백6명이 선발되었다. 일주일여 뒤에 마감한 울릉경비대장 모집에 지원한 경찰관이 한 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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