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바라본 싸이와 '강남스타일'의 마력
  • 시애틀·김영대│대중음악평론가·음악학자 ()
  • 승인 2012.10.0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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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냉소 넘어 문화적 상상력 깨우다 / "앞으로의 상황은 아무도 예상 못 해"

지난 9월14일 미국의 NBC 라이브쇼 에 출연한 싸이의 모습. ⓒ AP 연합
“대단히 매혹적인 노래입니다. 단순히 말춤이 전부가 아니죠. 어느새 후렴구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한국어를 몰라도 가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분명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트렌디한 음악이라는 점입니다.”

한 로컬 DJ가 전해준 <강남스타일>에 대한 촌평을 되씹으며 차를 운전한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시애틀의 워싱턴 주립대 주변 대학가로 빠져 나오자 어디에선가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다름 아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수많은 인종이 뒤섞인 미국,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강남스타일>
은 가요가 아닌 ‘팝’이다. 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던 제도권 방송국이 앞다투어 이 노래를 선곡 리스트에 올려놓고 학교에서는 밴드 합주곡으로, 팀 응원가로, 개강 파티의 춤곡으로 <강남스타일>을 즐긴다는 소식도 접한다. 미국 유학 생활 5년 만에 처음 겪는, 실로 기이한 경험이다.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 수 3억건을 돌파하고, 음악팬의 숙원(?)과도 같던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 오르며 단번에 정상마저 정조준한 지금, 어디를 가도 싸이와 <강남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매일 관찰되는 이런저런 반응 역시 한국에서만큼이나 뜨겁고도 생생하다. 예상대로 그중에 누군가는 환상을, 또 누군가는 회의적인 시선을 더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담론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한 구조 안의 서로 다른 층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그 둘을 가로지르는, 그 이야기를 뛰어넘는 변증법적인 전망은 가능할까? 싸이와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호사가의 평가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순간의 ‘바람’,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주, 유명 코미디언이자 연기자인 지미 팰런의 토크쇼 <Late Night With Jimmy Fallon>에서 싸이를 도마에 올렸다. 팰런이 초대 손님으로 나온 래퍼 아이스티에게 싸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굳이 한마디를 유도해낸 것이다. 1980~9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래퍼이며 평소 독설로도 유명한 그가 싸이의 사진을 보며 환호하는 방청객들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이냐”라며 일단 찬물을 끼얹더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말춤의 열풍을 팰런이 재차 강조하자 곧바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래퍼일 뿐이다.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음악 산업을 진작에 떠난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코믹하지만 냉소적인 어조로 <강남스타일>을 순식간에 깎아내려버린다. 사실 <강남스타일>의 예상치 못한 열풍을 짐짓 못마땅하게 보는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다. 내용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아시아 음악이 버젓이 차트 정상을 노리고 있는 것에 대한 푸념이라면 푸념이다. 말춤은 ‘우스꽝스러운’ 춤일 뿐이며, ‘수준 낮은 음악’에 열광하는 대중의 수준 역시 함께 격하하고픈 의도도 읽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우스꽝스러움’이야말로 미국이 발명해내 전 세계로 퍼뜨린 B급 코미디의 전형이며,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음악적인 기교는 대중성을 최대의 미학으로 여기는 대중음악의 필수 불가결한 특질이라는 것은 아이스티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

일부에서는 비관적 시선도 드러내

그의 독설이 전파를 탄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경쟁 방송국 ABC의 Jimmy Kimmel 라이브 쇼에는 보란 듯이 싸이가 특별 무대에서 청중과 함께 말춤을 추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빌보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싸이의 빌보드 정상 도전기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이례적인 관심을 할애한다. 냉소와는 전혀 거리가 먼, 관심 섞인 놀라움의 발현이다.

일상의 영역에서 관찰되는, 갑작스러운 싸이의 부상과 열풍을 바라보는, 조금은 차분한 시선들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미국 현지인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교포 커뮤니티에서 들리는 증언은 제법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K팝은 굉장히 멋있고 세련된 음악이라고 다들 알고 있었어요. 사실 그래서 좋아했고요. 하지만 빅뱅이나 슈퍼주니어를 좋아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이 싸이의 코믹한 춤이나 노래를 보고 멋있어 할 것 같진 않아요. 조금은 창피해요.” 평소 K팝의 열렬한 숭배자임을 자처하는 이 학생의 솔직한 증언은 YG의 수장 양현석의 “싸이의 성공은 K팝과는 별개로 놓고 보아야 한다”라는 의견과도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한다.  “(싸이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쩐지 그렇게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아요. 한국 뮤지션이라면 다 저런 춤을 추고 혹은 싸이처럼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까 봐서요.” 한 교포 인디뮤지션의 이같은 발언은 영국 신문 가디언이 얼마 전 보도한 “싸이가 뚱뚱하고 못생긴 아시안에 대한 그릇된 고정 관념을 오히려 강화할 우려가 있다”라는 비평적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싸이를 넘는 새로운 담론의 도래 가능성도

하지만 이 역시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그 자체로 국한시켜 이해하는 단절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사실 교포를 포함한 일부 한국인의 우려와는 달리 미국 대중의 시선은 오히려 그동안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문화적 주체로만 여기던 아시아인들이 보여주는 역동성과 동시대성으로 모아지고 있다. 며칠 전, 미국 <뉴요커>는 무려 15장이 넘는 지면을 할애해 K팝의 위상과 본질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쏟아냈다. 싸이의 급부상이 계기가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전통의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은 싸이의 초현실적 패션 이미지와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패션센스를 K팝을 읽는 중요한 코드로 거론하기도 했다. 일부가 걱정하는 회의적이거나 냉소적인 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럽이나 아시아권의 인기에 비해 정작 미국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2NE1이나 소녀시대, 샤이니가 싸이의 예상치 못한 대박과 맞물려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K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들었지만 애써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최근 방송에 출연했던 소녀시대 그리고 이제 싸이 덕분에 이렇게 다양한 음악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는 현지 음악인의 말 속에서 싸이와 <강남스타일>을 넘는 새로운 담론들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도 느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싸이 개인의 성공과 업적, 당장의 수치와 기록을 중심으로 쏟아내는 갖가지 논의가 앞으로 벌어질 더욱 흥미롭고 본질적인 이야기들을 온전히 전망해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후속곡으로 유력한 <라잇나우>가 <강남스타일>만큼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는 당장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빌보드 싱글차트의 다음 주 성적이 누구나의 관심사일 것도 자명하다. 하지만 싸이와 <강남스타일>, 그 거짓말 같은 성공이 남긴 파급력, 궁극적 결말의 전모는 지금 단계에서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식 앨범 발매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폐쇄적인 선곡 시스템으로 악명 높은 미국 라디오와 유색 인종에 인색한 TV 무대마저 점령했다. 정상의 문턱에 오르기까지는 3억명이 넘는 사람이 클릭한 유튜브의 뮤직비디오가 결정적이었고, 그 주체는 결국 보통의 ‘음악 대중’이었다. 

“싸이라는 개인, 그가 보여줄 미국에서의 성공 스토리는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요.” 필자의 은사이자 저명한 음악학자인 필립 스카일러 교수가 며칠 전에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다시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에 무슨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그저 벌어지는 일을 목격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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