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공백은 세대교체 신호탄?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장 ()
  • 승인 2012.10.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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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로열패밀리 웃어른의 최고인민회의 불참 배경 분석

지난 9월25일 북한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6차 회의가 열렸다. ⓒ 연합뉴스
지난 9월25일 개최된 북한의 제12기 6차 최고인민회의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특이한 안건 논의 없이 폐막되었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현안은 ‘12년제 무상 교육 제도’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소학교를 4년제에서 5년제로 바꾸고, 고등중학교 6년제를 초급중 3년, 고급중 3년으로 나누는 것이 골자이다. 졸업 연한이 1년 길어진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슈가 될 만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갑작스레 1년에 두 차례의 회의를 개최하면서까지 주변 국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큰 쟁점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초 ‘신(新)경제 관리 개선 조치’를 발표한다거나, 국가 기구의 변동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모두 빗나간 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가장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바로 김경희의 불참이었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인 김경희 당비서가 최고인민회의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은 또 다른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김경희는 평양 주석궁 김씨 왕조의 ‘로열패밀리’ 중 최고의 파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김정은의 막후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말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국가장의위원회 구성 14위의 서열이 바로 다음 날 금수산궁전을 참배할 때는 5위에 호명되는 힘을 과시한 바 있다. 즉, 당연히 오르는 정치국 상무위원 네 명을 제외하면 바로 다음의 위치라는 것이며, 사실상 2인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상은 최근까지도 변동이 없었다. 

김경희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9월 김정은과 동시에 대장 칭호를 수여받았고, 이어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오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비서국 비서에 올랐다. 로열패밀리 중에서도 제일 어른 격인 김경희가 비서국 비서에 선임된 것은 매우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비서는 당의 제1비서 김정은을 보좌하는 자리이며, 현재 10명의 비서 중 김경희와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이것은 과거 김정일이 비서국 비서로서 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김정은의 통치 행위에 김경희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최근 총참모장 리영호의 해임을 비롯해서 당과 군부 원로들의 일선 후퇴가 관심 사안이 되고 있는 탓에, 동일 선상에서 김경희의 최고인민회의 불참도 남다른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북한은 이미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규약 개정을 통해 ‘명예당원’(제1장 10절) 제도를 신설하고 원로들의 퇴임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형식을 취한 바 있다. 그리고 ‘명예당원 1호’가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라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김영주라는 상징적 인물을 앞세워 자연스럽게 원로들의 2선 퇴진을 유도하기 위한 시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원로들의 퇴진으로 생긴 공백에 새롭게 젊은 세대들을 대거 당원으로 진입시키면서 김정은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세대교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최근 평양남새과학연구소와 평양화초연구소를 현지 지도했다. ⓒ 연합뉴스
원로들의 퇴진 유도하는 분위기

더욱이 김경희는 지난 9월1일자 조선중앙통신 보도인 ‘대동강타일 공장 현지 지도’에서 김정은을 수행한 이후 북한의 모든 매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9월25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주석단에도 빠져 있다. 바로 직전인 5차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할 당시 5위로 호명된 인물이 불과 5개월 만에 열린 6차 최고인민회의에 참석치 않았다는 것은 특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과거 김정일 역시 2010년 4월 개최된 제12기 2차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하는 등의 전례가 있었지만, 최근 김경희가 한 달여가 넘도록 매체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성격이다. 그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당뇨병 치료를 위한 ‘싱가폴 방문설’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최근 급부상을 김경희 공백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는 견해도 있다. 즉, 김정은 체제가 안정 단계에 접어들자 김경희 비서는 과거와 같이 한 발짝 물러서는 위치로 회귀하고 대신 남편인 장성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지난 4월 이후로 볼 수 있다. 장성택은 ‘8·25 기념 공연’(김정일이 선군 혁명 령도를 시작했다는 1960년 8월25일을 기념해 2005년부터 거행되는 행사)과 9월16일의 아리랑 공연 관람 때 7위로 호명되었던 김정각보다 앞서 거명되었고, 실제 행사장에서도 김정각보다 김정은에 더 가까이 자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즉 지난 4월부터 정치국 상무위원을 제외하면 김경희·김정각·장성택 순으로 호명되어왔고, 8월25일에는 김정각과 자리를 바꾸어 장성택이 먼저 호명되기도 한 것이다. 또한 장성택은 지난 9월 한 달 동안 김정은의 수행 과정에서 총정치국장 최룡해와 함께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때 ‘포스트 김정일’의 유력한 후보로까지 꼽혔던 장성택은 김정은 등장 이후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상태였고, 김정일의 사망 이후에도 15위권에서 거명되는 정도였다. 이러한 상태는 그 자신으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정은 정권 초기에 그를 핵심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이러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장성택에 대한 견제는 다른 파워엘리트들을 견제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로열패밀리인 장성택마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은 파워엘리트들에게 긴장감을 심어주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히 효과를 거둔 이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인사 전략을 구사한 것이 아닌가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처럼 김정은 정권의 인사 특징은 리영호의 해임 이후 점차 김정은 중심의 정치를 펴나갈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며, 측근들에 대한 충분한 견제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충성을 유도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장성택의 보좌 역할은 향후 점차 확고해질 것으로 보이고, 김경희는 집안의 어른으로서의 위상을 보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김경희의 부재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오히려 리영호의 퇴임 등 원로들의 일선 후퇴가 예견되고 있는 시점에서 주석궁 ‘어른’ 김경희의 막후에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물러서는 원로들을 설득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줄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고모 김경희의 마지막 역할은 어린 조카를 위해서 세대교체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되리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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