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춤’은 누구를 위한 춤일까
  • 소종섭 편집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2.10.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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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1995년 1월10일, SBS는 드라마 ‘모래시계’를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상원·고현정·최민수 주연으로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방송되는 날에는 거리가 한산하고 술집에 손님이 없었습니다. 드라마 주제곡인 러시아 음악 <백학>의 선율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리곤 했지요. 2월16일 마지막회는 64.5%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는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한마디로 5공 세력의 몰락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래시계> 다시 보기가 한창이던 1995년 10월,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만듭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골목 성명’을 발표하며 저항했으나 결국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세간에는 <모래시계> 드라마가 전두환을 잡았다’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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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월드컵의 해였습니다. 서울광장은 물론 동네 공원에도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서울광장으로 가는 길이 태극기를 몸에 두른 젊은이들의 물결로 가득 메워졌던 놀라운 기억이 새롭습니다. ‘거리’의 기억은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월드컵 4강’ 신화는 이 속에서 탄생했지요. 월드컵 때 터져나온 흥과 열정은 정치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나요. 이른바 ‘대세론’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비주류’로 치부되었던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라는 극적인 반전 과정을 거쳐 대권을 거머쥐는 데로 나아갔습니다. 혁신하지 못하고 안주하는 길을 택했던 이회창 후보는 패배했습니다. 월드컵 응원 현장에서 분출되었던 에너지는 한국의 문화 토양을 바꾸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변혁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월4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있었던 싸이의 콘서트를 올 대선과 연결해서 보면 어떨까요? 광장을 넘어 인도까지 가득 메운 8만명의 청중이 신나게 펼친 한바탕 난장이 정치적으로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 다루었지만 <강남스타일>에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탄생한 신화,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드는 퓨전 문화, 흥에 취하게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서울광장에 모여든 청중들로부터 읽을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디어든, 제도든 마찬가지입니다. 싸우는 것, 비난하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열망입니다. 정치든,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틀을 깨고 싶다는 답답함의 분출이기도 합니다. 문화든, 행태든 마찬가지입니다.

대선 후보들은 ‘싸이 현상’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연이 아닌 필연은 없습니다. 우연인 것 같은 많은 일은 사실 그것을 잉태한 필연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우연 속에 숨어 있는 필연을 읽어내고 대처하면 그 필연에 올라탈 수 있습니다. ‘말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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