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가격, 유통 중 10배 ‘뻥튀기’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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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가족 독감 예방 접종 비용, 병·의원에 따라 12만원까지 차이 나

서울 신당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독감 예방 접종비가 병·의원에 따라 네 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서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려면 비용(진료비 포함)이 9천9백원부터 4만원까지 다양해서, 4인 가족 기준으로 4만원부터 많게는 16만원까지 든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조금이라도 값이 싼 병원을 찾아 원정길에 오르거나 공동 접종하는 방법을 총동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여러 연구기관으로부터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해마다 그해에 유행할 것으로 전망되는 인플루엔자(계절독감 바이러스)를 선정한다. 올해에는 A형 두 종류와 B형 한 종류를 선택해서 전 세계에 발표했다. 이와 함께 WHO는 해당 균주를 각국에 분양한다. 각국은 이 균주를 배양해서 독감 백신을 만들어 자국민에게 접종한다. 

의료 당국자 “백신 가격은 배추 가격”

한국에서는 녹십자가 이 균주를 받아 독감 백신 원액을 만든다. 올해 녹십자는 백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달걀값과 공장 운영비 등을 포함해 백신 원가를 2천8백~2천9백원(1회 접종량)으로 정했다. 녹십자는 이 가격에 백신 원액을 국내 제약사들에게 판다. 각 제약사는 백신을 주사 용기에 담아 상품으로 만든다. 그 상품에 자사 이윤을 붙여 도매상에게 파는데, 올해는 그 가격이 4천~5천원으로 알려졌다. 대형 제약사를 제외한 제약사 대다수는 유통망을 갖추고 있지 않아 도매상에게 백신을 넘긴다. 도매상은 유통 수수료를 붙인 7천~7천5백원에 백신을 각 병원에 공급한다. 병원은 여기에 이윤을 붙여 예방 접종 가격을 매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가 독감 예방 주사를 맞을 때의 가격이 9천원대에서 4만원대까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사실 각 유통 단계별 백신 가격은 관련 회사들의 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또, 해마다 이윤 폭이 달라지므로 관련 기업과 병원들이 취한 이윤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정부 기관, 제약사, 병원, 소비자들을 통해 단계별 독감 백신 가격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시사저널>은 백신의 원가와 소비자가가 10배 이상 부풀려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병원 관계자는 “백신은 각 유통 단계마다 몇천 원씩 수수료가 붙는다. 특히 병원에서는 이윤 외에도 진료비, 의료 기기 사용료, 인건비 등이 더 붙는다. 병원에 들어오는 백신 가격은 올해 7천~7천5백원인데, 일반인이 실제로 예방 주사를 맞는 가격은 3만원 이상이다. 녹십자가 파는 백신 원액의 원가가 최종 10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10여 개 병·의원의 독감 예방 접종 가격을 알아보니, 개인 의원은 9천9백~4만원, 국립·시립병원은 1만4천~3만원, 대학병원은 2만2천~3만5천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독감 예방 주사 가격이 9천원보다 싸거나 4만원 이상 되는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처럼 가격이 제각각인 이유는 독감 백신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비급여) 품목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정가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독감 백신 접종 가격은 시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의료 당국 관계자는 “백신 가격은 배추 가격과 같아서 백신 접종 시기(10~12월) 이후에는 싸진다. 어차피 올해 사용하지 못한 백신은 내년에 다시 쓸 수 없어서 전량 폐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해마다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지난해에는 병원에 납품된 백신 가격이 1만2천원이었지만 올해는 7천~7천5백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그만큼 병원은 올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병원마다 독감 예방 접종 가격에 큰 폭의 차이가 나자 일반인들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병원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30대 주부 김현정씨는 “서울대학교 근처에 사는데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청량리역 부근에 있는 개인 의원에서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다. 병원마다 주사비가 천차만별이어서 네 식구가 모두 주사를 맞으려면 12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조영학씨(35)는 “병원에서 국산 백신 가격은 2만5천원이고, 수입산 백신은 4만원이니 선택하라고 했다. 외국산 백신이 안전하고 아프지 않기 때문에 비싸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싼 독감 예방 주사 가격 때문에 아파트 주민이 단체로 인근 병원과 가격 협의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 정도라면 독감 예방 접종 가격 비교 사이트라도 생겨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국산·외국산, 성분·효능에 차이 없어

독감 백신의 가격은 비싼 만큼 성분과 효능이 뛰어날까? 결론부터 말하면, 국내 병원에서 사용하는 백신은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모두 성분과 효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세계 모든 제약사가 WHO로부터 분양받은 균주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고, 백신 제조 방법도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주사제냐, 코로 들이마시는 흡입제냐와 같은 접종 방식이 다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균주와 제조 방법이 같으므로 독감 백신의 성분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또 독감 예방 접종 2주일 후에 항체가 형성되고, 약 6개월 동안 면역 효과가 유지되는 백신의 효능도 동일하다”라고 설명했다.

성분이나 효과가 동일하므로 수입산 백신이라고 해서 비쌀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수입산 백신이 마치 좋은 것인 양 높은 가격에 접종되고 있다. 외국산 백신은 오히려 국산보다 원가가 싼 것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중간 마진을 많이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제약사 관계자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독감 백신의 원가는 2천5백원 선으로 국산(2천8백~2천9백원)보다 싸다. 그래야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다. 백신은 한철 장사여서 싸게 수입해서 높은 이윤을 붙여 팔면 끝이다”라고 귀띔했다.

외국산 백신을 판매하는 제약사들은 국내 독감 백신 공급량이 부족하므로 백신을 수입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자료를 보면, 올해 국내에서 필요한 독감 백신량은 지난해(2천40만 도즈)보다 7% 늘어난 2천3백만 도즈(1회 접종량)이다. 녹십자는 1천2백만 도즈를 공급했고, 나머지 1천100만 도즈는 수입 백신이다. 그러나 실제 접종량은 1천6백만 도즈로 예상되므로 7백만 도즈는 고스란히 폐기해야 한다. 수백억 원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셈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녹십자는 국내 독감 백신 필요량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독감 백신을 자급자족하는 나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감 백신 수입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일부 제약사들이 싼 가격에 독감 백신을 들여와 높은 마진을 붙여 판다. 국내 독감 백신 공급량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약사의 전략에 따라 외국산 백신을 수입하는 것이다. 올해 팔고 남은 백신은 버려야 하므로 외화를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소는 10월 초부터 65세 이상 노인·만성질환자·사회복지시설 생활자 등 우선 접종 대상자 3백84만명에 대해 무료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 있다. 보건소가 사용하는 백신은 대부분 조달청의 입찰을 통해 결정된 제약사가 납품한 제품이다. 올해 납품가는 6천3백원으로 지난해(1만2천원)보다 절반 정도로 낮아졌다. 독감 백신 가격은 낮아졌지만, 일반인이 병원에서 지불하는 독감 주사 비용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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