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지갑 든 ‘유커’들, 관광산업 판도 바꾼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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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면세점 등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올인’

ⓒ시사저널 박은숙
중국 언론이 최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중국인이 선호하는 외국 여행지 순위 3위이다. 실제로 올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2백8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직접 서울 명동에 있는 호텔을 점검하며 중국인 유치에 신경을 쓰는 이유이다. 성준원 신한증권 책임연구원은 “일본인은 서울 명동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중국인은 명동을 벗어나 저렴한 호텔을 이용하면서 면세점,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에서 쇼핑하는 데에 돈을 쓴다. 국내 관광업계가 중국인 유치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 기간(9월29일~10월7일)에 한국행 비행기 예약률은 90%를 넘었다. 지난해보다 12~19%포인트 증가했고, 중국행 항공기 예약률(70%대)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중국발 노선은 물론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국내선(제주행)에 중국어 안내 책자를 비치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재영 아시아나항공 홍보 차장은 “공항 탑승구에 중국어를 하는 직원들을 배치했고, 제주로 가는 중국인들을 위해 김포공항이 아닌 인천공항에서 바로 제주행 항공편을 제공하고 있다. 또 용산전자상가 등을 둘러보는 IT투어 상품 등을 개발해 중국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9월부터 중국인들이 기내 면세점에서 중국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인이 원화나 달러화로 바꾸지 않아도 면세 물품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안화는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 항공사의 기내 면세품 결제 화폐가 아니다.

서울 명동 거리의 중국인 관광객. ⓒ시사저널 임준선
여행사들이 비즈니스호텔 직접 지어 운영

중국인의 여행 형태가 단체 관광에서 개별 관광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최근 두드러진 점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는 자유 여행을 선호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자료를 보면, 중국인 개별 여행객 비율은 63.9%로 단체 여행객(34%)보다 높다. 이런 변화는 호텔과 여행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고급 호텔보다 다소 저렴한 호텔을 찾는다. 그러나 최근 개인 관광객과 비즈니스맨들이 늘어나면서 고급 호텔을 찾는 중국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라고 달라지는 호텔가 분위기를 전했다.

여행사들의 영업 형태도 변하기 시작했다. 모두투어는 지난 9월 1백55개 객실을 갖춘 자사의 첫 비즈니스호텔(아벤트리 종로 관광호텔)을 열었다. 하나투어도 오는 11월 서울 인사동에 2백50개 객실의 비즈니스호텔(센터마크호텔)을 개관하는 등 2014년까지 4개의 호텔을 운영할 계획이다. 송원선 하나투어 대리는 “하나투어를 이용해 입국하는 외국인 가운데 중국인 비중이 80%까지 높아졌다. 이 수요에 맞춰 국내 여행 상품 개발을 준비하고, 비즈니스호텔 등 숙박 시설도 개점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돈을 많이 쓰는 중국인들의 쇼핑 행태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국내 면세점의 상품 구성까지 달라지고 있다. 지난 10월2일 오전 9시, 기자가 찾은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면세점에는 중국인들이 줄을 서서 매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류 등의 영향으로 젊은 중국인들의 쇼핑 목록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끼어 있다. 이날 하루 동안 이 매장에만 1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다녀갔다. 김동훈 롯데면세점 대리는 “면세점을 찾는 쇼핑객의 대다수가 중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들이 과거에는 외국 명품을 구매했지만 요즘은 국산 제품을 찾는다. 그래서 매장에 국산품이 외국 명품보다 많아지고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최근 들어 혼수품을 구매하는 중국 신혼부부들이 늘어나서 ‘웨딩전문관’도 마련했다. 국산 전기밥솥·이불·그릇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다. 국산 화장품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매출이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무자격 가이드 등 막을 대책도 시급

쇼핑을 위해 서울 명동 주변의 면세점만 찾는 것도 아니다. 가수 싸이의 가요 <강남스타일>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인들의 쇼핑 지역이 서울 강남 지역으로까지 넓어지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추석 연휴 사흘 동안 중국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백80% 증가했다. 지난해까지는 루이뷔통·샤넬 등 외국 명품을 선호했지만 올해는 토종 의류, 잡화 제품을 찾는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연예인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입은 의류 브랜드의 매출이 늘어났다. 한국 스타들의 화보를 오려 와 똑같은 상품을 찾기도 한다. 국내 가방 매출도 명품보다 세 배 이상 많다”라고 중국인들의 달라진 쇼핑 행태를 설명했다. 서울을 벗어나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들도 늘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아웃렛(신세계사이먼)의 최경희 대리는 “과거에는 일본인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외국인 10명 중 세 명이 중국인이다. 홍콩과 타이완 등 중화권 사람까지 합하면 외국인 쇼핑객의 절반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한때 일본인의 전유물처럼 여겼던 국내 카지노는 이미 중국인들이 차지했다. 서울 워커힐호텔의 카지노에서 중국인들은 올해 3분기에만 약 3천억원(지난해 같은 기간 2천2백50억원)을 썼다. 제주에 있는 카지노를 방문한 외국인 10명 중 6명은 중국인이다. 2009년부터 중국인 수가 일본인을 앞질렀고, 현재는 일본인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제주 지역 카지노가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항공편으로 2시간 이내로 가깝고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데다 관광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도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어 국내 카지노 선호도가 높다.

이 수요를 잡기 위해 카지노업체는 영업장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지노업체인 파라다이스는 서울 워커힐호텔에 있는 카지노 영업장의 면적, 게임 테이블 수, 슬롯머신 수를 지금보다 두 배 정도로 늘리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시기에 따라 일본인과 중국인 출입객의 비율이 달라지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인 출입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최근 중국 연휴 기간에 카지노를 찾은 외국인의 70~80%가 중국인이었다. 이에 따라 영업장을 확대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커(遊客)가 한국으로 몰려온다. 유커는 여행객을 의미하는 중국어이다. 한국을 찾는 유커가 늘어나고 있지만 개선할 점도 있다. 무엇보다 싸구려 여행 상품이 최대 지적 대상이다. 여행사들이 경쟁적으로 값싼 여행 상품을 내놓으면서 정식 관광 안내원 대신 값싼 무자격자를 고용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3박4일 일정에 50만~70만원짜리 여행 상품으로는 하루에 10만~15만원을 주어야 하는 관광 안내 자격자를 고용할 수 없어 무자격 중국 동포 안내원을 5만원에 쓰는 식이다. 올해 제주에서 무자격 관광안내원을 고용했다가 적발된 업체는 50여 곳에 이른다. 싼 여행 상품 때문에 먹고 자는 문제도 생긴다. 조민호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중국인은 한 상 차려 제대로 먹는 사람들인데, 한국에 와서는 몇천 원짜리 식사를 하니 불만이 많다. 또 서울 도심 호텔보다 경기도에 있는 싼 호텔에서 숙박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3류 여행지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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