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 누출 피해 지역 ‘공포’만 자욱했다
  • 정락인 기자·김형민 인턴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10.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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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 보상·이주 삐걱 대면 극단 상황 맞을 수도

불산 가스 누출로 직격탄을 맞은 봉산리 마을은 초저녁인데도 불빛이 없어 적막하다. 작은 사진은 봉산리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와 임천리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산 좋고 물 좋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불산을 직격으로 맞은 봉산리에는 녹색이 사라졌다. 논밭에 있는 농작물과 길가의 잡초들은 제초제를 뿌린 것처럼 모두 말라 죽었다. 나무도 더는 숨을 쉬지 않고 있다. 나뭇잎도 바짝 마른 채 시뻘겋게 색이 변했다. 사람들의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10월9일 오후 피해 지역을 찾아갔다. 불산이 누출된 지 14일째 되는 날이다. 산동면에 들어서자 심상치 않은 광경들이 목격되었다. 길가 곳곳에는 붉은색 글씨로 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성의 없는 정부 대책, 피해 주민 다 죽는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이주 대책 강구하라’ 등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독극물을 상징하는 해골 그림은 다소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만큼 주민들이 맞닥뜨린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차 피해 지역인 임천리를 지나다 마을 어귀 대로변에 앉아 있는 노인 세 명과 마주쳤다. 입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기자가 ‘누구를 기다리시냐’라고 묻자 “짐승에게 밥 주고 대피소에 가는 차를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하루에 두 번씩 집에 와서 가축에게 밥을 준다고 했다. 살던 집을 떠나 4일째 대피소에서 보낸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 할머니는 “살아 있는 짐승을 굶겨 죽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밥이라도 챙겨줘야 할 것 아니냐”라며 울먹였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불산이 누출된 후 두통과 기침이 잦다”라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누출된 불산에 직격탄을 맞은 봉산리는 마치 ‘유령 마을’ 같았다. 마을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거의 없었다. 시골 마을에서 흔한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식구들끼리 오순도순 모여 앉아 한참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지만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은 없었다.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만이 마을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다.

불빛을 쫓아가 보니 봉산리 불산 사고대책본부 상황실이 있는 ‘마을회관’에 닿았다. 여기에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있었다. 회관 앞에 둘러쳐진 천막 안에서 주민 10여 명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대책위원들이었다. 기자가 ‘마을 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라고 물었더니, 한 주민은 “대피소에 갔다.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은 거의 없다”라고 대답했다. 마을 방범은 구미경찰서에서 순찰조를 편성해서 해주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주민들은 취재진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라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민폐가 될 것 같아 사양했더니 “이 음식에는 불산이 없다”라며 강한 어조로 말을 했다. 취재진이 식사 자리에 끼어 앉자 주민들은 “이제 이 마을에는 희망이 없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봉산리에서 방앗간을 운영한다는 한 50대 여성은 “공단에 있는 업체들이 우리 쌀을 가져다가 먹었는데, 사고가 터진 후에는 안 먹는다고 해서 도로 실어왔다. 이게 현실이다”라며 목청을 높였다.

불산 피해 지역 곳곳에는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위). 대피소에 누워 구호품을 바라보고 있는 주민(아래). ⓒ 시사저널 최준필
살아 있는 나무 거의 없을 정도로 초토화

도대체 불산이 덮친 산동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정부 당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하다’라고 강조한다. 대기, 수질, 토양에서 불산이 검출되지 않거나 기준치 이하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체감은 달랐다. 주민들의 심리 상태는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취재진은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최초 사고 현장부터 깊숙이 들어가보기로 했다.

10월10일 아침 이번 사고의 진원지인 휴브글로벌 구미 공장을 찾아갔다. 이 업체의 본사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다. 지방에 2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1공장은 충북 음성에 있고, 2공장은 구미 국가공단 4단지에 있다. 봉산리 마을과 바로 인접한 곳이다. 재앙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되었다.

경찰이 공개한 사고 당시 CCTV에는 9월27일 오후 3시41분쯤 이 업체의 근로자 두 명이 공장 밖에 있는 불산 탱크로리(높이 25m) 위에서 작업을 했다. 근로자 한 명이 연로 밸브를 발로 밟아 밸브가 열리면서 불산 가스가 공기 중에 누출되었다. 안전 수칙이나 작업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안전 보호 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불산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가 다시 공중으로 치솟았고, 마을을 덮쳤다. 얼마나 유출되었는지 파악조차 안 된다.

현재 휴브글로벌 구미 공장은 폐쇄된 상태이다. 정문에는 1m 높이의 철제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절대 출입 금지(방재 작업 중)’이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탱크로리 주변에는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쳤다. 탱크로리 바로 옆 건물 벽면도 붉게 색이 바랬다. 주변에는 중화제인 소석회를 뿌린 흔적이 역력했다. 공장 안에 있는 잔디와 잡초들도 말라 죽어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경찰은 이 공장이 입주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비리가 없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휴브글로벌 인근에 있는 공장의 정원수나 가로수 등도 초토화되었다. 살아 있는 나무가 거의 없었다. 가로수 인근에는 나방 등 곤충이 죽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도 휴브글로벌 인근 공장 대부분은 여전히 조업 중이었다. 공장 근로자 중에는 야외에서 불산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도 있다.

휴브글로벌에서 5백여 m 떨어진 업체의 직원 김선균씨(19)는 사고 당시 주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일하는 도중 매케한 연기가 들어왔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얼마 후 관리자들이 어서 피하라고 대피를 명령했다. 그때 시간이 저녁 7시였다. 김씨는 3시간 넘게 불산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직원들 중 기숙사에 있던 사람은 근처 찜질방으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집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봉산리 마을로 내려와 들판에 심어진 농작물을 살펴보았다. 마을로 들어갈수록 불산의 독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수확의 기쁨으로 들떠 있어야 할 들판에 성한 곡식은 없었다. 밭에 있는 농작물도 마찬가지였다. 포도 농장에는 포도송이만 간신히 매달려 있을 뿐 말라 죽은 잎은 가는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졌다. 구미시 재난대책본부는 봉산리와 임천리 논과 밭에 ‘불산 누출 피해 지역 절대 식용 금지’라는 경고문을 매달아놓았다. 들판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애간장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피해 주민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불산이 유출된 공장 가까이에 가 보았다. 휴브글로벌 후방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대형 축사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는 한우 50여 마리가 있었다. 축사 주인은 대피소로 피했는지 인기척이 보이지 않았고, 소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기자가 축사 안으로 들어가자 소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는지 처량한 눈짓을 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불산에 장시간 노출되었던 소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콧물이나 침을 흘리는 등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소 한 마리는 왼쪽 뿔에 심한 상처를 입어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보살핌을 받지는 못했다. 비닐하우스에 재배한 멜론이나 호박도 포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추나무도 마찬가지였다. 토양 오염을 알아보기 위해 10cm 정도 땅을 파보았으나 육안으로는 오염 정도를 식별하기 어려웠다.

대피소에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주민 대피소는 두 곳에 마련되어 있다. 봉산리 주민들은 구미시 환경자원화 시설을 대피소로 사용하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봉산리 주민들은 지난 10월6일 대피소에 들어와 5일째 생활하고 있다.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자 진 아무개씨(66)는 대뜸 “이것은 사는 게 아니다”라며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진씨는 사고 당일 들판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후 3시50분쯤 되자 마을 공장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불이 났다면 검은 연기가 나야 하는데…’라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다시 농사일을 하던 중 오후 4~5시에 대피하라는 방송을 들었다. 그때서야 주민들은 대피하기 시작했다.

이소분씨(76)는 “공기 좋고 물 좋은 산동면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최봉란씨는 불산 가스에 완전히 노출되었다고 한다. 그 후 자주 구토를 하고, 두통과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피부 발진도 일어났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며 팔을 걷어 발진 자국을 보여주었다.

임천리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취재진이 대피소가 마련된 해평면 청소년수련원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북적였다. 수련원 공터에는 김천의료원에서 의료 차량이 나와 사고 공장 인근 업체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임천리 주민들은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오분씨(69)도 불산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는 “냄새가 달랐고, 목이 아프고 두통이 심했다”라고 말한다. 당일 하룻밤은 다른 마을로 피했다. 다음 날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귀가했다. 그런데 마당에 심어져 있던 소나무가 죽어 있고, 부추전을 하기 위해 담아놓았던 부추가 새까맣게 상해 있었다.

수련원 벤치에서 만난 주 아무개씨(74)는 임천리에서 소 16마리를 키우고 논농사와 밭농사 6천여 평을 짓고 있다. 주씨도 하루에 두 차례 집에 가서 소 먹이를 챙겨주고 온다. 그런데 사고 이후 소에게 먹일 짚을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불산에 노출된 짚을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주씨는 외지에서 풀을 사다가 먹이고 있다. 주씨는 “집에서 나올 때 엄청 울었다. 지금도 집에 다녀올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천리 주민들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봉산리와는 달리 임천리는 2차 피해 지역으로 구분된다. 오일식 임천리 불산 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도 100% 보상과 주민 이주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생겼다. 사고 이후 휴브글로벌의 대표는 피해 지역의 주민들을 찾지 않았다.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도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라며 업체측의 뻔뻔함에 분노했다.

정부는 10월8일 불산 누출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아울러 피해 지역의 보상과 관련해 시장 가격을 적용하기로 했다. 피해 규모에 대한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정부는 또 피해 보상에 들어가는 지원금은 사고가 발생한 휴브글로벌에 전액 청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피해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잦은 마찰이 예상된다. 주민들은 정부에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주민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단 시위 등 극단적인 갈등 상황에 치달을 수 있다. 독극물을 취급하는 업체의 부주의와 정부의 어설픈 대처가 조용한 농촌 마을에 재앙을 불러왔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어떻게 어루만지느냐는 고스란히 정부의 몫으로 남았다.


박명석 구미 불산사고 주민대책위원장(50)은 사고 이후 하루 24시간을 쪼개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는 불산에 휩쓸린 봉산리 마을 이장이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해도 계속 통화 중이거나 연결이 안 된다. 지난 10월10일 오후 3시쯤 어렵사리 마을회관에서 박위원장을 만났다.


불산을 취급하는 공장이 마을 인근에 있다는 것을 주민들은 몰랐나?

전혀 몰랐다. 저런 유독 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이 민가 근처에 들어오면 주민들한테 알렸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대한 사전 교육이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대피 훈련도 없었다. 그래서 주민 피해가 더 커졌다.

경찰에서 해당 업체가 입주하게 된 배경을 조사하고 있다.

산업단지공단에서는 법적으로 시설 입지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유독 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이 민가 가까이에 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최소한 그런 시설에 대한 집단 관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휴브글로벌측에서 보상을 해준다는 말은 있었나?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업체 대표는 물론이고 회사의 책임 있는 사람이 찾아와 주민들에게 사과 한번 안 했다.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이것이 가장 걱정되는 문제이다. 호흡기질환과 피부질환 등으로 많은 주민이 고통받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진정된 상태이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불산 피해가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나타날 수 있다. 장기적인 노출로 인해 2년 후에 재발병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의사들은 최소 2년으로 잡고 있지만 주민들과 대책위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에서 최소 5년 정도는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해주어야 한다.

주민들을 만나 보니 한결같이 이주를 원하고 있었다.

이제 이곳은 죽음의 땅이 되었다. 불안해서 더 살 수가 없다. 토양 오염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이곳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살 사람도 없다. 이주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주는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아직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지는 않았다. 차차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할 것이다.

현재 보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보상을 원하는가?

우리는 100% 보상을 원한다. 지금 정부 차원에서 피해 조사를 하고 있다. 결과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피해 본 것에 대해 전액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주민들은 올해 농사가 대풍이라고 너나없이 좋아했다. 그런데 불산 가스 누출로 수확도 하지 못한 채 한순간에 몰락했다. 지금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피해 정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분야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기 중으로 유포된 불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모두 오염된다고 들었다. 지금 당장 눈으로 보기에는 봉산리 일대 피해가 크게 보이지만, 임천리 역시 불산 피해 지역이다. 1차 피해냐, 2차 피해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모두 동일하게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사고 지역을 다녀갔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략적으로 피해 주민들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성을 갖고 주민들의 생존권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끝으로 정부에 대해 요구 사항은 없는가?

최소한 연말까지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속도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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