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의 문화는 한마디로 ‘조작’ 문화”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2.10.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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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뚫린 군 경계 태세 실상 추적

지난 10월12일 육군 제22사단 조성직 사단장(왼쪽)이 북한 군인이 넘어온 철책에 대해 국방위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육군의 문화? 한마디로 조작의 문화이다.” 최근 육군의 자문에 응했던 한 예비역 장교가 육군본부에 내려가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육군은 말단 소대로부터 국방부에 이르기까지 지휘 단계가 올라갈수록 최초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첨삭되고 수정되는 조작 과정을 겪는다. 육군의 문화는 최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 보고를 지체시킨다. 이 과정에서 보고자가 자신에 대해 책임이 추궁될 만한 부분은 빼고, 유리한 것은 덧붙인다. 결국 맨 나중에 보고된 내용은 사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1996년에 일어난 북한 잠수정의 강릉 침투 사건 과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합참의 발표 내용과 일선 전투부대의 전투 상보를 비교해보면 전혀 사실 관계가 맞지 않는다. 주요 사건 때마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최근 북한군 귀순과 같은 사례 비일비재

지난 10월2일 강원도 고성의 한 사단에서 일어난 북한군 귀순은 바로 육군의 조작 문화가 잘 드러난 사건이었다. 정승조 합참의장마저 사건이 일어난 지 6일이 지난 10월8일까지도 GOP 생활관에 설치된 CCTV로 북한군을 발견한 것으로 알고 국회 질의에 답변했다. 그러나 합참이 이 사건을 조사한 10일에서야 CCTV가 아니라 북한군이 GOP 소초의 문을 두드려 우리측에 “귀순하겠다”라고 알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계 책임에 대한 추궁을 의식한 해당 부대의 의도적인 조작이었다. 이후 해당 부대는 정정 보고를 하였으나 이번에는 담당 상황 장교가 이를 묵살하는 등 보고 체계의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동부전선에서 이와 같은 은폐·조작은 2009년 10월26일에도 드러난 바 있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남한 주민이 26일 동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진 월북했다”라고 보도한 것이다. 월북한 주민은 우리의 3중 철책을 차례로 절단해 통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현지 부대는 철책 절단 사실을 상급 부대에 보고하지 않고 쉬쉬하다가 북한 방송에서 주민이 월북했다는 사실을 밝힌 직후에 부랴부랴 상황 보고를 했던 것이다. 만일 북한이 주민 월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더 장기간 은폐되거나 아예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에 대노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안보 자문위원들과 대책을 협의했다. 이 자리에 불려나간 예비역 소장 출신의 안광찬 위원이 “군의 경계 태세가 수십 년간 변하지 않고 정체된 것이 그 원인이다”라고 주장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 개혁이 절실하다며 국방선진화위원회를 창설한다.

무조건 경계 부대의 은폐 조작만을 탓하기에 앞서 전방 경계의 어려움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04년 10월에 한 전방사단에서 철책이 절단된 사실이 발견되어 군이 발칵 뒤집힌 사례가 있다. 아무리 현지 조사를 해도 철책이 절단된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윤광웅 국방부장관이 국방과학연구소(ADD)로 하여금 “누군가 철책을 절단하고 월남했을 가능성과 월북했을 가능성을 각기 수학적 확률로 계산해보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과학자들을 투입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재 육군의 경계 방식을 고수할 경우 몰래 월남하는 북한군을 발견할 가능성은 최악의 경우 1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즉, 발견되지 않을 확률이 85%이다. 육군의 경계 방식은 30분 단위로 ‘밀어내기’ 식 순환 근무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경계의 패턴을 북한군이 인식하고 있다면 숲 속에 숨어 있다가 경계의 빈틈을 노려 침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 조사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와 몰래 들어온 북한군이나 주민을 군의 경계 태세로 발견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은 ‘85%의 진실’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육안에 의존하는 열악한 감시 체계도 문제

완벽한 경계 태세라는 ‘달성 불가능’한 임무를 요구하는 외부의 압력을 의식하다 보면 과중한 책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려는 갈망이 있게 마련이고, 이것이 바로 은폐와 조작의 배경이 된다. 이런 충격적인 결론을 접한 국방부는 육안에 의존하는 현재의 경계 방식을 장비에 의한 경계로 전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경계 과학화 사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광망, 감시 카메라 등에 의존하는 경계는 동물의 움직임에 오작동 경보를 일으킬 수도 있고, 여전히 경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 전방을 전부 과학화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등의 이유가 제기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 결과 한국전쟁 이후 지난 60여 년간 해왔던 방식 그대로 아직도 육안에 의한 경계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하던 방식을 바꾸지 않으려는 고루한 인식에다가, 전방 경계를 과학화할 경우 육군 병력 감축의 압력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는 조직 이기주의도 저항의 숨은 배경이라는 설명도 있다. 실제로 경계 과학화 사업에 대한 육군의 곱지 않은 시선은 병력 감축에 대한 저항 의식의 표출이었다. 육군에 따르면 전방 부대의 경계 병력은 순수한 경계 임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전투 병력으로 초기 대응 전력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전투력 보존 차원에서 경계 과학화를 명분으로 한 병력 감축에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렇듯 휴전선 일대 전방에서는 온갖 비합리적인 관성과 기만 그리고 말 못할 속사정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단 전방 경계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지상군의 실태는 매우 충격적이다. 아직도 육안에 의존하는 원시적 경계 태세만이 아니라 열악한 개인 장구, 2차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 시대에나 썼을 법한 2세대 무기 체계, 이동 수단이 없어 도보에 의존하는 느린 기동력, 지휘통제(C4I)가 구비되지 않아 아직도 육성 지휘에 의존하는 소부대 전투 등 21세기의 군대라고 믿어지지 않는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육군이 이 정도라면 병력 운용이 육군보다 더 어려운 해병대의 상황은 더 끔찍하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9월10일, 넘어온 지 6일이나 지나서야 강화도 교동도에서 술에 취해 주민 신고로 검거된 북한 이탈 주민의 경우가 그 비근한 예이다. 해병대 2사단의 경우 전혀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주민 신고로 경계가 뚫렸음을 인지한 셈이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육군과 같이 경계·예비·교육 등의 3교대 시스템이 없이 예하 9개 대대 중 7개 대대를 전방 경계에 투입하고 있다. 더군다나 해안 경계에는 육상에서보다 더 복잡한 변수가 많다.

이렇게 경계가 어려운 임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남북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북한군의 기강 해이가 문제시되는 올해에 귀순 사건이 4건밖에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는 황당한 경계의 실패는 매우 심각한 국가 위기 요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바꾸기를 거부하는 완고한 지상군, 문책을 피하기 위해 은폐나 조작을 하는 지상군이라면 우리 안보에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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