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장기’와 소통하는 법
  • 석유선│의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10.2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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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후, 간질환 관련 정기 검진 꼭 받아야

의사가 한 어린이에게 간염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호랑이 선생님> <수사반장>으로 잘 알려진 중견 배우 조경환씨가 최근 간암으로 투병하다 유명을 달리했다. 간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무서운 질환이다. 발생률은 위암, 폐암에 이어 국내에서 3위에 꼽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0월20일은 대한간학회가 지정한 ‘간의 날’이다. 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몸짱으로 소문난 차두리 부자가 광고에 나와 연신 “건강은 간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은 잠시만 소홀해도 순식간에 간암으로 커진다.

간은 우리가 섭취한 영양소 가운데 무엇이 좋은 영양소인지를 구분해 대사를 해서 영양분으로 흡수하고, 해로운 것이면 해독해서 체외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간 기능이 저하되면 영양소 섭취에 적신호가 켜지고, 간암이 발병함에 따라 생명 유지가 힘들어 급기야 사망에 이르게 된다.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간질환은 발병 원인에 따라 바이러스로 인한 간질환, 약물로 인한 독성 간질환, 인체 면역계통의 이상으로 인한 자가 면역성 간질환, 독성 물질이 과다하게 쌓여서 생기는 대사성 간질환, 기타 원인이 불분명한 간질환으로 구분된다. 특히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을 구분할 때 A형, B형, C형이라고 부르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간염 바이러스는 G형까지 일곱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형·B형 간염, 예방 접종은 필수

이들 간염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A·B·C형 간염이다. 우선 ‘A형 간염’은 주로 급성으로 발병하는데, 국내 성인 급성간염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 이는 A형 간염 바이러스(HAV)에 의해 간이 손상되어 간 조직에 급성 염증 및 괴사가 생기는 질환이다. 주로 환자의 대변으로 배설되어 수인성으로 전파되고 오염된 식수 혹은 음식 섭취에 의해 전파된다. 예방 접종이 최선의 방책이다. 2010년에 1군 감염 질병으로 지정되는 등 대유행 후 예방 접종률이 올라가 환자 수가 크게 줄어 거의 발병하지 않고 있다. 반면 급성이 아닌 만성 간질환이나 간암 환자 대부분은 B형·C형 간염에서 비롯되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보건당국 통계에 따르면, 국내 만성 간질환 및 간암 환자의 경우, 60?70%가 B형 간염과 관련이 있고 약 15?20%는 C형 간염과 관련이 있다.

만성 간염은 간의 염증 및 간세포 괴사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70~80%에 달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HBV)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50%, C형 바이러스(HCV)에 의한 경우가 25% 정도이다.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혈액을 통해 감염되는데, 성적인 접촉이나 주삿바늘 등으로 전염이 가능하며, 면도기·손톱깎이는 따로 사용하고 문신에 쓰이는 침 등을 조심해야 한다.

‘B형 간염’은 피로감이 가장 흔한 증상이고, 심한 경우 황달증상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간세포를 순식간에 변형시킨다.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35% 정도가 간암으로 이행된다. 다행히 30년 전 10% 이상이었던 유병률이 최근 3%대로 뚝 떨어졌다. 이는 B형 간염의 감염 경로가 대부분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전염되는 수직 감염이므로, 만성 보균자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아기에 대한 예방 접종이 필수적이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역시 어머니로부터 수직 감염된 만성 보균자로 30대 때 발병했으나 항바이러스제 치료 등을 통해 간을 정상화한 일화가 있다.

많은 이들이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와 겸상도 할 수 없다며 기피하고, 취직 등에서도 일부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B형 간염은 일반적인 접촉으로는 전파되지 않는다.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병호 교수는 “B형 간염의 전파 경로는 성행위로 인한 감염, 모자 감염, 수혈 및 혈액을 통해 이루어진다. 단순히 감염자와 악수를 하거나, 식사를 같이 한다고 해서 감염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백신 없는 ‘C형 간염’, 새로운 간질환 ‘복병’

최근에는 ‘C형 간염’이 새로운 간질환의 복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C형 간염 환자의 약 70%가 만성 감염으로 이행되어 B형 간염보다 더 큰 간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중 20~25%의 환자가 20~25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간경변증으로 진행되고, 간경변증으로 이행된 환자는 연간 1~5%의 발생률로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수혈로 인해 감염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수혈이나 혈액 투석 때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수혈로 인한 감염은 매우 드물다. 다만 칫솔·면도기·손톱깎이 등 개인 위생용품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비위생적인 기구를 통한 문신·피어싱을 삼가야 한다. 외국에서는 마약 소지나 투여가 용이해 주삿바늘로 인한 감염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C형 간염이 위험한 것은 원인 바이러스(HCV)가 돌연변이를 잘 하고, 다양한 면역 회피 기전을 가지고 있어 아직까지 효과적인 예방 백신이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 소화기내과 김창민 박사(대한간학회 이사장)는 “C형 간염 보유자 중 70%가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줄 모르고, 이들 중 대다수가 간암으로 진행한다는 데 위험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마땅한 백신이 없어 예방이 최선이지만, 최근에는 C형 간염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인터페론과 리바비린 등의 복합 치료로 완치율이 80%에 달한다”라고 설명한다.

간염이나 간경변 등 간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느껴지거나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질 수 있으며, 눈동자와 피부가 노래지고 소변이 짙어지는 황달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배에 물이 차서 배가 부풀어오를 수도 있으며 피가 쉽게 나고 잘 멈추지 않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이런 경우는 간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즉시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좋다.

간질환은 증상에 따른 진찰과 혈액검사, 영상 검사 등으로 진단하게 된다. 또 필요에 따라 간 조직 검사를 하기도 한다. 혈액검사를 통해서는 간 기능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 수 있으며 간염이나 간질환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 흔히 우리가 ‘간 수치’라고 부르는 간 효소 검사의 수치는 간세포 내에 존재하는 효소가 간 손상으로 인해 세포가 깨지면서 혈액으로 흘러들어가면 상승하게 되어 수치가 높을수록 간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및간담도외과 안철수 교수는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나 전체의 80%가 망가져도 혈액검사에서 정상 수치가 나타날 수 있다. 건강검진을 할 때 간 기능의 이상 유무를 알려면 혈액검사 이외에도 초음파나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 등으로 좀 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간질환은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정확한 진단과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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