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본, 한국 콘텐츠에 스며든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10.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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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부터 아이돌까지 한류 상품에 대한 투자 가속화

걸그룹 애프터스쿨. ⓒ SBS제공6인조 아이돌그룹 크로스 진.ⓒ 구글 제공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일본 자본의 투자가 가속화하고 있다. 판권을 사들이던 수준을 넘어 직접 투자에 나섰다. 아이돌·드라마·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다. 아예 직접 아이돌을 육성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흐름에 대해 일본 자본에 의존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부터, 중소 기획사에게는 기회라는 분석까지 다양한 시각이 나오고 있다.

과거 일본 자본의 한국 투자는 주로 판권을 사가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판권을 사가서 DVD 등을 팔아 수익을 냈다. 업계에 따르면 드라마 <겨울연가> DVD로 발생한 수익은 5백억원이 넘는다. 드라마 판권은 슬롯머신 사업에도 이용된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스토리를 적용한 슬롯머신이 인기이다. 예를 들어 ‘<겨울연가> 슬롯머신’이라고 하면, 판이 넘어갈 때마다 <겨울연가> 스토리가 나오는 식이다. 당시 <겨울연가> 슬롯머신 판권을 가져간 업체는 대박을 내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가 되었다.

CJ E&M과 일본 기획사 아뮤즈가 손을 잡고 제작한 드라마 의 한 장면. 아뮤즈 소속 배우 요시타카 유리코(오른쪽)가 출연해 화제를 낳았다. ⓒ CJ E&M제공
판권 구입 수준 넘어 직접 투자 형식으로 진화

판권 구입 수준에 그쳤던 일본 자본의 투자는 점차 펀드 형식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ㅇ창업투자’가 대표적이다. ㅇ창업투자는 일본의 ‘아시아콘텐츠센터(이하 ACC)’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ACC는 일본 연예기획사 에이백스와 여러 위성방송사가 합작해 만든 회사이다. 업계 관련자에 따르면 ACC는 운영 면에서 잡음을 빚었다. 문화콘텐츠투자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ACC를 통해 한류 콘텐츠들을 일본에 유통하겠다고 했는데 조합원들 간에 이해관계가 얽혀 다툼이 잦았던 탓에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인들이 펀드식으로 투자하는 것에 신중하게 되었다”라고 귀띔했다. 펀드 투자 형태에서 좀 더 진화된 것이 지금의 투자 방식이다. 국내 제작사와 직접 접촉해 손을 잡거나 제작사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일본 자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드라마와 아이돌이다. 초록뱀미디어는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 중 하나이다. <추노>(KBS), <올인>(SBS),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MBC) 등 대히트를 한 인기 드라마 및 시트콤들을 제작했다. 현재 초록뱀미디어의 1대 주주는 에이모션이다. 21.09%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 뒤를 잇는 2대 주주는 일본 소니의 계열사인 소넷엔터테인먼트이다. 대한민국 대표 드라마 제작사의 2대 주주가 일본 자본인 것이다. 소넷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3월부터 초록뱀미디어의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추가 매수를 이어오다 결국 14.97%의 지분을 보유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막강한 제작 능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한 드라마 제작사 윤스칼라 역시 일본 자본의 러브콜을 받았다. 윤스칼라는 드라마
<겨울연가>를 제작한 윤석호 감독과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감독이 이끌고 있다. 윤스칼라의 한 관계자는 “일본 자본으로부터 수차례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윤석호 감독의 스타일이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콘텐츠를 제작해 세일즈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일본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아뮤즈는 CJ E&M과 100억원 규모의 ‘CJ E&M-아뮤즈 드라마 펀드’를 결성해 드라마 공동 제작에 나섰다. 지난 9월부터 방영 중인 <뱀파이어검사 시즌2>가 이 펀드의 기금으로 제작된 첫 작품이다. CJ E&M 방송사업 부문의 한 관계자는 “아뮤즈와 드라마 펀드를 결성한 것은 단순한 자본적 결합이 아니다. 상대 소속사 배우들을 서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라고 전했다. <뱀파이어검사 시즌2>에는 ‘일본의 임수정’이라고 불리는 요시타카 유리코도 출연한다. 요시타카 유리코는 아뮤즈 소속이다. 2007년 드라마 <노리코의 식탁>으로 데뷔한 후 신인상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요시타카 유리코가 출연한 에피소드는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이돌에 대한 일본 자본의 관심은 드라마 부문을 능가한다. 배용준이 1세대 한류를 이끌었다면 2세대 한류에서는 아이돌이 주축이 되고 있다. 아이돌이 들어간 콘텐츠는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업계에 회자되는 말이다. 소넷엔터테인먼트는 애프터스쿨 등이 소속된 플레디스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아뮤즈는 더욱 적극적이다. 아뮤즈의 한국 법인 아뮤즈 코리아는 한국인 세 명(신, 상민, 용석), 중국인 두 명(캐스퍼, 제이지), 일본인 한 명(타쿠야)으로 이루어진 6인조 그룹 크로스진을 직접 데뷔시켜 활동 중이다.

중소 기획사에게는 해외 개척 기회 되기도

지난 9월 일본에 진출한 뮤지컬 <잭더리퍼>는 엠벤처투자 등 국내 자본뿐 아니라 일본 후지TV의 투자도 받았다. 엠벤처투자의 관계자는 “<잭더리퍼>에는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성민이 출연하는데, 일본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 내년에도 후지와 공동으로 다른 작품을 해보려고 한다”라고 귀띔했다. 영화 쪽은 일본 자본이 관심을 덜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무적자>등 영화 작품에 투자했다가 재미를 보지 못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돌이 등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화 콘텐츠 투자 회사의 한 임원급 관계자는 “빅뱅의 탑이 출연했던 <포화 속으로>도 주인공 권상우보다 탑이 출연한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 자본이 관심을 보였었다. 최근 FT아일랜드의 이홍기가 찍고 있는 영화도 100% 일본 자본 투자를 받았다. 요즘에는 아이돌이 들어간다고 하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사는 분위기이다”라고 전했다.

일본 자본의 적극적인 한국 시장 투자를 놓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경우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일본측이 한국 시장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드라마 가격을 협상하면서 일부러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없이는 해외 매출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드라마 제작사의 수익은 크게 방송사에서 받는 판권과 해외 매출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방송국에서 외주 제작보다는 자체 드라마 제작을 선호하는 분위기이다. 잘나가는 몇몇 제작사를 제외하면 해외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본 활로 개척에 도움이 되고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CJ E&M-아뮤즈 드라마 펀드’가 그 예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획사들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들어오는 자본은 단비와도 같다. 국내 투자만으로는 운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장 아무개 대표는 “일본의 투자를 받으면 부가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소속 연예인을 일본에 보내면 숙소나 프로모션은 그쪽(일본)에서 알아서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 발매도 가능해지니 우리로서는 투자해준다면 반가운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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