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흐름이 ‘차세대의 힘’ 갈랐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0.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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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3주년 차세대 리더 조사 / 영화] 1위 봉준호 감독 빼고, 큰 폭 순위 변동

2012년 영화계 차세대 리더 순위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큰 변화를 보였다. 1위(34%) 자리는 봉준호 감독으로 그대로였지만, 그 밑에서는 큰 폭으로 변했다. 지난해 2위였던 박찬욱 감독이 3위(14%)로 밀리고, 지난해 8위였던 최동훈 감독이 2위(18%)로 뛰어올랐다. 17위였던 배우 이병헌이 4위(6%)로 뛰어올랐고, 순위권에 들지 못했던 김지운 감독은 5위(6%)를 기록했다. 지난해 4위를 기록했던 배우 하정우는 6위(4%)로 밀렸다. 지난해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배우 송강호나 전도연, 장진 감독과 강형철 감독은 유의미한 지목률을 보이지 못했다.

1위 봉준호 감독 44세. 대구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2000년 로 장편 데뷔. 2003년 , 2006년 , 2009년 . 2013년 (예정). ⓒ 일러스트 장재훈
이번 결과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한국 영화계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었고, 그것이 순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감독 중 순수하게 국내 흥행 이슈로만 화제가 된 인물은 최동훈 감독이다. 최감독은 <범죄의 재구성>부터 <도둑들>까지 단 4편만으로 국내 관객 3천만명 동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도둑들>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세운 1천3백만명 기록을 깨 더 크게 화제가 되었다. 

최감독을 빼고는 모두 해외파 감독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봉준호 감독은 내년 상반기에 전 세계에 동시 개봉될 예정인 <설국열차>를 한국과 미국, 프랑스 합작으로 만들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내년 2월28일 미국에서 개봉이 확정된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를, 김지운 감독은 내년 1월18일 개봉이 확정된 <라스트 스탠드>의 미국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광해>로 기세를 올리기는 했지만 배우 이병헌의 순위 상승은, 미국에서 <지.아이.조>의 흥행 성공에 이어 내년 3월 개봉 예정인 <지.아이.조 2>와 8월 개봉 예정인 <RED 2>에 연속 캐스팅되면서 할리우드에서 거의 주연급 배우로 급성장한 것이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배우 중에서는 이병헌·하정우 ‘우뚝’

전체 상위권 중 순수 국내 활동으로만 이름을 올린 경우는 최동훈 감독과 배우 하정우뿐이다. 요즘은 싸이의 해외 활동으로 큰 화제가 되었지만 내년 1월부터는 영화계에서 싸이의 해외 활동 못지않은 활약 소식이 들려올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것은 봉준호·박찬욱·김지운 감독이 미국 시장에 접근한 경로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봉감독은 한국 제작사가 주축이 되어 할리우드 자본과 할리우드 스태프를 끌어들여 유럽에서 영화를 완성한 경우이다. 완전히 충무로 기획안으로 만들었기에 대종상에 출품해도 될 만하다. 반면 박찬욱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의 콜을 받아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미국 데뷔작을 찍은 경우이다. 

김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완전한 ‘메이드 인 할리우드’로 봉감독의 SF 영화 <설국열차> 제작비보다 더 많은 5천만 달러짜리 영화이다. 이 정도면 범죄 액션물로는 비교적 큰 예산이 투입된 영화이다. 제작자인 디보나벤추라 프로덕션은
<트랜스포머> 시리즈나 <지.아이.조> <RED>같이 흥행성이 높은 작품을 주로 만들어온 영화사이다.

<라스트 스탠드>는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액션 불패 카드였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할리우드 복귀작이라는 점, 포레스트 휘태커나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등 연기가 되는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라스트 스탠드>와 함께 1월18일에 개봉하는 영화로는 현재까지 러셀 크로우와 마크 월버그 주연의 <브로큰 시티> 정도를 빼고는 이렇다 할 영화가 없다. 때문에 김지운 감독이 ‘한국 최초’의 전미 박스 오피스 1위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가장 화려한 배우진을 자랑한다. 니콜 키드먼, 미아 와시코우스카, 매튜 굿 등의 배우와 리들리 스콧의 스콧프리 프로덕션 그리고 현대 미국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까지…. 미국 예술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호화로운 진용을 갖췄다. 배급은 20세기 폭스사의 자회사로 예술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폭스서치라이트픽처스가 맡았다. 때문에 미국 내 흥행 폭발력은 <라스트 스탠드>보다는 약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박감독이 세계 영화제의 큰 손님이라는 점에서 개봉 일정이 맞지 않는 칸 영화제 대신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 국제영화제(2013년 2월)에서 먼저 월드 프리미어를 한 뒤 주목도를 높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봉감독의 <설국열차>는 미국 내 배급사가 오는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결정될 예정으로, 봉감독이 그때 들고 갈 가편집본의 성과에 따라 개봉 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아이.조>에서 이병헌을 기용해 아시아 시장과 미국 시장에서 재미를 본 디보나벤추라 프로덕션은 DC코믹스 원작인 <RED> 시리즈에 이병헌을 투입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이병헌이 할리우드에서도 주연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어쨌든 2014년 봄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참석한 충무로산 감독과 배우를 보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위로 급상승한 최동훈 감독, 한국 영화 외연 크게 키워

1천3백만명 관객 동원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최동훈 감독도 변하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를 대표한다. 거대 멀티플렉스 체인의 등장과 영화를 순수한 오락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대중의 취향 변화는 최감독을 한국 최고의 흥행사로 등장시켰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의 작품 흥행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둑들>은 <엽기적인 그녀> 이후 10여 년 만에 홍콩 박스 오피스 1위 기록까지 세우는 등 합작 영화나 외국 배우를 출연시킨 영화는 반드시 망한다는 충무로의 흥행 징크스까지 날려버리면서 한국 영화의 외연을 더 크게 키웠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도 ‘하대세’로 불리는 배우 하정우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그는 지난해 말 개봉한 <의뢰인>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 <러브 픽션>까지 안타 이상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충무로의 대세가 되었다.


ⓒ 시사저널 자료
봉준호 감독은 2010년부터 영화 분야 차세대 리더 1위에 올라 있다. 재미있는 것은 2010년 10월 그는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막 탈고한 상태였고, 지난해 10월에는 <설국열차> 촬영을 앞두고 촬영 스튜디오로 점찍은 프라하에 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10월, 그는 <설국열차>의 편집을 위해 서울로 들어와 작업에 한창이었다. <설국열차>에 지난 3년을 다 바친 것이다.

개봉 시기가 내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국열차>는 <마더>(2009년) 이후 4년 만에 나오는 신작인 셈이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제작사와 한국 감독이 중심이 되어 할리우드까지 끌어들인, 사실상 충무로 최초의 국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조율 거쳐야 개봉 시기 확정될 것”

“7월14일에 촬영이 끝나서 19일에 귀국해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10월 말쯤 편집이 끝난다. 편집과 동시에 그래픽 작업도 시작되었다. CG(컴퓨터그래픽) 작업에는 메소드와 스캔나인이라는 두 군데 회사와 체코 회사, 한국 회사 등 모두 4개사가 참여한다. 편집과 동시에 진행되는 CG 작업 때문에 요즘도 미국의 CG 책임자와 화상 회의를 일주일에 몇 번씩 하고 있다. 11월에 배우들을 미국에 불러놓고 후시 녹음에 들어간다. 이런 후반 작업은 내년 3월까지 이어진다. 개봉 시기는 미정이다. 국내에서 CJ가 주 투자자이기는 한데 오는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전 세계 배급사와 북미 배급사가 최종 조율을 해야 개봉 날짜가 확정될 것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준비 기간을 1년 정도 했더니 실제 촬영은 72회차, 2개월 4주 만에 완료했다. <괴물>을 1백10회 찍고, <마더>를 90회 찍었던 것에 비해 72회차에 마무리한 것은 스케줄을 상당히 타이트하게 가져간 것이다. 준비를 워낙 세밀하게 했기에 크게 무리가 된 것은 없었다. 촬영감독이 한국 사람이었지만, 스태프의 90%가 미국이나 영국 사람이라 미국식으로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쓴 시나리오에, 내가 짠 콘티로 찍는 것이니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보다 스케줄 운영 방식이 타이트하다. 미국 배우조합 규정에 반드시 12시간은 쉬고 일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엄격해 어길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촬영 현장처럼 가족적으로 뭉쳐서 계속 찍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한국 배우는 송강호와 고아성이고, 한국계 미국 배우인 스티브 박도 나온다. <파고>에서 일본인 역으로 나왔던 스티브 박은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송강호는 우리말로 대사를 한다. 극 설정에 통역기라는 장치가 있기에 무리 없는 설정이다. 송강호는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다. <스타워즈>의 해리슨 포드 정도의 역할로 중요한 인물이다.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는 중요한 조연이다.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나온 크리스 에반스가 중심 인물이다.

캐스팅은 순조로웠다.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가 시발점이었다. 둘 다 내 영화 <마더>나 <괴물>을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틸다는 어찌 보면 기차 안의 대처 총리 같은 존재이다. 굉장히 큰 캐릭터이다. 틸다와 존의 캐스팅이 확정되자 크리스 에반스가 합류했다. <헬프>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탄 옥타비아 스펜서는 캐스팅 제의 때 여기저기서 상을 타다가 캐스팅 확정 뒤 극 중 의상 피팅 때 아카데미 조연상을 탔다.   

대사가 주로 영어였지만 촬영 전 대사의 뉘앙스와 토씨 같은 디테일에 대해 스태프들과 상의를 많이 했다. 이런 영어 액센트와 사투리는 현지인들에게 무슨 뉘앙스인지, 어떤 캐릭터라는 느낌을 주는지, 연출부와 상의를 많이 해서 언어의 차이 때문에 섬세한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 부분은 없다.

이번 영화는 극한의 추위를 피해 피난을 떠난 여러 인종이 미래판 ‘노아의 방주’인, 길고 긴 기차 안에서 싸우는 영화이다. 액션 장면이 정말 많다. 무술감독은 줄리안 스펜서라는 영국인으로, 목욕탕 액션 장면으로 유명한 <이스턴 프라미스>의 그 장면을 연출한 사람이다. 

 SF 영화에서 제작비 4천만 달러(우리 돈 4백20억원 안팎)면 할리우드 관행상 중·저 예산 영화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사상 초유의 대작’으로 알려지고 있어 조금 부담스럽다. <괴물>의 순제작비는 1백15억원 정도였다. 충무로 관행으로 보면 <설국열차>의 제작비가 ‘사상 초대작’이기는 하지만 할리우드의 올 최대 히트작인 <어벤져스>는 2천7백억원짜리 영화이다. 제작비만으로 따지면 <설국열차>는 <디스트릭트9> 정도의 규모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대의 제작비라고 하니 그 간극이 크다. 크리스 에반스나 제이미 벨, 틸다 스윈튼 같은 배우의 출연료와 스태프 비용이 우리와 다르니 제작 관리를 타이트하게 해서 아낄 수 있는 것은 다 아꼈지만 4천만 달러가 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봉테일’이라며 치밀하다고 말하는데, 아니다. 나도 막 찍는다. 와전된 부분이 많다. 찍다 보면 이랬다저랬다 하는 부분도 있다.

(차세대 리더로 뽑힌 것에 대해) 나야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분야에서는 리더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제 앞가림하기 바쁘고, 힘들지 않나. 영화나 문학 같은 분야에서는 누가 누구를 리드하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영화는 지난 9개월 동안 프라하에 있느라 잘 보지 못했다. 귀국해서 극장에서 <도둑들>을 보았고, <무산일기>를 DVD로 보았다. <도둑들>은 아주 뛰어난 범죄 오락 영화였고, <무산일기>는 굉장히 강렬했다. 내가 없는 사이(?) 4백만 히트작도 줄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다. 이런 기세가 이어졌으면 한다. 다양한 장르에서 히트작이 나오고 <피에타>처럼 큰 경사도 있었고, <도둑들>처럼 큰 히트작도 나오고. 2000년대 초반에도 한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다 나빠졌다.

“<설국열차>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

할리우드와 일을 해보니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톱클래스 스텝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톱클래스인 것이 맞다. 결과물도 좋고. 기술 수준에서 우리는 톱클래스이다. 우리 힘만으로도 기술적·문화적 측면에서 SF 필름을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다음 작품으로는 체코로 떠나기 전에 20쪽짜리 시나리오를 다른 작가에게 주고 간 것이 있다. 살을 붙여보라고. 또 일본에서 만화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을 받기도 했다. 미국 쪽에도 에이전시가 있는데, 최근 흥미가 가는 범죄극 제안을 받았다. 여러 복잡한 조건이 있어서 어떤 것을 먼저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 4년간의 공백은 너무 길다. 2년 안에라도 뭔가 내놓고 싶다. 결국은 시나리오 때문이다. 누가 준 시나리오를 덥석 받아서 찍는 것이 꿈인데, 아직 그런 인연을 못 만났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받아보지도 못했고.

내가 어떤 장르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때그때 꽂힌 캐릭터나 이미지를 따라갔다. 어떤 장르를 해도 그 장르의 규칙대로 찍은 영화도 없고. 나도 관객이다. 내가 관객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를 하고 싶고 그런 흥분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데, 겁도 많이 나고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나는 행운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설국열차>는 액션 장면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SF 영화이다. 여기에 다채롭고 독특한 액션 장면이 들어간다. 밀폐된 공간에서 뚫고 나가는(piercer) 액션이다. 지구 멸망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지구 별 생존자들이 기차 안에 모여서 서로 미친 듯이 싸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왜 인간은 서로 싸우는가,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결국은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이다. 등급은 아마도 15금 내지 18금. 상영 시간은 2시간 5분 정도? 내년에 가까운 개봉관에서 확인해달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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