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 핵심에 새로 뜬 얼굴들
  •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12.10.3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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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앞두고 차기 지도부 인선 한창

2007년 10월15일 열린 제17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EPA 연합
11월이면 중국 지도부에서 권력 교체가 단행된다. 바로 제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제18차 당대회)가 개최되고 거기에서 국가주석을 비롯해 차기 요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제18차 당대회 권력 교체기를 앞두고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바로 리잔수(栗戰書)이다.

리잔수는 지난 9월1일 링지화(令計劃) 대신 중앙 판공청(辦公廳) 주임에 임명되었다. 중앙 판공청은 중국공산당 중앙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며 핵심 기밀을 취급하기 때문에 흔히 ‘대내총관(大內總管)’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중앙 판공청 주임이라는 자리는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국정 의견을 조정하고 정치국 회의 안건을 마련하는 등 중국 권력의 중추로 통한다. 전임 링지화는 중앙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전부는 타이완 통일을 위한 국내외 공작과 무당파 등 당내외 지식인 관리를 맡고 있다. 당내 중요 보직이기는 하지만 권력 핵심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지난 9월1일 임명된 리잔수 중국공산당 중앙 판공청 주임. ⓒ china 연합
차기 권력의 풍향계는 리잔수

리잔수의 출신 배경은 절묘하다. 중국 양대 정파인 공청단파(共靑團派: 공산주의청년단 핵심 보직 경력을 지닌 정치 세력)와 태자당(太子黨: 혁명 원로나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정치 세력)의 색깔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의 집안은 숙부 리정퉁(栗政通)이 팔로군으로 혁명에 참가해 26세에 전사한 혁명 가문이다. ‘전서(戰書)’라는 그의 이름은 그러한 혁명 전통, 즉 ‘홍색(紅色)’을 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편, 1950년 허베이(河北) 성 핑산(平山)에서 출생한 그는 25세가 되던 해에 공산당에 입당했고, 곧바로 공청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후 그는 공청단 허베이 성 당서기를 역임했고, 줄곧 공청단파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1983년 7월부터 1985년 10월까지 그가 허베이 성 스자좡(石家庄) 시의 우지(無極) 현 당서기로 재직할 때 시진핑이 바로 인근 현인 정딩(正定) 현의 당서기였다. 두 사람은 이러한 인연이 있는 데다가 나이도 비슷하고 또 ‘홍색(紅色) 혁명 전통’을 집안 배경으로 지니고 있는 등 그 관계가 매우 밀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리잔수는 후진타오와 시진핑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리잔수를 후진타오가 퇴진하기 전에 중앙 판공청 주임으로 임명한 것은 권력 교체기의 대단히 민감한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래저래 중국의 차기 권력 구도에서 리잔수는 풍향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리잔수를 보면 중국의 차기 권력 동향을 감지해낼 수 있다.

공청단파의 가장 전형적인 인물은 바로 링지화(令計劃)이다. 그는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왕후닝(王扈寧)과 함께 줄곧 후진타오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링지화는 ‘중난하이(中南海: 중국 수뇌부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베이징 지역으로, 중국 수뇌부를 지칭하는 용어)의 사무총장’으로 불렸다. 그는 후진타오가 언제 TV 뉴스를 시청하는지 그 시각까지 알고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후진타오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었던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링지화의 제18차 당대회 상무위원 진입은 확정적이라고 평가되었었다.  

그런데 지난 3월18일 새벽 베이징에서 이른바 ‘페라리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수입 고급 승용차 페라리에 타고 있던 한 명의 남성이 사망하고 두 명의 여성이 부상당했는데, 사망한 남성이 바로 링지화의 아들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링지화의 ‘좌천’에 이 페라리 사건이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차기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내정된 7인 ⓒ EPA·AP·Xinhua 연합
후진타오의 핵심 참모 링지화 부활할까

그러나 이와 전혀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보시라이 축출 이후 후진타오의 공청단파는 중국 군정(軍政) 대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다가오는 제18차 당대회 정치국의 인적 구성에서 공청단파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진타오가 가장 신뢰하는 링지화가 한직으로 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는 것이다. 링지화는 상하이 태자당이 야심차게 키우던 보시라이의 축출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상하이 태자당의 눈엣가시가 된 셈이었고, 과도적 조치로서 중앙 판공청 주임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 부장 자리에 현재의 리위안차오(李源潮) 대신 공청단 출신 왕민(王珉)이 임명될 것이라는 예측이 적지 않다. 중앙조직부는 8천만명이 넘는 중국공산당 당원에 대한 임명권, 즉 인사 통제권을 쥐고 있다. 핵심 기구 중의 핵심 기구이다. 이러한 자리를 공청단파가 차지하는 것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 더구나 왕민은 안후이 성 출신으로 후진타오와 동향이며, 일찍이 보시라이가 재임해 명성을 떨쳤던 다롄(大連) 시의 검찰원 검찰장으로서 보시라이의 ‘다롄 잔당’을 무력화시키는 등 후진타오의 보시라이 축출 작업에 협력해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만약 예측되는 바대로 왕민이 중앙조직부 부장에 임명된다면 링지화 역시 곧 그 위상이 회복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중국 지도부의 최고 권력은 다음과 같은 아홉 개의 주요 직위라고 볼 수 있다. (1)국가주석,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2)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3)국무원 총리 (4)전국 정협 주석 (5)중앙 정신문명건설지도위원회 주임 (6)중앙서기처 서기, 국가부주석, 중앙 당교 교장 (7)국무원 부총리 (8)중공중앙기율위원회 서기 (9)중앙정법위원회 서기.

7인제로 바뀐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이 순서에 따른 현재의 정치국 상무위원 아홉 명은 순서에 따라 후진타오,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리장춘, 시진핑, 리커창, 허궈창, 저우융캉이다. 이 가운데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일곱 명이 퇴진하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상태이다. 그리고 현재 제18차 당대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7인제로 가닥이 잡혔고, 이 7인제는 16대 구조로의 복귀이며 중앙 정법위원회 서기는 상무위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정해졌다.

홍콩의 중문 뉴스 사이트 밍징신원왕(明鏡新聞網)의 보도에 따르면, 일곱 명의 상무위원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를 비롯해 위정성(兪正聲) 상하이(上海) 시 당서기, 장더장(張德江) 충칭(重慶) 시 당서기, 왕치산(王岐山) 국무원 부총리, 류윈산(劉雲山) 당 중앙선전부장 그리고 장가오리(張高麗) 톈진(天津) 시 당서기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이 인선이 그대로 완성된다면, 시진핑의 의도가 완전히 관철된 구도이다.

차기 상무위원으로 유력시되는 왕치산은 시진핑, 중국인민은행장 저우샤오촨(周小川)과 함께 ‘칭화대학교의 신세대 태자당’으로 불려왔던 인물이다. 그의 장인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던 야오이린(姚依林)이다. 장더장은 북한 김일성대학 출신으로서 보시라이 사건 직후 대신 충칭 시 당서기에 임명되어 충칭의 혼란 상태를 잘 정리했는데, 류윈산과 함께 상하이방 출신으로 분류된다.

68세의 고령인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시 당서기는 그의 다재다능함 때문에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 위밍전(兪明震)은 일찍이 20세기 중국 문학의 거장 루쉰(魯迅)의 스승이었다. 아버지 위치웨이(兪啓威)는 중국 제1기계공업부 부장과 톈진 시장을 지냈으며 한때 마오쩌둥의 처 장칭(江靑)과 결혼한 바도 있다. 어머니 역시 대단해 베이징일보 사장이었다. 위정성 자신은 덩샤오핑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정성 가문의 이러한 화려한 국내외 인맥과 그의 주도면밀한 성격,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차기 전국인대 위원장 자리에 ‘내정’되었다. 물론 아직 일부에서는 그의 상무위원 낙마 가능성도 전망하고 있다.

상무위원 진입하지 못하고 밀려난 후보들

반면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개혁 결사대라고 불리는 왕양(汪洋)은 공청단파에서 상무위원으로 적극 밀었지만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가 일부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또 17대 정치국 위원 중 유일한 여성인 류옌둥(劉延東)은 태자당과 상하이방 그리고 공청단파(團派)와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여성 상무위원이 될지도 관심거리였지만 현재로서는 어렵게 된 형편이다.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시되었던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중앙 조직부장의 막판 실족은 많은 사람의 의아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가 톈안먼 사태 때 학생들에게 온정적이었다는 점과 당내 민주화 추진으로 당 원로들의 눈 밖에 났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정치평론가들은 여전히 리위안차오의 상무위원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는 상하이 시 부시장이었던 리간청(李幹成)의 아들로서, 33세에 후야오방에게 추천되어 공청단 상하이 부서기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그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단기 교류를 경험해 중국 고위층 인사 중 진보적이고 진취적이며 국제 감각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어왔다. 또한 그는 장쑤(江蘇)성에서 재임하던 시절 화학공장 오염 사고 등 많은 대형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했다. 정치·행정 개혁에 박차를 가해 민원 발생률 전국 5위였던 장쑤 성을 23위로 끌어올리는 데 공을 세운 바 있다. 그가 과연 상무위원이 될 것인가의 여부는 마지막 뚜껑을 열어보아야 할 일이다.


더 강해져 눈길 끄는 ‘노병’ 궈진룽·리잔수 

중앙 판공청 주임이 된 리잔수와 함께 최근 세인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지난 7월3일 류치(劉淇)를 이어 베이징 시 당서기에 임명된 궈진룽(郭金龍)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베이징 시 당서기라는 자리는 중국 정계에서 핵심적인 직위로서 수도의 당정 사무를 총괄하면서 국가 중추를 보위한다.

궈진룽과 리잔수의 등장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연령에 있다. 궈진룽은 올해 65세로서 중국의 건국 이래 12번째 베이징 시 당서기이다. 개혁·개방 초인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재직했던 돤쥔이(段君毅)를 제외하고 궈진룽은 가장 나이가 많은 베이징 시 당서기이다. 그의 전임인 자칭린(賈慶林)과 류치는 각각 57세와 60세에 베이징 시 당서기에 부임했었다.

62세의 리잔수 역시 이와 비슷하다. 그도 건국 이래 가장 많은 나이에 중앙 판공청 주임에 취임한 인물이다. 이제까지 중앙 판공청 주임을 역임했던 10명 중 취임했을 때 나이가 가장 많았던 인물은 야오이린(姚依林)으로서 당시 61세였다. 다른 전임들은 모두 60세 이하였고, 특히 양상쿤과 원자바오 등은 50세 미만이었다.  

이제까지 중국 정계에서는 이른바 연경화(年輕化) 현상이 두드러졌었다. 예를 들어, 2000년에 들어 이른바 ‘60후(6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을 지칭하던 말)’, 즉 당시 나이로 40세에 요직에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후춘화(胡春華)는 38세로 시짱(西藏) 성 당위 상위에 부임했고, 39세의 쑨정차이(孫政才)는 베이징 시 상위에 임명되었었다.

이런 연경화 추세에서 본다면, 이제 당연히 1970년대 이후에 출생한 ‘70후’ 세대가 등장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재 ‘70후’ 세대로서 성급(省級) 상위(常委)의 직위에 진입한 인물은 전무하다. 거꾸로 궈진룽이나 리잔수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노병(老兵)의 시대로 회귀하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미 중국 정계에서 ‘연경화’ 조치가 상당히 진척되어 더는 ‘연경화’ 정책을 진행할 필요성이 없어진 데다 한편으로는 계속된 ‘연경화’ 정책으로 인해 업무 경력이 많은 유능한 노 간부들의 ‘조기 퇴진’ 현상까지 나타나고 그들의 적극성이 크게 위축되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래서 무조건 연령만을 기준으로 간부 임명을 결정하는 경향을 지양해 연부역강한 소장층의 패기 및 추진력에 노련하고 안정적인 노년 간부층의 능력과 경험을 결합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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