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 ‘돈’ 문제만은 아니었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10.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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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30대 기업의 정규직 전환 비용 조사

지난 10월10일 전북도청에서 ‘비정규직 없는 일터 1천만 선언’ 전북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어디에 취업했느냐’라는 질문이 주로 오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라졌다. ‘어디에 취업했느냐’와 함께 ‘어떤 신분으로 취업했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정규직인지, 계약직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이 오갈 만큼 취업 시장에서 비정규 형태의 채용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기업 채용 공고가 나오면 취업 준비생들은 정규직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고용 형태-계약직’라는 문구가 있으면 쉽게 지원하지 못한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비정규직은 버리기도 취하기도 아쉬운 ‘반쪽짜리’ 채용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논란이 한창이다. 노동계와 정치권에서는 기업의 이익을 고려했을 때 비정규직 인원을 ‘정규직화’해도 무리가 없다고 지적한다. 반쪽 채용인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기업측에서는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여건상 무리라고 반박한다. 실상은 어떨까.

당기순이익의 1.5%면 정규직 전환 가능

<시사저널>은 매출액 기준 상위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인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조사했다. 우선 각 기업 사업보고서에 나오는 비정규직 인원을 파악했다. 이어 노동부가 발표한 ‘2011년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라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61.3%임을 감안해 추가 비용을 계산했다. 사내 하청 직원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내 복지 비용 등은 제외하고 순수 임금 인상 폭만을 고려했다.

조사 결과 대체적으로 금융권에서 많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 특성상 계약직 직원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곳은 KB국민은행이었다. 해마다 1천5백90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IBK기업은행이 차지했다. IBK기업은행에 다니는 계약직 직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해마다 1천억원 이상이 추가로 들어간다. 3위는 롯데쇼핑이었다. 롯데쇼핑의 계약직 직원은 7천6백98명으로, 조사 대상 기업 중 가장 많았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해마다 9백70억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에는 1천6백17명의 계약직 직원이 근무한다. 모두 정규직화하면 1년간 5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13조원의 0.4%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각각 100명도 안 되었다. 이는 생산 인력을 사내 하도급 형태로 보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액수 자체만 놓고 보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30대 기업에 근무하는 총 계약직 직원 수는 3만1천여 명이다. 이들을 모두 정규직화할 때 1년간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7천9백억원이다. 해당 기업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모두 합쳐 49조7천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마다 이익의 약 1.5%만 추가로 들이면 된다.

이번 조사는 직원에게 지급되는 급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직원 복리 등 기타 요소는 빠져 있다. 그러나 기타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크게 다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체가 노동자에게 들이는 노동 비용은 크게 직접 비용과 간접 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 비용은 임금·상여금 등 직원에게 직접 지급하는 비용이다. 간접 비용은 고용 후 훈련 비용·퇴직금·4대 보험 비용 등 피고용자에게 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지난해 노동부의 ‘사업체 노동 비용 조사’에 따르면 노동 비용 전체를 100%로 보았을 때 직접 노동 비용이 77%, 간접 노동 비용이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도 4대 보험 등 어느 정도의 간접 비용 적용은 받고 있다. 또 노동 비용 중 직접 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비용 때문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어느 한 쪽 희생 요구해서는 해결 힘들어”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은 인건비 절감보다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기업 관계자들은 ‘차라리 돈을 많이 주더라도 노동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차라리 그쪽이 낫겠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 경제 영향도 많이 받고 수출 기업이 많아 주문생산이 많은데 모든 인원의 고용을 보장해주면 대응해나가기 어렵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그때는 어떤 인원을 줄여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당장의 이익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정규직만 고용하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과 같이 순이익이 나올 때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경기 상황이 나빠져서 적자로 전환될 경우에는 인건비 부담을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 <시사저널> 조사 결과에서도 몇몇 기업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 1년간 들어가는 추가 비용이 당기순이익을 넘어섰다. 적자를 본 LG전자 등은 물론이고 순이익 10억원에 그친 에스오일도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모두 바꾸면 적자로 반전했다. 기업에게는 비정규직이 경기 상황에 따라 회사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특히 국제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제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대규모 사내 하도급 형태의 고용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는 대기업들이 경기 변동을 이유로 비정규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번 조사 대상이었던 30대 대기업들도 대부분 당기순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미리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경기 변동 때문에 비정규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10년 후를 위해 지금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차라리 인건비 때문에 비정규직을 써야 한다고 말하면 이해가 되는데, 충분한 재원과 수익이 있으면서 경기 변동에 대비해야 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비겁하다”라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비정규직이 전원 정규직화하면 오히려 고용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정규직 전환 의무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본 결과, 총 고용이 46만~48만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규직 고용이 의무화될 경우 퇴직금 등 고용 조정 비용이 급증해 고용을 줄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기업과 비정규직 집단뿐 아니라 정규직 집단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다. 정규직 노조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서는 각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변양규 실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 한 조직의 희생만을 요구해서는 해결되기 힘들다. 모든 그룹이 조금씩 양보하고 정부가 이러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낮춰주는 등의 지원을 한다면 타협의 길이 생길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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