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을 ‘문’ 밖으로 어찌 빼내나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10.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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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쇄신 다음 카드는 ‘이해찬·박지원 용퇴론’, “이해찬은 이미 ‘뒷방 늙은이’…알아서 나가주길 바랄 것”

지난 7월23일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자 공명선거 실천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와 이해찬 당 대표(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
“마음의 병이겠지. 명색이 6선 의원에 총리까지 지냈고, 거기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략가 아닌가. 그런데 정작 대선 국면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담석 치료를 위해 10월25일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문재인 후보 캠프의 핵심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한 얘기이다. 약간은 농담조였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실제로 이대표의 거취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문후보는 10월 하순 들어 정치 쇄신 문제에 대해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정치권 개혁과 관련해서는 기득권 내려놓기를 명분으로 앞세우며 국회의원들의 면책·불체포특권 축소,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을 전제로 한 비례대표 확대를 공약했다. 또 검찰 개혁 방안과 ‘반부패 정책’도 제시했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문후보의 이같은 ‘3대 정치 쇄신 시리즈’는 사실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 안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정치 쇄신을 단일화의 주요한 요건으로 제시했고, 민주당을 향해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는 점에서다. 물론 “문후보가 국민들에게 ‘문재인표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도 컸다”(선대위 핵심 관계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후보의 정치 쇄신안이 나온 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아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후보의 정치 쇄신 의지가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뭔가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데, 결국 두 사람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다”(수도권 초선 의원)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문후보가 정치 쇄신 시리즈를 내놓기 직전 친노계 참모 9인이 선대위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이(李)·박(朴) 용퇴론’은 인적 쇄신 문제의 화룡점정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이다.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 최대 피해자 이해찬”

이들에 대한 당내 반발은 올 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유력한 당권 후보였던 두 사람이 대표와 원내대표를 각각 나눠 갖기로 한 이른바 ‘이·박 담합론’ 때부터 계속되어왔다. 원내대표 경선 때는 ‘반(反)박지원’ 전선이 형성되었고, 전당대회에서는 김한길 후보가 지역 단위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10전8승을 거두었을 만큼 이해찬 대표에 대한 반발이 컸다. 게다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친노(親盧) 패권론’이 등장하고 ‘문·이·박 담합론’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문후보 주변에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면서 “이대표가 백의종군해야 한다”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이다.

사실 이대표는 현재 문후보 선대위에서 별다른 역할이 없다. 이전 대선에서는 당 대표가 당연직으로 공동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번에는 선대위 내부와 어떤 연결 고리도 갖고 있지 못한 ‘고위전략회의’의 멤버일 뿐이다. 한 친노 의원은 “표현이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이대표는 이미 ‘뒷방 늙은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라고 했다.

당초 ‘이·박’ 두 사람과 함께 한명숙 전 대표, 김한길 최고위원, 손학규·정세균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등 7명이 고위전략회의의 ‘7인 멤버’로 묶이자 ‘옥상옥(屋上屋)’ 논란이 일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선대위 전면에 나서지 않는 대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7인회가) 문후보를 좌지우지하지 않겠나”(한 비주류 재선 의원) 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차례의 공식 회의도 열리지 않았을 만큼 이 모임은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거취가 또다시 논란이 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대표의 발언 때문이다.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이대표가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꺼낸 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다소 타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최대 피해자는 이대표와 이를 옆에서 거들고 나선 박원내대표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대표의 발언은 선대위와 아무런 상의 없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선대위의 한 본부장급 인사는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큰일났다’고 생각했다”라면서,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그는 “하나는 단일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해야 할 얘기였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칫 민주당은 자기 혁신 노력 없이 단일화에만 목을 맨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초반에는 안후보에 대한 불안 심리로 문후보가 반사 이익을 보는 듯했지만, 결국은 “민주당 자체가 쇄신 대상이다”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당연히 이대표를 성토하는 얘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원내대표라는 자리 자체가 상징성이 큰 만큼 어쨌든 두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문제가 계속 생겨날 것이다”(한 소장파 의원)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이해찬 본인이 전략적으로 판단할 것”

일단 이대표측의 입장은 아직 정리가 덜 된 듯하다. 이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도 문후보의 대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인 방안을 찾을 것이다”라고 했다. 반면 다른 한 측근은 “이대표는 이미 2선으로 물러난 상태가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대신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사실상 퇴진 모양새만 남았다는 취지로 말한 의원조차 “분위기에 등 떠밀려 나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점이다. 물러나더라도 자신의 결단에 따라 시기와 방식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박원내대표측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원내부대표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라며 말을 아꼈다.

문재인 후보 주변의 기류는 다소 복잡해 보인다. 일단 문후보는 참모 그룹의 사퇴 이후 추가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인적 쇄신은 본질이 아니다”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언급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선대위의 한 본부장은 “문후보가 어떻게 두 사람을 겨냥해 직접 인적 쇄신을 말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두 사람의 상징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전략본부의 관계자도 “문후보도 내심 이대표 본인이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겠나”라고 거들었다.

일각에서는 11월에 단일화 국면이 본격화되면 문후보와 이·박 두 사람 간 갈등이 표면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중진의원은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면 이곳저곳에서 문후보를 향해 민주당 쇄신을 실천으로 보이라는 주문이 많아질 것이다. 이·박 두 사람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전략가로 통하는 한 ‘비노(非盧)’ 진영의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구시대 인물이지만, 충청권과 전남에서는 이들만 한 득표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후보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자존심도 살리면서 득표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두 사람이 결단하는 모양새를 갖춰주거나, 아니면 아예 두 사람이 조만간 해당 지역으로 내려가 대선 당일까지 표밭을 훑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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