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회창의 길’로 들어서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10.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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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내부에서 걱정 많아 …보좌진에 대한 문제 제기도

지난 8월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ㆍ세종ㆍ충북ㆍ충남 합동연설회’에서 한 지지자가 박근혜 후보에게 편지를 전달하려 하자 경호원이 제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2년 12월20일. 전날 치러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한 이회창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후보가 정계 은퇴 선언을 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함께한 하순봉 의원 등 측근들은 ‘주군(主君)’이 눈물을 보이자 곁에서 함께 눈물을 쏟았다. 대선 패배의 후유증은 컸다. 당장 이후보를 가리켜 “제왕적 총재(후보)였다”라는 원성이 난무했다. 그를 둘러싼 최측근들에게는 ‘8인방’이라고 칭하며 “이후보의 눈과 귀를 가려 대선 패배를 자초했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하의원을 비롯해 양정규·신경식 의원, 고흥길 특보 등이 거론되었다. 8인방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던 윤여준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후보 주변에) 인의 장막이 생기니까 상식이 통하지 않더라”라고 밝혔다. 한 중견 언론인은 “2002년 대선 때 이후보의 패배 원인으로 DJP 연합, 이인제 출마, 외환위기의 변수 등도 있었지만, 결국 이회창의 고집과 ‘불통(不通) 정치’가 최대 요인이었다”라고 분석했다. 

지금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러다가 박근혜 후보가 ‘昌(이회창)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박후보가 10년 전 이후보의 ‘불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지난주 발행한 제1201호(10월23일자) 창간 기획 전문가 설문조사 보도에 따르면,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소통’이 압도적인 1위에 꼽혔다. 모두가 다 ‘소통하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야권의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이런 흐름을 간파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소통을 강조한다. 하지만 박후보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주변의 불만이 위험 수위에 달해 있다.

지난 10월21일 박후보가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기자회견이 이런 불만을 더욱 촉발시켰다. 박후보가 정수장학회의 성격에 대해 “부일장학회와 다른 새로운 것이다”라고 한 발언이나, 강압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서도 “강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결이다”라고 말한 것 등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새누리당 의원들과 박후보 캠프 인사들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다시 “박후보를 에워싸는 ‘병풍’들이 문제이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표적은 ‘보좌진 4인방’이었다.    

박후보의 보좌진인 이재만·이춘상 보좌관과 안봉근·정호성 비서관이 최근 ‘인의 장막’으로 찍히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4대 천왕’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들 4인방과 함께 최근 ‘박후보 캠프’의 실세로 떠오른 6명의 측근들을 더해 ‘십상시(十常侍)’라고 부르기도 한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명의 환관을 일컫는다. 그 여섯 명의 면면들 또한 참모들 일색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의원들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환관 권력’이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3월9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안봉근 비서관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좌진 4인방’ 배후에 정윤회씨 등장

이들이 비판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이유는, 박후보를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언론에서 박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문 작성에 관여한 인사가 이들 보좌진과 영남대 교수인 최외출 기획조정특보, 그리고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인 현경대 전 의원뿐이었다고 보도하자, 당과 캠프 주변의 목소리는 더욱 격앙되었다. 한 중진 의원은 “어떻게 대변인(이상일 의원)조차도 그 내용을 모를 수 있나. 이것이 정상적인 조직인가”라고 개탄했다. 법원 판결문을 잘못 전달했다거나, 직언을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비판이 등등했고, 보좌진 4인방이 전횡을 일삼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후보와 보좌진 4인방의 인연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후보는 1998년 실시된 대구 달성군 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면서 보좌진 4인방을 받아들였다. 보좌진 4인방이 박후보의 정치 인생 처음부터 자리 잡은 셈이다. 보좌진 4인방이 박후보와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거론된다. 바로 정윤회씨이다. 정치권에서 가장 미스터리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이다. 박후보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으로 꼽히고 있는 최태민 목사의 사위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박후보가 정계에 입문할 때 누구를 알았겠느냐. 특히 보좌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후보의 달성 선거를 도운 정윤회씨가 보좌진 4인방을 박후보의 사무실에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씨에 대한 박후보의 신임은 두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씨가 박후보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해온 비선 라인의 비서실장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박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정씨에 대해 “전직 입법 보조원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보좌진 4인방은 박후보의 신뢰를 얻었다. 입이 무거워 박후보의 말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후보의 ‘입맛’에 딱 맞는 보좌진들이었다. 튀지 않는 스타일도 박후보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박후보는 의원들보다 보좌진 4인방을 훨씬 신뢰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의원들에 대한 평가도 인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박후보는 기본적으로 의원들이 자기 장사에만 열을 올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박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기 전 이재만 보좌관은 정책, 이춘상 보좌관은 사이버 홍보, 정호성 비서관은 메시지, 안봉근 비서관은 수행 및 일정을 담당했다. 대선 캠프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똑같다. 

최근 논란이 된 정수장학회나 한국문화재단 등에 대해 캠프에 소속된 의원들은 거의 대응을 하지 못했다. 박후보의 입만 바라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 의원은 “뭘 알아야지 대응을 하든가 말든가 할 것이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보좌진들이 박후보 주변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후보가 자신의 사적인 일을 보좌진에게 맡긴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보좌진 4인방의 힘을 설명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후보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의원은 거의 없다. 보좌진을 거쳐 박후보와 접촉한다. 자연스럽게 보좌진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후보에 대한 의원들의 보고나 통화 요청을 보좌진이 선별적으로 취사 선택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친박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후보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의원들이 보좌진 4인방의 힘을 키워준 측면이 있다. 박후보도 의원들에게 보좌진과 상의하라며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시스템에서는 누구라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캠프’에서 의사소통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까닭이다. 정치쇄신특위의 이상돈 위원은 “의사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박후보가 선대위 공식 기구와 소통 내지 많은 토론을 해야만 일단 대선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구조로 곧 바뀌지 않으면 어렵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한다”라고 지적했다.

“궁극적 책임은 후보가 져야”

박근혜 후보의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에 익숙한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보좌진들만 표적이 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자성론도 나온다. 박후보 그 자신과 함께, 최측근으로 통하는 전·현직 의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 존재하는 셈이다. ‘박근혜 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의 역할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많다. 한 의원은 “최근 기자들 사이에서 이단장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기자들이 박후보에 대해 조금이라도 예민한 질문을 할라치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너무 경직되어 있는 듯하다”라고 우려했다. 한때 박후보 캠프의 ‘새로운 좌장’으로까지 주가를 올렸다가 비판 여론에 밀려 결국 비서실장직을 사퇴하고 2선으로 물러난 최경환 의원이 보좌진 4인방과 각별하다는 얘기도 정설로 통한다. 결국 그들의 전횡에는 최의원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얘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 ‘DJ(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광옥 전 의원 등 과거 민주당 인사들이 박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을 두고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쇄신파로 통하는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도대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라고 답답해했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박후보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인데 보좌진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보좌진 2선 후퇴라는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다. 후보가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YS·이재오의 박근혜 캠프 합류설, 근거 있을까 

박근혜 후보 캠프 주변에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인사들을 끌어들여서 함께해야 한다”라는 요구가 많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사가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다. 친이계의 좌장 격인 그는 박근혜 후보와 끊임없이 맞섰던 인물이다. 김무성 전 의원이 최근 총괄본부장으로 박후보 캠프에 컴백하면서 이런 얘기가 더 확산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박후보 캠프 내에서는 “이의원이 조만간 캠프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박후보와 불편한 것처럼 비쳤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곧 박후보 지지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얘기도 들렸다. 두 인사의 합류는 PK(부산·경남) 민심과 당내 화합이라는 상징성을 띤다는 점에서 주목될 수밖에 없다. 과연 그 근거는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의 최측근 인사는 “‘이장관’(이의원 지칭)은 11월부터 다시 영산강과 금강 자전거 투어 일정에 나선다. 박후보 캠프에 합류할 계획은 전혀 없다”라고 분명히 했다. 그는 “박후보 캠프의 조직본부장을 맡고 있는 홍문종 의원이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이장관이 오지 않겠나’라는 얘기를 슬쩍 했다고 한다. 또 선대위원장을 제의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하던데, 오히려 그것은 이장관을 욕보이는 것이다. 당내 인적 자원 차원에서라도 이장관은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이장관이 당내 비주류로서 그냥 조용히 있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박후보 캠프에서 제의가 있었나’라는 질문에 “주변 측근들 몇몇이 밥 한번 먹자는 정도의 얘기는 있었다고 한다. 일종의 탐색 아닌가. 그리고 이장관이 측근들과 그런 문제를 얘기해야 하나. 당사자(박후보 지칭)가 직접 해야지. 제의도 없었고, 또 제의가 들어온다 한들 지금 이장관이 움직이는 것은 맞지도 않다”라고 분명히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측의 한 인사도 “그 어른의 뜻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으나, 지금 부산 민심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고, 그런 민심을 중요시하는 분인데, 쉽게 움직이시겠나”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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