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사퇴인가, 예고된 경질인가
  • 최강민│스포츠평론가 ()
  • 승인 2012.11.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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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롯데 양승호 감독 사퇴 막후 ‘비화’

ⓒ 시사저널 사진자료
롯데 양승호 감독이 물러났다. 10월30일 롯데 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2010년부터 팀을 이끌었던 양감독이 자진사퇴했다”라고 발표했다. 롯데는 “양감독이 10월24일 대표이사와 면담한 자리에서 이미 사의를 밝혔으며, 구단에서 심사숙고 끝에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양감독은 2010년 10월 감독 계약 시 향후 2시즌 이내에 팀을 한국시리즈에 반드시 진출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양감독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구단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구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야구인은 “양감독의 퇴진은 자진 사퇴로 포장된 예고된 경질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월23일 롯데는 SK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패했다. 시리즈 전적 2승3패.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많은 롯데팬이 아쉬워했지만, 야구계는 “플레이오프에 오른 것만으로 롯데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라고 평가했다. 롯데는 시즌 전부터 심각한 전력 공백과 시즌 내내 주전 선수들의 연쇄 부상으로 시달렸기 때문이다.

롯데의 한 코치는 “에이스 장원준이 경찰청에 입대하고, 중심 타자 이대호가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하며 투타 전력 공백이 컸다. 구단이 거액을 투자해 붙잡은 FA(자유계약선수)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은 무릎 수술로, 좌완 이승호는 컨디션 난조로 큰 기여를 하지 못해 시즌 내내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와중에도 롯데가 시즌 후반기 1위 삼성에 3경기 차로 쫓아가며 선두까지 넘본 것은 대단한 선전이었다. 물론 롯데는 시즌 막판 연패를 거듭하며 4위로 떨어졌다. 역시 연쇄 부상이 원인이었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야구 전문가 대다수가 롯데의 탈락을 예상한 것도 ‘부상자가 많고, 객관적 전력이 두산에 뒤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롯데는 투혼을 발휘하며 두산을 꺾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SK와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한 야구해설가가 “롯데가 거둔 성적표만 보자면 양감독은 분명한 재계약 대상자이다”라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양감독은 5차전이 끝나자마자 선수단 미팅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양감독은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오늘부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라고 짧게 말하고서 미팅을 마쳤다. 양감독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에 코치들과 선수들은 크게 놀랐다.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양감독이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한 때는 9월이었다. 정규 시즌 2위를 달리던 롯데가 연패를 거듭하며 4위 자리까지 위협받던 시기이다. 당시 양감독은 코치진에게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6월 6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롯데와 한화의 경기에서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른 양승호 롯데 감독(가운데). ⓒ 시사저널 박은숙
“구단의 우승 압력과 현장 개입 있었다”

코치진은 난데없는 감독의 사의 표명에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양감독의 사의 표명은 다음 날 해프닝으로 끝났다. 단장과 면담을 마친 양감독이 입장을 바꿔 “남은 시즌 동안 열심히 하자”라며 코치진을 독려한 것이다.

롯데의 한 코치는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던 날,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다음 날 감독이 ‘다시 잘 해보자’고 말해서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양감독을 잘 아는 야구인은 “당시 그가 사퇴 카드를 빼든 것은 성적 부진 때문이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다른 이유’란 무엇이었을까. 바로 구단의 우승 압력과 현장 개입이었다.

롯데 선수단은 시즌 전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올해는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스프링캠프에 구단 고위층이 왔다. 선수단을 격려하며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즌 중에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 특히나 코치진에게 수시로 우승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분명히 좋은 말이지만, 계속 듣는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올랐을 때도 이 고위층은 코칭스태프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올 시즌은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즈음부터 롯데 내부에서는 묘한 이야기가 돌았다. ‘플레이오프를 통과하면 양감독 체제가 내년까지 유지되고, 실패하면 경질’이라는 소문이었다.

양감독도 이를 눈치챘는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라는 말을 했다.

우승 압박과 함께 양감독을 힘들게 한 것은 고위층의 현장 개입이었다. 지난해 양감독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당시 그는 아무개 선수를 기용하려 했다. 하지만 담당 코치는 이 선수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보고했다. 양감독은 담당 코치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 선수의 몸은 정상이었다. 양감독도 나중에야 전말을 알았다. 사정인즉슨, 담당 코치가 양감독에게 사실과 다른 보고를 한 것이었다. 이 사건을 잘 아는 한 야구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고위층이 담당 코치에게 ‘(해당) 선수를 기용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한 모양이다. 고민하던 담당 코치가 양감독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자기 선에서 무마하려 한 것 같다. 양감독이 자초지종을 듣고 구단측에 ‘앞으로 또 현장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면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랬더니 구단에서는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다. 만약 있었다면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애쓰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양감독은 구단측에 피해가 갈까 봐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혼자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야구계는 롯데가 공식 발표한 양감독 사퇴 이유에 냉담하기만 하다. 롯데에 몸담았던 한 야구인은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를 감독 탓으로 돌리기 전에 구단이 얼마나 우승할 수 있도록 양감독을 도와줬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정말 팀이 우승하기를 바란다면 감독을 힘들게 했던 ‘우승 압박’과 ‘현장 개입’부터 먼저 사라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신임 감독이 와도 고위층의 구태가 사라지지 않으면 롯데는 우승은 고사하고 2000년대 초반의 암흑기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롯데는 양감독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선수 탓’을 하고 있다. 최근 운영 실무 책임자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이 감독의 사의 표명을 외부에 전하는 바람에 결국 감독이 팀을 떠났다. 앞으로 외부에 구단 사정을 발설하는 선수는 끝까지 추적해 잡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는 “양감독의 계약 기간이 ‘2+1년’임에도 3년인 것처럼 언론에 발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퇴 종용을 했던 구단의 책임 떠넘기기가 도를 넘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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