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또 해도 메아리 없는 ‘미술품 기증’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1.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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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공 미술관의 소장품 내역이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

국립 중앙박물관 ⓒ시사저널 전영기
부산에서 공간화랑을 운영하는 신옥진 관장은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각종 국공립 미술관에 8백여 점, 평가액만 40여 억원에 달하는 작품을 기증했지만, 그가 이런 ‘이타적인 행위’로 얻은 것은 5만원짜리 감사패가 전부이다. 그는 “대가를 바라고 기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그나마도 내가 요구해서 받았다. 공공 기관도 기부를 받을 줄 모른다. 담당자들로부터 ‘나한테 주는 것도 아닌데 일만 늘어난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기도 하는데 딱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유명한 미술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부자들의 사적인 공간에 전시된 미술품이라면 ‘고가의 장식품’ 신세를 면하기 어렵지만 일반인에게 접근 통로가 열린 공공 미술관의 미술품은 공동체의 ‘문화유산’이 된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공공 기관이나 비영리 기관에 대한 미술품 기증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는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이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소장품의 80% 이상이 기증품으로 채워져 있다.

국내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등 공공 미술관에 정부 예산으로 해마다 작품 구입 예산을 지원하지만 이른바 유명한 작품은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도 기증자에 대한 각종 세제 지원 등을 해서 ‘착한 부자’가 되도록 당근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보면 다른 나라에서는 전시실 하나를 차지할 만한 고흐나 로댕의 작품이 한 전시실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수만 점에 이르는 소장품 대부분이 미술사에 알려진 유명 작품이다 보니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세계 미술의 으뜸 수장고가 된 것은 물론 돈의 힘이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부자들이 죽기 전에 기증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증하는 이유는 상속세와 관련이 깊다. 미국은 1917년부터 기부금 세제 지원 제도를 통해 ‘기부가 비영리 단체를 통한 공공 복지를 위해 쓰일 경우 세금을 대신한다’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미국의 연방 세율이 변경되기 전인 1986년까지 세금 감면 효과는 평균 70%에 달했다고 한다.

미국·프랑스 등에서는 세제 혜택 내걸고 부호들의 기증 독려

영국도 개인이 미술관에 기부할 경우 한도 없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고 세율 50%를 적용받는 최고 소득 계층의 경우 미술관에 기증하면 약 60%의 세금 감면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해서 부자들에게 ‘이타적인 행위’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했다. 프랑스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강력한 메세나법을 만들어 기업이 미술품을 구입해 국가 기관에 기증하거나 국공립 미술관이 구입하는 미술품 비용을 지원하면 해당 금액의 90%를 세액 공제받을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가 이런 법을 시행하는 것은 유명 작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국민에게 문화유산을 공공재로서 누릴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또 해외 관광객 유치 등 여러 면에서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서 유명 작품을 보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찾지만, 거꾸로 우리나라에 온 외국 관광객들이 유명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찾을 만한 미술관이 국내에는 거의 없다. 리움 같은 사립 미술관이 몇몇 트렌디한 현대 작가의 유명 작품을 전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규모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을 요청할 수도 혜택을 줄 수도 없는 입장

외국인의 관광 코스인 전시 기관 중 가장 큰 시설인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상설 전시관 3층에 이홍근·박병래·송성문 등 기증자의 컬렉션을 별도로 모은 전시실이 있을 정도로 기증품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증을 요청할 수도, 기증을 했다고 이렇다 할 혜택을 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행정자치부 규정에 국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는 기부를 유도하는 행위를 못하게 되어 있다. 국립박물관 직원이 어디 가서 기부를 부탁하면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기부를 활성화하려면 이처럼 현실과 맞지 않는 법규부터 고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기증자에게 혜택이 있기는 하다. 국립이 아닌 공립 미술관이 기증을 받은 경우 기증 미술품의 평가액 중 20%를 리워드로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달라고 한 경우도, 준 경우도 국내에는 아직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원복 실장은 “아무런 혜택도 없는데 국립박물관에 기증해주신 분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 국립 기관은 이분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줄 수 없다. 나라에서 법적으로 고미술품이나 현대 미술품에 세제 혜택을 적용하면 유물이나 소장품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통 큰 기증자’로 유명한 재일교포 미술품 컬렉터 하정웅씨는 광주시립미술관에 1993년 이후 2천점 이상의 작품을 기증했고, 선친의 고향인 영암군에 2천7백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또, 부산과 포항의 시립미술관에도 수백 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그의 기증품에는 이우환이나 재일교포 작가인 손아유, 헨리 밀러, 세키네 노부오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이 다수 들어 있다. 평가액만 해도 수백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 기부로 세금 혜택 등 금전적인 혜택을 얻은 것은 없다.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라는 타이틀과 정부가 주는 보관문화훈장, 그의 고향인 영암에서 그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군립 하(河)미술관을 만들어놓은 것이 전부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미술품 복원가 김주삼씨는 “프랑스의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 유족들이 상속세 대신 내놓은 작품으로 만들었다. 유족들이 상속세를 내려면 작품을 파는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작품이 국외로 빠져나갈 확률이 높았다. 프랑스 정부가 현물 납세를 인정하고 세제 혜택을 줘서 문화유산을 지킨 것이다. 국내에서도 미술품 기증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을 법으로 정해 장려했으면 한다. 다만 공신력이 있는 기관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국내 미술 시장의 투명화와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명품이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개인 소장품이었다. 다만 소장자인 손창근씨가 국·공·사립 박물관이 기획전이나 특별전에 <세한도>의 출품을 요청하면 흔쾌히 응해 일반인이 이를 친견할 수 있는 ‘안복’을 제공했다. 그는 결국 2010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에 이 작품을 기탁해 국민의 품으로 <세한도>를 돌려보냈다. 그가 이 행위를 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없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미술품은 결국 공공의 것이 되는 것이다. 미술관이 어떤 미술품을 소장하느냐는 오늘의 우리 삶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문제와 관련이 있고 미래의 문화를 결정짓는 척도이다. 미술관 소장품을 더 늘릴 수 있는, ‘착한 부자’를 늘릴 수 있는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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