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 맞은 푸틴의 달콤 씁쓸한 인생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11.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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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구한 영웅이면서 반민주적 독재자 이미지로 그려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환갑을 맞은 지난 10월7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한 건물에 푸틴의 얼굴을 그린 대형 천 그림이 걸리고 있다. ⓒ AP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갑을 맞았다. 그는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이자 동시에 민주화를 열망하는 러시아를 다시 스탈린 시대로 되돌리는 반민주적 독재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빛과 그림자는 상충하고 갈등한다.  

‘푸틴이 동독 주재 소련 비밀경찰 KGB 건물 계단에서 내려온다. 그의 권총에는 열두 발의 실탄이 장전되어 있다. 일곱 명의 경호원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 건물 밖에서는 5천명의 성난 군중이 금방이라도 사무실 안으로 난입할 태세이다. 일부는 술에 취해 있었다. KGB 사무실이 약탈당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이 장면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직후의 모습이다.  KGB의 동독 지사장은 모든 권한을 부관에게 맡기고 도주했다. 마당에 나선 젊은 푸틴은 폭도들에게 말했다. “나는 소련 장교이다. 내 권총에는 열두 발의 실탄이 들어 있다. 그중 한 발은 나를 위해 남겨놓겠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할 경우 마지막 한 발도 쏠 수 있다.” 말을 마친 그는 현장을 떠나 서서히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의 속옷은 땀으로 젖었다. 군중들은 해산했다. 이 극적인 데뷔를 통해 푸틴은 러시아 역사를 다시 쓰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16년간의 KGB 근무 이력이 훗날 러시아를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성숙될 줄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정부가 통제하는 TV, ‘영웅적 모습’ 집중 보도 

소련 해체를 알리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푸틴이 보인 극적인 모습은 그의 회갑을 맞아 러시아 국민들에게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다. 사회자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이 얘기는 이제 누구나 어느 때, 드레스덴의 어느 술집에서나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크렘린은 이 얘기를 ‘허구이다(fantasy)’라고 규정했다. 이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문제의 다큐멘터리는 10월7일 60회 생일을 맞은 푸틴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송된 것이었다. 대다수 국민은 그렇게 믿고 있다. 12년 전 푸틴의 정계 진출 순간을 드라마처럼 꾸민 영상이었다.  다큐멘터리는  푸틴이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 중부 러시아 니츠니 노프고로드 지역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의 사진 속으로 신화가 스며들기 시작했음을 암시했다. 시골의 작은 교회가 왜 그런 역할을 자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교회의 웹사이트는 ‘푸틴이 러시아의 새로운 길이다’라고 선언했다. 웹사이트의 글은 계속된다. ‘그의 생애에서 푸틴은 한때 백작이었다. 블라디미르 백작은 당시 러시아를 세례시켰다. 이제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러시아를 세례시킬 차례이다.’ 

중립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5세에서 39세 사이의 러시아 여성 4분의 1은 푸틴과 결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푸틴은 매력 있는 남자가 되었다. 

푸틴의 쇼맨십은 유명하다. 지난 수년간 전투기를 조종하고 레이스카를 운전했다. 상의를 벗은 채 말을 타고 북극 곰을 맨손으로 다루었다. 과학적 조사를 위해 칩을 내장한 작살을 활로 쏘아 흰 고래에게 명중시켰다. 흑해 바닥까지 잠수해 고대의 항아리를 건져올렸다. 크렘린은 나중에 푸틴의 충성분자들이 그 항아리를 바다 밑에 미리 가져다놓았음을 시인했다.

레바다센터의 레프 구드코프 소장은 푸틴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주된 이유는 대다수 국민이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TV를 통해 잘 포장된 푸틴과 접하기 때문이다. TV들은 푸틴의 영웅적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대통령 8년, 총리 4년에 이어 다시 6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한 푸틴에게 정치·경제적 도전은 만만찮았다. 우선 도시의 국민들이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반(反)푸틴 시위가 일어난다. 푸틴은 경제를 살린 외형적 업적에도 내면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인간적 고뇌를 안고 있다. 언제나 강력하고 단호한 지도자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늘 그를 괴롭힌다. 그의 카리스마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잦은 TV 출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충복들은 푸틴의 이미지 메이킹에 필요한 수많은 아이디어와 재료를 가지고 있다. 구드코프 소장은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 고스티니 드보르 전시장에 등장한 푸틴 대통령의 밀랍 인형(오른쪽). ⓒ ITAR-TASS
스탈린식 우상화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월간지 <오고니요크>는 10월호에서 푸틴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대를 상세히 소개했다. 푸틴에 관한 신화와 비화들이 곁들여졌다. 1952년 10월7일 푸틴이 태어난 고향집 모습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푸틴의 일대기를 보면서 ‘영웅은 저렇게 태어났나 보다’ 하고 감동했다.

푸틴의 출생은 소련 최후의 공산당 대회와 운명적으로 타이밍을 같이한다. 스탈린이 죽던 3월 어느 날 푸틴은 태어났다. 스탈린의 경호실장 라프렌티 베리아는 마지막 공산당 대회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역사적인 기념물 소개에서는 극장 하나가 소개되었다. 푸틴은 아마도 이 극장에서 나치 독일에서 활동한 소련 스파이 영화를 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푸틴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도 KGB 요원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러시아 최남단 로스토프 돈에서는 푸틴을 지지하는 청년 그룹이 길이 1백50야드의 푸틴 생일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다. 제작비는 정부가 댔다. 열혈분자들은 이 현수막을 강 건너 언덕과 연결했다. 강은 유럽과 벨라루시, 카자흐스탄을 잇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이 연출을 통해 러시아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푸틴의 공적을 기리자는 것이다. 청년 그룹의 현지 지부장 안드레이 바트리멘코는 이 대목을 힘주어 설명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사진전이 열렸다. 제목은 ‘가장 인자한 영혼을 가진 대통령’이었다. 사진전에서는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 동물들도 함께 전시되었다. 푸틴은 사진전이 개막하는 날 가족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그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가 밝혔다. 푸틴이 자신에 관한 이벤트에 초연하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대변인실은 또한 드레스덴 비화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크렘린의 눈치를 보는 정치경제소통위원회의 드미트리 오를로프 소장은 푸틴에 관한 홍보 행사가 스탈린식 우상화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서방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푸틴 치켜세우기는 순전히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의 소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이다.

푸틴의 회갑을 맞아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묘사한 푸틴의 명암은 시사적이고 함축적이다. 그리고 통렬하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선임연구원 릴리아 셰프초바의 촌평이 의미심장하다. 드레스덴 이야기가 진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그것이 푸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점이다. “푸틴은 한 발의 총탄을 자신을 위해 남겨놓았다. 그러나 이것을 사용할지에 대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푸틴이 언젠가는 다가올 자신의 최후에 대해 아직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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