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위층 ‘부의 집중’, 철퇴 맞나
  •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12.11.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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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 총리 일가 거액 자산’ 보도 파문 막후 추적

일가친척이 최소 27억 달러의 자산을 가졌다고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원자바오 중국 총리. ⓒ EPA연합
원자바오 중국 총리. 그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지도자로 통한다. 그는 10년도 더 지난 잠바를 입고 또 여러 차례 이어붙인 흔적이 있는 운동화를 신고 사고 현장에 나타나곤 했다. 지진 피해 지역에서 피해 주민들과 부둥켜안고 함께 우는 그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칭찬은 비단 중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강변에서 조깅하던 그의 모습을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인도 많다. 올해 미국 국제항만노동자협회는 원자바오 총리를 ‘미국 노동자의 가장 좋은 벗’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토록 전 세계인에게 친근한 지도자로 호평받아왔던 그가 최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보도에서 원자바오 총리의 일가친척이 최소 27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기업 공시와 관리 당국의 자료를 인용해 199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동안 원자바오 총리의 자녀·동생·처남·어머니 등의 명의로 등록된 자산이 최소 27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원자바오에 대한 이러한 공격을 보시라이측이 했다고 보고 있다. 보시라이에 대한 엄벌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이 바로 원자바오 총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NYT 보도가 왜곡되었다는 중화권 언론 매체들의 기사도 이어지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의 부인 장페이리(張培莉)의 친구인 여성 사업가 돤웨이훙(段偉紅) 타이훙(泰鴻) 대표는 “원 총리 가족은 중국 핑안(平安)보험주식의 대리인일 뿐이며 2008년 이후 이미 내 명의로 이전되었다. 원 총리 가족은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했다”라고 말했다고 미국의 중문 뉴스 사이트 둬웨이(多維)가 보도했다. 또 홍콩의 잡지 <명경(明鏡)>도 NYT가 보도한 27억 달러의 진짜 주인은 돤웨이훙이라고 전했다.

원자바오, ‘위선 군자’라고 비난받기도

이전에도 원자바오 총리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가령 서민적 풍모와 달리 그가 평소 수십만 위안에 달하는 스위스 고급 시계를 차고 다닌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리고 2007년 11월2일 타이완 일간지인 ‘중국시보’는 보석 감정 전문가인 부인 장페이리가 타이완 보석상으로부터 1천5백만 타이완 위안이 넘는 고급 보석을 샀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또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도 원자바오의 아들이 설립한 회사가 일본 소프트뱅크, 도이치은행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20여 개 기업으로부터 총 수십억 달러의 외국 자본을 모아 주로 대륙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여기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중국 고위층 가족들이 부를 축적한 것은 비단 원자바오뿐만이 아니다. 중국 고위층 일가친척들의 성공적인 기업 경영은 매우 흔한 일로서 보시라이의 처 구카이라이 자매들의 엄청난 재산도 화제가 되었었다. 한편 차기 국가주석 시진핑의 큰누나도 중국 희토류 관련 기업 지분의 18%를 소유해 무려 17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앙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의 아들은 국영석유회사 시노펙의 ‘보이지 않는 실세’로 2백억 위안의 재산을 지니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06년에 중국 국무원과 사회과학원 그리고 중앙당교(中央黨校)가 공동으로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던 ‘사회·경제 상황 조사 보고서’는 중국에서 ‘근거 없는 낭설’로 간주되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거기에 언급된 내용은 일정하게 중국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3월 말 현재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중국인 중 90%가 고위 간부의 자제이며, 이들 고위 간부 자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총 2만4백50억 위안(元, 우리 돈으로는 약 1백20억원)이었다. 특히 금융·무역·국토 개발·대형 프로젝트·증권 등 5대 분야 핵심 직위의 85~90%를 모두 이들 고위 간부 자제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둥 성에 있는 12곳의 대규모 부동산개발회사는 모두 그 부모가 성장인 경우를 포함하는 고위 간부 자제 소유였다.

보고서는 이어서, 상하이 시에 있는 10곳 대규모 부동산회사 중 9개의 회장이 고위 간부이고 15곳의 건축회사 중 두 곳의 외국 기업을 제외한 13곳 모두 고위 간부 자제 소유였다고 기록했다. 또 장쑤 성(江蘇省)에 있는 22곳의 대규모 부동산회사와 15곳의 건설회사 모두 그 부모가 현직 성장(省長), 성(省) 인대(人代) 부주임, 전 성위(省委) 부서기, 전 성(省) 법원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 소유라고 주장했다.

주룽지 전 총리는 일찍이 원자바오에 대해 ‘중국 최대의 위선 군자’라고 비난한 적이 있고, 중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랑센핑(朗咸平) 교수는 2011년 10월 원자바오를 빗대 “중국의 어떤 지도자는 경제를 알지 못한다”라고 비판했다.

고위층 재산 신고제에 대한 대중적 요구 커져

과연 원자바오는 퇴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호평을 유지할 수 있을까? NYT 보도가 나온 뒤 원자바오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는 정면 대결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고위 간부에 대한 재산 신고제는 중국 고위층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 언론은 광저우 시 난사 구(南沙區)에서 시범적으로 고위 간부들의 재산 신고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이는 집단 민원에 대해 강경 진압을 위주로 하는 기존 방식 대신 대화와 설득 그리고 민의 수용이라는 이른바 ‘왕양(汪洋) 모델’로 유명한 광둥 성 서기 왕양의 작품이다. 고위층 재산 신고제는 소득 분배 격차의 축소에 대한 중국 국내의 대중적 요구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결국 확대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부(富)도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국가와 사회는 매우 위험하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대참사를 겪은 뒤 개혁·개방의 이름으로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혁명 원로의 자제들도 모두 농촌에 ‘추방’되어 온갖 곤경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고위층 자제들도 일반 국민처럼 경제 성장의 전선에 나섰던 점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정상 국가로 자리 잡았고, 더구나 세계 강국의 위상을 갖춘 상황에서 권력과 부를 동시에 가지려는 사고방식은 더는 용인되기 어렵다. 이 점에서 기업가로서 잘나가던 후진타오 주석의 아들과 사위가 몇 년 전 현직에서 물러났었던 사실은 평가받을 만하다.

갈수록 불거지는 중국 고위층의 부의 집중은 중국 국가 체제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결정적으로 동요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연 이번 원자바오 총리 자산 파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중국 미래의 행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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