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비리 이어 횡령… 엎친 데 덮친 남해화학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11.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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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억원대 지급보증서 위조 사건 수사 급물살

10월18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최원병 농협 회장(가운데)이 직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남해화학 딜레마’에 빠졌다. 올 초 불거진 1천억원대 비료 입찰 담합 비리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수백억 원 규모의 내부 횡령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 조직적인 비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원곤 동부지검 형사5부장은 지난 10월3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급보증서 위조 사건을 추가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남해화학 직원이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다. 구속된 조 아무개씨 외에도 여러 명이 수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불똥’이 남해화학이나 농협중앙회 경영진으로 튈 수 있어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이미 도피한 유류 도매업체 대표를 체포해 필요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5월 신한은행으로부터 고소장을 접수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은행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지급보증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 요지였다.

지난 2월22일 충남도청 앞에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비료값 담합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남해화학 직원 조직적 개입 혐의 포착

수사 결과 ㄱ사와 시중 은행 지점장이 짜고 가짜 지급보증서를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남해화학은 이 지급보증서만 믿고 1천억원 상당의 기름을 지급했다. 검찰은 ㄱ사 대표 정 아무개씨와 신한은행 남양주 지점장 박 아무개씨, 기업은행 광주지점장 박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ㄱ사의 또 다른 대표 지 아무개씨가 수사 도중에 잠적해 애를 먹었다. 도피했던 지씨가 최근 검찰에 체포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해화학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지급보증서 위조 사건에 개입한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지난 10월8일 남해화학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부장검사는 “구속된 조씨와 함께 서 아무개 차장을 체포해 조사했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이들을 상대로 또 다른 가담자가 있는지, 추가로 돈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협 주변에서는 “최원병 회장이 이번에는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만으로는 넘어가기 힘들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농림수산식품위원회)은 “남해화학의 경우 영업손실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임원 비중이나 1인당 인건비가 경쟁사에 비해 최대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농협중앙회와 경제 자회사들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못하면 유사한 사건이 계속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원병 회장과 남해화학의 악연도 조심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최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민선 4기 농협중앙회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검찰이 세종증권(현 NH농협증권) 매각 비리 의혹을 수사하다가 남해화학과 관련된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남해화학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20억원을 건넸다가 돌려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물론 남해화학 매각 구상은 정 전 회장의 구속으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이 사건 역시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묻혀 유야무야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남해화학을 둘러싼 검찰의 파상 공세는 취임 1년차 회장에게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남겼다.

최회장은 올 초 남해화학으로 인해 또 한 번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남해화학 등 비료업체가 지난 10년 이상 입찰 담합을 통해 비료 가격을 부풀린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것이다. 특히 남해화학은 농협의 자회사라는 점에서 농민들의 반발이 컸다. 농협은 지난 1998년 남해화학을 인수했다. 농가의 중요한 자재인 비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56%의 지분을 농협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남해화학은 지난 10년 이상 가격 및 물량 담합을 통해 5백억원이 넘는 부당 이득을 취했다. 남해화학이 최근 5년간 올린 영업이익이나 당기순이익을 넘어서는 액수이다. 때문에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최원병 회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농협중앙회와 남해화학의 조직적인 유착 의혹도 제기되었다. 결국 함태홍 남해화학 대표와 조성열 상임감사가 물러나고, 강성국 대표가 지난 3월 취임했다. 최원병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의 증인석에도 불려나갔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의원들은 경제 자회사에 대한 농협의 부실한 관리 문제를 질타했다. 최원병 회장은 “비료 사업의 경쟁력을 위해 남해화학의 지분 100%를 갖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남해화학, 취재 본격화되자 자진 공시

이런 상황에서 4백30억원 규모의 내부 횡령 사건까지 발생한 것이다. 남해화학은 지난 10월29일 금감원 공시를 통해 ‘조 아무개씨 횡령으로 4백30억원 정도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 검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공시를 앞두고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남해화학측에 여러 차례 요청했다. 남해화학측은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회사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취재가 본격화되자 금감원에 자진 공시를 한 것이다. 문제는 횡령액이 자본금의 10%를 초과한다는 점이다.

거래소 상장 규정에 따르면, 자기 자본의 50%가 넘는 금액의 횡령이 발생하면 상장 폐지 대상이 된다. 남해화학의 상장 폐지가 현실화되면 소액주주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와 농협중앙회의 소송 가능성 또한 남아 있어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남해화학 “가짜 지급보증서 발행한 은행에도 책임 있다” 
금융권의 부실 감사도 수면 위로 부상

1천억원대 지급보증서 위조 사건과 남해화학의 조직적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융권의 허술한 관리·감독 실태 역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8월 남해화학에 대한 자체 감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ㄱ사와 수백억 원 규모의 외상 거래를 한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실 감사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신한은행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자체 감찰을 통해 구속된 박 아무개 지점장의 계좌에 수상한 자금이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친인척 자금을 대신 관리하고 있다”라는 박씨의 말만 믿고 사건을 덮어 피해를 키웠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권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남해화학측은 현재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행한 시중 은행에 일정 부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이 관리·감독을 소홀하게 하면서 가짜 지급보증서 발급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4백30억원의 매출 채권에 대한 소송까지 제기된 상태이다.

신한은행이나 기업은행측은 “허위 지급보증서의 발급은 지점장 개인 비리이다. 은행과는 무관하다”라고 맞서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알고도 묵인한 남해화학측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위조 지급보증서는 은행 내부 시스템을 통해 보고되지 않았다. 지점장의 개인 비리 책임까지 은행에 떠넘기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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