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급’ 날개 달고 세계로 훨훨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11.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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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한 발 앞선 디자이너 영입 전략 ‘눈길’

ⓒ 연합뉴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을 보면 <삼국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최고의 책사인 와룡(제갈량)과 봉추(방통), 둘 중 한 사람만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패션업계의 와룡과 봉추라고 불릴 만한 두 거물 디자이너를 거느리고 있다. 정구호 전무와 정욱준 상무이다. 이 둘은 <시사저널> 조사에서 각각 2011년과 2012년 패션계 차세대 리더 1위로 꼽힌 인물이다. 차세대 패션계 리더로 점쳐지는 인물 두 명이 모두 제일모직에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상혁·서상영 등 스타 디자이너들을 연달아 영입하며 진용을 갖춰나가고 있다.

대중 브랜드-디자이너 브랜드 ‘융합’

제일모직의 이러한 시도는 패션계에서는 파격적인 행보로 여겨진다. 기본의 패션 시장은 대중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로 나뉘어 있었다. 대중 브랜드는 일반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 옷을 만들어냈고, 디자이너 브랜드는 일부 마니아나 계층을 위한 옷을 소량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서로의 영역에 대한 간섭은 거의 없었다.

이서현 부사장은 이러한 공식을 깨고 있다. 첫 시작은 정구호 디자이너의 영입이었다. 정구호 전무는 이서현 부사장과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동문이다. 파슨스디자인스쿨은 세계 3대 디자인스쿨로 꼽히는 명문이다. 정전무는 2003년부터 ‘구호’ 브랜드로 제일모직과 함께하게 되었다. 이서현 부사장이 제일모직에 합류한지 1년 만이다. 당시에는 여러 말이 많았다. 디자이너 브랜드를 대기업이 운영해서 과연 잘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서현 부사장은 2003년 인수 당시 100억원대에 불과했던 구호의 매출을 지난해 9백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또 다른 스타 디자이너 정욱준 상무 영입도 파격적이었다. 정욱준 상무는 국내는 물론 파리에서도 ‘준지’ 브랜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개인이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데에는 벅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때 제일모직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회사에 들어와 준지 브랜드를 더욱 키워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제일모직과 인연을 맺어왔던 정상무는 자연스럽게 제일모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회사 선배인 정구호 전무가 정욱준 상무가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에 대해 정욱준 상무는 “정구호 전무가 술을 사주며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성격이 다소 직설적인 편인데 좀 부드럽게 가야 한다는 등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라고 전했다.

이서현 부사장의 스타급 디자이너 영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부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자신이 직접 나서 디자인을 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의 콘셉트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디자인에 영감을 불어넣는 ‘총감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모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다. 그러나 국내 브랜드들은 그동안 크리에이티브를 두지 않고 운영해왔다. 이서현 부사장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그것도 스타급 디자이너로 연달아 영입했다.

서상영 디자이너는 브랜드 ‘바이크 리페어 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서상영 CD는 강동원·류승범 등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스타들이 선호하는 옷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이다. 서상영 CD는 독립적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제일모직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제일모직 상무와의 사적인 자리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약 1년의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가 제일모직에 합류하게 되었다. 서상영 CD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말리고, 내가 캐주얼한 대중 브랜드를 맡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디자이너로서 더 큰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서상영 CD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디자이너이다. 정욱준 상무와 달리 회사 생활 경험도 전혀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회사 생활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서상영 CD는 “독립적으로 일할 때에는 사람들이 없는 2~3시쯤 식당에 가서 혼자 신문을 보며 밥을 먹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직장인이 되어 따닥따닥 붙어 점심 식사를 하게 되니 낯설게 느껴졌다. 밥 먹는 것부터 적응해야 했다”라고 전했다.

(맨위부터) 정구호, 정욱준, 한상혁, 서상영
특유의 따뜻함으로 디자이너들 적응 도와

각종 방송에 출연한 바 있는 한상혁 디자이너는 2008년 제일모직에 들어왔다. 남성복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남성복 엠비오 라인의 매출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옷에 관심 있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한상혁이 들어온 이후 엠비오가 확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한상혁 CD는 서상영 CD의 ‘담배 친구’이다. 서상영 CD와 함께 수송동 제일모직 사옥에 근무하는데, 함께 담배를 피우며 속 이야기를 나눈다.

이서현 부사장은 디자이너를 단순히 영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기 색이 분명한 스타 디자이너들이 제일모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디자이너들을 옭아매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껏 실력을 펼치도록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스타일이다. 이서현 부사장은 정욱준 상무에게 ‘어떤 일이든 내가 도와줄 테니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라고 주문했다. 한상혁 CD는 “이서현 부사장은 창의력을 발휘해 하고 싶은 것을 펼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밀어주는 훌륭한 조언자이다”라고 전했다.

이서현 부사장 특유의 카리스마도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녹였다. 디자이너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서현 부사장의 따뜻함을 이야기한다. 한상혁 CD는 “생일이 회사를 쉬는 일요일이었는데도 아침 7시부터 격려와 함께 선물을 보내주셨다. 이 사례뿐 아니라 평소에도 따뜻하고 섬세하신 분이다”라고 전했다. 정욱준 상무도 “생일날 케익과 꽃을 보내주시는 것을 보고, 이런 것은 나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서상영 CD 역시 “실제로 보면 굉장히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분이다”라고 이서현 부사장에 대해 전했다.

스타 디자이너 영입은 제일모직의 글로벌 진출과 관련이 있다. 내수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옷만 찍어내는 방식으로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상혁 CD는 “처음 제일모직에 들어오기 전 ‘이제 글로벌 시장에 들어가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부분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가장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이서현 부사장의 스타급 디자이너 영입 전략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매출 증대와 브랜드 이미지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기 때문이다. 의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일모직의 전략을 지켜보니 저것이 맞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의류업계 전반으로 비슷한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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