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억 ‘세금 도둑’의 기막힌 이중 생활
  • 전남 여수·정락인 기자·유소연 인턴기자 ()
  • 승인 2012.11.0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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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청 8급 공무원의 공금 횡령 사건 현장 취재 김씨, 외제 차량 굴리고 가족들은 호화 생활 즐겨

공금 횡령 사건이 일어난 여수시청 회계과 입구. ⓒ 시사저널 박은숙
여수시청 회계과 8급 공무원인 김석대씨(47)가 76억원의 공금을 몰래 빼돌렸다. 앞으로 횡령 금액이 더 나올 수도 있다. 김씨는 3년 동안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범죄의 향연’을 즐겼다.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뭉텅뭉텅 빼냈다. 여수시는 곳간이 새고 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김씨는 시청 내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평소 말수가 적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근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다. 시청에서는 이런 김씨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사이 김씨의 범죄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대담해졌다.

‘김석대’는 알면 알수록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시사저널>은 ‘사상 최대의 공무원 횡령’으로 불리는 김석대씨의 범행 내막을 집중 추적했다.

김씨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장흥고를 졸업했다. 그가 어떻게 고향이 아닌 여수에 정착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청 동료들도 잘 몰랐다. 김씨가 여수시청에 들어간 것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여수시청 기능직 10급 지방 조무원으로 채용되었다. 그의 나이 26세 때이다.

김씨는 공채 시험이 아닌 특채를 통해 공직에 들어갔다. 그가 맡은 업무는 각 가정을 돌며 수도계량기를 점검하는 ‘수도과 검침원’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김씨가 졸업한 장흥고는 일반계 공립학교이다. 그는 특별한 기술이나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기능직 공무원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 여수 지역의 한 언론인은 “당시는 관선 시장 때였고, 기능직 공무원에 특채되려면 시청에 연줄이 있어야 들어오는 때이다. 누군가 안에서 끌어주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공무원에 입문한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직급이 8급에 머무르는 것은 기능직 공무원은 8급까지만 진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매년 호봉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월급도 올라간다. 김씨는 1996년에 만덕동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2000년에는 공공근로 유공자로 선정되어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취재진이 ㄹ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김씨의 혼다 승용차를 살펴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사채업자 돈 빌려 돈놀이를 했다?

그는 동료들이 인정할 정도로 업무에 탁월했다고 한다. 특히 컴퓨터 전산 작업에 뛰어났다. 다른 사람이 계산기를 두드릴 때 김씨는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업무를 후딱 해치웠다. 

김씨는 2002년 9월 회계과로 발령이 난다. 그는 그곳에서도 업무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2006년 9월까지 4년간 회계과에서 일했다. 그 후 김씨는 여천동사무소와 총무과 등을 옮겨다녔다. 시장이 주민의 고충이나 애로 사항을 직접 챙기기 위해 설치한 ‘직소민원실’에도 근무했다. 당시 민원 처리 유공으로 표창장도 받았다. 2009년 7월에는 약 3년 만에 회계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김씨의 집에는 큰 어려움이 닥치고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그의 아내인 김 아무개씨(40)가 사채업을 하면서 큰 빚을 졌다. 김씨 아내는 2007년부터 사채놀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사채업자에게 8억원을 빌렸으나, 2년 만에 쪽박을 찼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주었으나 채무자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돈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의 이자는 수십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그러자 김씨 아내는 아들의 물건을 부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여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김씨 아내는 또 남편에게 ‘돈을 구해달라’라고 닥달했다. 김씨는 회계과로 발령난 지 일주일 후부터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여수시에서 발행하는 상품권을 회수하면서 돈을 지급할 때 허위 서류를 첨부해 횡령했다. 직원 급여 소득 중 원천징수분을 세무서로 보내는 과정에서 공문서를 위조해 공금을 빼돌렸다. 퇴직자 등의 이름을 끼워넣어 급여를 횡령하기도 했다. 김씨의 아내는 차명계좌 11개를 만들어 횡령한 돈을 관리했다.

김씨 부부는 검찰 수사에서 횡령한 돈 76억원 중 48억원으로는 사채업자에게 진 빚을 갚았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김씨의 아내가 정말 사채업을 했는지가 의문이다.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김씨 아내는 사회 활동이 왕성한 것도 아니었다. 한때는 여수시청에서 3백일짜리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을 했었다. 그 뒤 여수 시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 김씨 아내가 대체 무엇을 믿고 사채업에 뛰어들었을까. 더욱 이상한 것은 사채업을 하기 위한 장사 밑천을 고리의 사채업자에게 빌렸다는 점이다.

기자와 통화한 사채업자들도 여기에 깊은 의문을 제기했다. 한 사채업자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안 된다. 8억원을 빌려서 2년 만에 50억원에 가까운 이자가 붙었다면 어림잡아도 5백%가 넘는다. 김씨 아내가 이윤을 남기려면 그보다 더 많은 이자를 붙여야 한다. 전문 사채업자도 아니고, 그런 이윤을 남길 수가 없다. 세상에 이렇게 멍청하고, 무모하게 사채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채업자는 “사채업자가 선뜻 8억원을 빌려준 것이 이상하다. 남편이 큰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8급 공무원 아내에게 무엇을 담보로 8억원을 빌려주었는지 모르겠다. 사채업자라고 해서 큰돈을 무작정 빌려주지는 않는다. 받을 수 있다는 판단 없이 큰돈을 빌려줄 리 만무하다. 뭔가 다른 내막이 있을 것 같다”라며 의아해했다.

사채업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 아내의 ‘사채놀이’는 각본일 수도 있다. 만약 김씨 부부와 사채업자 등이 말을 맞추면 사실상 추적이 어렵게 된다.

김씨는 횡령한 돈으로 아파트와 차량 등을 구입했다. 여수시 둔덕동에 있는 ㄹ아파트에 자신의 집과 장인·처남·동서 명의로 네 채(1백43㎡, 43평형)를 샀다. 구입 시기는 비슷하다. ㄹ아파트는 여수시청에서 승용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취재진이 방문해보니 이 아파트는 2006년에 준공되었고, 1백43㎡의 경우 2억4천만~2억5천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여수산단이 가까워서 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살려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부동산중개업소도 ‘김석대’나 부인 김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ㄹ아파트의 경비, 관리사무소, 세탁소, 슈퍼마켓 등에서도 김씨 부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횡령 공무원이 ㄹ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퇴직금 담보 대출 등 개인 재산 현금화

김씨는 지나치게 많은 차량을 소유하고 있었다. 김씨 개인 소유만 네 대이다. 시청에 출근할 때는 주로 아반떼를 타고 다녔다. 주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눈속임이다. 집에서는 국산차(SM5, 베라크루즈)와 외제차(혼다)를 병행해서 이용했다. 김씨 부인은 고급 외제차인 BMW를 타고 다녔다. 김씨는 또 장인과 처남 등에게도 고급 승용차를 사주었다.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씨가 횡령한 돈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김씨 아내가 관리한 차명 계좌에도 잔고가 거의 없다.

김씨는 아파트를 구입할 때에도 전액 지불하지 않고,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려서 구입했기 때문에 회수할 금액은 미미하다. 심지어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빼돌린 돈은 사채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모두 썼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김씨는 자신이 챙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챙겼다. 또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남아 있는 재산을 현금화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범행이 탄로 날 것을 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현재 김씨 소유의 아파트와 친인척 명의로 구입한 부동산 등에 대해서는 여수시가 가압류 조치를 한 상태이다.

김씨는 정말 돈을 숨기지 않았을까. 만약 숨겼다면 장소는 어디일까. 한때 고향인 장흥에 임야를 구입하려고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범행이 탄로 나기 직전 가묘를 쓴다며 임야 매입을 시도했으나 실제로 구입하지는 않았다.

김씨 부부의 은닉 재산을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지는 검찰의 활약에 달렸다.


몰래 도운 공범은 없었을까

김석대씨는 정말 혼자 범행에 나섰을까. 여수시는 자체 감사를 통해 ‘단독 범행’으로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범’의 존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씨의 범행을 누군가 알고도 묵인했거나 공모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취재진이 여수시청에 갔을 때도 검찰에서 직원들의 인사 카드 제공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수시청 회계과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10월31일 기자가 회계과를 방문했더니 직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회계과에는 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나같이 눈길을 피하며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한 직원에게 ‘김석대’에 대해 묻자 “모른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 아무개 경리팀장은 “나는 온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되어서 잘 모른다”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 직원은 “여기 와서 물어봤자 다들 모른다”라며 나가라고 했다. 화장실에 가는 여직원을 쫓아가 말을 걸었으나 “(김석대와) 안 친하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도규 여수시청 홍보팀장은 “우리도 김석대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지금 시청 직원들은 김씨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한마디로 ‘멘붕 상태’라고 보면 된다. 회계과는 더할 것이다”라며 허탈해했다.

 


 
 

김씨 부부가 자살을 시도했던 도로. ⓒ 시사저널 박은숙
김석대씨와 그의 부인은 범행이 탄로 나기 직전 자살을 시도했다. 이들은 지난 10월8일 오후 11시10분쯤 여수시 화양면에 있는 화양농공단지 인근의 국도 갓길에 아반떼 승용차를 세웠다. 차량에 연탄불을 피우고는 수면제를 먹었다. 그런데 승용차가 비틀거리듯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나가던 택시기사가 112에 신고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김씨 부부가 탄 차량은 조금 전진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섰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보니 의식을 잃은 김씨 부부가 자동차 의자에 앉은 채 쓰러져 있었고, 차 안에는 연탄불이 피워져 있었다. 바닥에는 수면제 통과 다섯 알이 떨어져 있었다. 김씨 부부는 광주 전남대 병원으로 옮겨져 위 세척을 받았다. 김씨는 정신을 차린 후 횡설수설하며 정신이상자 흉내를 내기도 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10월31일 오후에 김씨 부부가 자살을 시도했던 장소에 가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우선 한눈에 봐도 자살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보통 승용차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할 경우에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을 선택한다.

그런데 김씨 부부가 자살을 시도했던 곳은 2차선 국도였고, 경사진 언덕이었다. 차량 이동이 많아서 자살을 시도하면 금방 발견될 수 있는 곳이었다. 의도적으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장소를 택한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또, 김씨 부부가 먹은 수면제는 치사량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도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소견을 밝혔고, 입원한 지 반나절 만에 퇴원했다.

김씨 부부의 자살 시도에는 노림수가 엿보인다. 향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유리한 영향을 미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정신이상자처럼 행동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씨 부부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연극’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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