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로 여는 중년 “인생이 맛있어”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1.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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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쉐프 레스토랑’에 관심 부쩍 늘어

ⓒ 시사저널 전영기
요즘 유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오너 쉐프 레스토랑이다. 서울 삼청동이나 한남동의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식당, 사장이 요리사이고 서빙하는 직원 1~2명 정도를 둔 작은 레스토랑을 오너 쉐프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오너 쉐프 레스토랑에 부쩍 중년 남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40대에 제2의 삶을 찾아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무직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방에서 불을 다루고 칼질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현실에서 이를 실현 가능한 또 다른 도전으로 여기고 과감히 팔을 걷고 나서는 이들이 있다. 윤활유 대리점을 하다가, 증권 영업을 하다가,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요리에 나머지 인생을 건 이들이다. 40대에 요리사로서 삶의 2막을 시작한 세 사람을 만났다.

■ 그란구스또 이경태 조리 이사

이탈리안 스타일의 음식을 내는 그란구스또의 오너 쉐프인 이경태씨의 정식 직함은 조리 이사이다. 대표는 그의 부인이다. 이이사는 국내에서 오너 쉐프로 성공한 대표적인 요리사이다.

고려대 농학과 74학번인 그는 1980년대에 미국으로 MBA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집도 유복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요리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유학 생활 중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미국 마켓에 전시된 풍부한 식료품과 식문화였다. “그때 미국의 외식 문화를 지금 우리가 아직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해서 10평쯤 되는 일본식 선술집을 내자 집에서 난리가 났다. 기껏 미국 유학까지 시켰더니 요리사가 되었느냐는 힐난이 돌아왔다. 결국 1년 반 만에 그는 손을 들었다. 동업하던 친구에게 가게를 넘기고 집안에서 바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졌다. 육가공업도 하고, 윤활유 대리점업도 10년 넘게 했다. 돈도 꽤 벌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그의 사무실에 개인 주방을 차려놓고 요리 공부를 하는 것과 3개의 식도락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잘한다는 요리를 찾아가 맛보는 것으로 달랬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타계하고 그가 49세가 되던 해에 그는 조바심이 생겼다고 한다. “나도 내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 더 늦으면 몸이 힘들어서 포기할지도 모르겠다”라는.

그는 2004년 서울 대치동에 그란구스또라는 가게를 열었다. 콘셉트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양식이었다. 이 집에서 내놓는 고등어 파스타가 히트를 쳤다. 그란구스또 하면 ‘고등어 파스타’, 즉 시그니쳐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이다.

“80세, 그란구스또 30주년까지 오래 가는 가게를 만들겠다”라고 말하는 그는 정작 올해는 안식년으로 주방 출입을 줄였다고 한다. 주방 일이 오래 서서 하는 일이다 보니 의사가 무릎에 무리가 왔다며 ‘쉴 것’을 처방했다. 하지만 그는 새벽마다 장보기는 거르지 않고 있다. “요리사라면 장을 직접 봐야 한다. 내 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면 다른 이의 입에 보낼 수 없는 것이다. 몸이 피곤해도 장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이것을 사서 뭘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 언제나 설렌다. 일이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음식은 타고난 게 있어야 한다. 스스로 좋아하고 남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즐거워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타고난 끼가 없는데 탈출로를 찾다가 요리 쪽으로 오는 것은 반대한다. 이 일을 해서 내가 크게 돈을 번 것은 없다. 내 인건비를 받는 정도이다. 백화점 두세 군데에서 들어오라는 부탁도 받았지만 내가 몸이 하나인데 어떻게 하나. 일을 키우면 키울수록 복잡해진다. 이 가게가 자리 잡았으니까 1~2명 정도 데리고 내가 하고 싶은 요리만 하는 자유분방한 음식점을 해보는 꿈이 아직 남아 있다.”

■ 그릴 데미그라스 김재우씨

이경태 이사는 식도락 동호회 후배이기도 한 ‘그릴 데미그라스’의 김재우 요리사에게 “기본은 되어 있는데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재우씨는 지난 2월 가게 문을 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증권사에서 브로커로 일한 그는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컸다.

김씨가 증권사 생활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것은 2011년 초였다. 그때부터 그는 취미였던 요리를 본업으로 삼기 위한 준비를 했다. 삼청동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주방 보조로 취직했다. 맞벌이 부부인 그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 요리를 전담할 만큼 주방과 친했다. 그만큼 술도 즐긴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가 관심 있는 음식은 만두 등 중국 요리나 면류였지만, 현실적으로 냉면이나 중국 요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적어도 5년 이상 도제식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고 자주 했던 ‘경양식’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제대로 하는 경양식집을 막 찾아다니고 그랬다”라는 그는 일본화된 양식을 내는 레스토랑에서 1년 동안 보조 일을 시작했다. 

결국 그의 개업 아이템은 ‘비후가스’나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같은 복고풍의 경양식이 되었다. 문제는 입지였다. 용인이 집인 그는 가까운 죽전도 눈여겨봤지만 임대료가 혀를 내두를 정도여서 포기했다. 인연이 닿았는지 삼청동 총리 공관 쪽에 가정집을 개조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가게 규모가 좀 크다. 이보다 더 작고 소박하게 시작했어야 하는데…. 오너 쉐프 레스토랑을 시작할 때 큰돈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직접 요리하면 재밌을 것이라는 로망은 있었고…. 시작해보니 몸도 힘들고 현실은 더 가혹한 것 같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1년 동안 주방 보조로 일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책으로 얻은 지식이나 들어서 아는 것은 실제 경험과 비교할 수 없다. 두 번째 인생으로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기리야마 신상목 대표

서울 역삼동의 일본식 우동집 기리야마의 신상목 대표는 주방 설거지 담당이자 기리야마 대표이다. 외교부 소속으로 지난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으로 활약하던 외무고시 30회 출신의 신대표는 왜 10월부터 우동집의 설거지 담당이 되었을까.

“원래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맛있는 집이라면 한 시간 정도 운전해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과였다. 내가 나가서 우동집을 한다고 했더니 직장 동료들은 또라이라고….”(웃음) 연세대를 나와 1996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2006년부터 3년 동안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과장으로 일했다. 그때 맺은 재일교포 3세와 재일 한국 유학생과의 인연이 기리야마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가 우동집 창업을 구상한 것은 4년 전이다. “일본에는 전통이 오래된 숨겨진 보물 같은 집이 많다. 도쿄도 상수원 구역에 있는 기리야마가 그런 집이다. 그 집 본점 주방장을 내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분과 인연이 닿아 3년 전에 지금 한국 기리야마의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요리사를 그 집 주방으로 보냈다. 나도 주방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현직 외교관 신분이라 할 수가 없어서 그를 먼저 주방으로 보낸 것이다. 이제 창업을 했으니 가게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도쿄 기리야마 주방으로 연수를 갈 것이다. 지금은 주방 막내로 설거지만 하고 있다. 처음 하는 사업이고 지금까지는 머릿 속 구상만 있었으니까 시행 착오는 당연히 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이것은 계산된 도전이다. 어떤 입지에, 어떤 손님을 대상으로, 어떤 메뉴를 가지고 승부를 걸지 많이 생각했다. 맛있는 우동과 가벼운 술자리를 할 수 있는 ‘우동다이닝키친’이라는 콘셉트를 위해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도 일본에 있을 때 땄다.”

80평인 가게에 대한 총 투자비는 5억원이었다. 반은 그의 돈이고, 반은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외교관 생활까지 접고 던진 승부수가 먹힐지 궁금하다.


음식문화평론가는 긍정적 평가  

 음식문화평론가 황교익씨는 최근의 오너 쉐프 레스토랑 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너 쉐프들은 적어도 음식에 대해 고민하고, 집중한다. 보통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는 그런 고민 없이 본사가 시키는 대로 가게를 꾸미고 문을 연다. 하지만 오너 쉐프들은 음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있다. 의지도 강하고 자부심도 있다. 문제는 영업 규모가 작고 집세는 세고, 인테리어 비용도 많이 나가는 현실이라 수익성 여부는 미지수이다. 그들은 요리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경영에 대한 경험은 없을 것 같다. 자주 가는 홍대 쪽에 그런 가게가 많다. 가게세가 너무 비싸니까. 안타깝다.

오래된 가게가 있고, 그 밑에서 요리와 음식점 경영에 대해 5년, 10년을 배워서 점포를 차리는 도제 형식이 있으면 좋겠다. 국내에는 아직 그런 것이 없다. 지금의 오너 쉐프들이 살아남아서 앞으로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창업 전문가는 “조심, 조심!”   

지난 10월 국세청이 발표한 ‘개인 사업자 업태별 폐업 현황’을 보면, 지난해 폐업한 개인 사업자는 83만여 명으로 2010년과 견주어 2만4천명 이상이 늘어났다. 이는 전체 개인 사업자 5백19만5천9백18명 가운데 16%로, 2007년(84만8천62명) 이후 최대 규모이다. 업종별로는 이·미용업, 학원 등 서비스 사업자가 17만9천8백34명으로 가장 많았고, 동네 가게 등 소매 업종이 17만7천39명, 식당 등 음식업이 17만6천6백7명에 달했다. 즉, 동네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는 업소의 폐업률이 제일 높은 것.

한국창업전략연구소의 박남수 팀장은 “음식업이나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요즘 트렌드이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일수록 뭔가를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할 확률이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고 있다”라고 전했다. ‘식당을 하면 굶지는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 실패한다는 것이다. 박팀장은 “창업자가 주방을 맡으면 원가율을 낮추고 경쟁력을 갖춘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음식점을 하려면 1~2년의 시간 여유를 가지고 배워야 하는데 창업 희망자들은 당장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준비하고 시작해야 실패가 줄어든다고 말해도 각자의 사정상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전문 요리사 “냉정하게 따져보고 뛰어들기를…”    

요리사 박찬일씨(48)는 중앙대 문창과를 나와 잡지 기자를 하다가 외환위기 뒤에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갔다. “3개월 동안 국수 만드는 것 10가지만 배우려고 유학 갔다가 전세금까지 빼서 3년여를 머물렀다”라는 그는 현지의 요리학교에 다니는 수강생 중 40대 이상의 남자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그때, 인생은 60이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인생을 80까지 보고 인생을 한 번 더 살기 위해 마흔줄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학원에 다닌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가 되면서 40대 남자들이 요리 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는 1999년 귀국 이후 한 번도 창업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 고용 요리사로 일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쓰고 강연을 나갔다. 그는 “절대 창업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음식점으로 돈을 벌기는 대단히 힘든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음식점을 차려서 1년을 버틸 확률이 10%이다. 음식점 창업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마케팅 기술과 자본, 운도 있어야 한다. 생업으로 하는 요리는 로망이 아니다. 돈가스를 밥으로 먹으면 5천원을 받고 술안주로 시키면 1만5천원을 받는다. 술집이 요리 기술에 비하면 음식점보다 기대 수익이 훨씬 더 높다. 음식점을 차릴 정열과 자본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것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 양식 요리사로 13년을 보낸 그는 음식점 창업에 뛰어들기 전에 ‘음식’에 대한 로망과 직장 생활에서 ‘나만 겪는 스트레스’와 ‘남자는 성공’이라는 압박을 지우고 냉정하게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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