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미소로 다스려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1.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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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힐링 전문가 두 사람이 만났다. 이시형 박사(78·이하 이시형)와 위말라 람시 스님(66·이하 람시)은 지난 11월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의 한 훈련원에서 힐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박사는 힐링을 평화로운 마음이라고 표현했고, 람시 스님은 신체와 마음의 행복이 힐링이라고 했다. 평화와 행복은 모든 이가 꿈꾸는 삶의 근본이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현대인은 평화롭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주말에 산이나 들로 나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대담에서 현대인이 생활 속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힐링 방법을 찾아보았다. 두 전문가가 모두 강조한 힐링법은 ‘미소 짓기’였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시형 정신과 의사이므로 힐링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람시 내 어머니는 양로원을 운영했었다. 당시 어린 내가 그곳에서 재롱을 피우면 노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퍼지고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미소가 가장 좋은 힐링법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스님이 된 후의 일이다. 45세 호주 남성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늘 짜증 속에서 생활하고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입원까지 했다. 그에게 일주일 동안 계속 미소를 지으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미소를 지으니 주변 사람들도 그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경험을 했다고 전해왔다. 정신 상태가 안정되면서 6개월 후에는 퇴원해 정상 생활로 돌아갔다.

미소가 정신 상태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는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간 사람의 정신 상태에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미소를 지으면 같은 강도의 분노라도 가볍게 극복할 수 있다. 운전할 때 갑자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일반인은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평소 미소 짓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요즘 직장인들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다. 늘 심각하게 생활하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고 근심이 꼬리를 문다. 그런 직장인에게 나는 책상에 작은 거울을 놔두고 늘 보면서 자신의 표정을 살피라고 조언한다. 거울을 보면서 미소를 지어보라. 그 거울에 스마일    그림을 그려놓아도 좋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지어보라. 삶이 분명히 바뀐다.

이시형 미소의 효과는 정신학적으로도 입증되어 있다. 웃으면 두뇌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나는 이를 ‘웃음 호르몬’ 또는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나는 산에서 작은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현대인은 바쁘고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이는 몸의 방어체계(면역력)를 망쳐서 비만·당뇨·고혈압 등 생활 습관병(성인병)의 원인이 된다.

의사로서 나는 이런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힐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 마을에 들어와서 2~3일 머무르는데, 그동안 인터넷·휴대전화·TV 등 모든 문명의 이기로부터 떨어져야 한다. 첫날, 사람들의 몸은 산속에 있지만 정신은 여전히 직장에 있다. 한 중년 남성에게 산을 쳐다보라고 했더니 얼마 후에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한국은 수많은 외세 침략을 받아오면서 남들보다 앞서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런 생활 방식 때문에 중년의 42~50%는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치유법이다.

람시 매우 인상적인 사례이다. 생활 습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도록 하는가?

이시형 우선 생활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밤에 일찍 자면 좋으련만 한국인의 69%는 자정까지도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밤에 술을 마시거나 일을 한다. 이런 생활에 찌든 사람을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게 하고 6시에 기지개 켜기(스트레칭)를 시켰다.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산에서 걷거나, 하늘을 보거나, 나무에 말을 하도록 했다. 나는 이를 ‘자연 명상’이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산이 많지만 사람들은 자연과 거리가 먼 삶을 산다. 자연을 감상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른다. 등산하지 않더라도 산에서 5분 동안 앉아서 눈을 감고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안 들렸던 시냇물 소리, 새소리가 들린다. 이런 작은 행동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을 변화시킨다.

또 한국인은 밥을 너무 빨리 먹는다. 음식을 먹고 30번 씹으면서 30분 동안 식사하라. 그 다음은 운동인데, 걷기나 스트레칭 등 가벼운 몸놀림이 좋다. 모든 사람이 병원에 가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현대인은 분초를 다투며 바쁘게 지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바쁠 때 30초 만이라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라. 스트레스를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한 기업이 강원 홍천에서 연 힐링캠프. ⓒ 뉴스뱅크
명상한 뒤 미소 지으면 효과 배가

람시 그렇다. 내가 미소를 강조했는데, 잠시라도 명상을 한 후에 미소를 지으면 효과는 배가된다. 생각만 하지 말고 해보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시형 너댓 살짜리 유치원 아이들도 명상한다. 지난해 18개, 올해 2백50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음악을 듣게 했더니 놀라운 반응이 나왔다. 가장 부산할 그 또래의 아이들이 명상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생활 습관을 바꾸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 때부터 명상하면 좋은 습관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

람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부모와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서로 행복을 빌어주도록 했다. 그냥 잘 자라는 형식적인 인사 대신 행복을 비는 말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들의 마음이 더욱 말랑말랑해지고 삶이 윤택해졌다.

이시형 요즘 부모는 아이들과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 몇 주 전 아버지와 아이가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도록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난감해했다. 텐트를 치는 방법, 요리하는 방법은 물론 아이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몰랐다.

람시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다룰지를 안다. 울고 보채면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로 아이들에게 각인되고, 아이들이 커서 또 그런 아버지가 된다. 아이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혼자 게임을 하며 놀도록 하는 아버지가 많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게임은 짧은 즐거움을 주지만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 컴퓨터는 한 시간 정도만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밖에서 흙을 묻히면서 놀도록 해야 한다. 온종일 놀고 나면 지친 상태로 집에 온다. 집에 와서 컴퓨터나 게임을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대신 가만히 앉아서 쉬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명상이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이시형 나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중학생들을 교육한 적이 있다. 드럼을 치며 놀게 했다. 드럼을 치거나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뇌에 변화가 생겼다. 항상 들떠 있던 아이들이 얌전해졌다. 이후 학업 성적도 올랐다.

람시 미국 인디언들이 드럼을 치면서 리듬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국 공통 힐링법은 웃고 즐기기

이시형 미소 외에 또 다른 힐링 방법을 한국인에게 소개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람시 너무 진지하지 말고 즐기라(have fun)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것도 명상이다. 명상이라고 해서 꼭 시간을 내고, 자리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생활 자체이다.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시형 그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중년이 일하지 않고 즐기거나 놀면 죄책감을 느낀다. 항상 달려야 하고, 누군가를 몰아붙여야 한다.

람시 그래서 미소를 지으라고 하는 것이다. 미소를 지으면 생활을 즐기게 되고, 즐기면 미소를 짓게 된다. 대학에서 미소 짓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 성공을 위해 돌진한다. 그런데 미소를 짓고 즐기면 일이 잘 풀려서 더 큰 성공이 따라온다. 불교 말로 ‘미소 보시’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미소를 선물하라. 처음에는 반응이 없더라도 계속 반복하면 미소가 되돌아온다. 이 자체가 큰 변화가 아닌가.

내가 한 할인점에 갔을 때 카트에 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자지러지게 우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행복을 빌었더니 갑자기 그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미소를 지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시형 모르는 사람이 내 아이에게 미소를 짓거나 말을 걸어오면 일단 경계한다. 아이를 어떻게 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람시 그렇다. 아이에게 조금 거리를 둔 상태에서 그저 미소를 지으면 된다.(웃음)

이시형 현대인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다. 이런 사회적 행동을 바꿀 수는 없을까?

람시 이런 사례가 있다. 한 여성이 높은 선반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고 할 때 내가 도와주었다. 그 여성은 아마도 이를 기억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것이다.

이시형 오래전의 일이다. 작은 몸집의 여성이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기차를 타려고 했다. 뒤에 있던 건장한 남성은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도움을 주려고 해도 여성이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람시 우리는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난다. 처음부터 크게 웃으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작은 미소와 간단한 인사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안면을 튼 후에 도움을 주거나 말을 걸면 된다. 나는 이를 직접 경험했다. 나를 무서워하던 사람에게 계속 미소를 보냈더니, 나중에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짓는 표정을 보고 점차 행복해졌다’고 고백했다.

이시형 한국과 미국의 명상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람시 한국인은 훌륭한 명상을 빠르게 흡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미국인은 개인주의 성향이 있어서 명상을 잘 하지 않는다. 나는 여러 스승으로부터 많은 명상 방법을 배웠다. 그런데 그 방법들이 사람들에게 잘 통하지 않았다. 거부감도 있고 명상을 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미소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있다.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강조하는데 미소, 웃음, 즐거움이다.

이시형 스님들은 늘 진지해 보인다. 웃으면 명예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 같다. 

람시 그런가? 안 그런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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