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중심주의가 또 다른 피해자 낳았다”
  • 윤고현 인턴기자 ()
  • 승인 2012.11.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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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담배 성폭력’ 논란의 중심 유수진씨 인터뷰

지난 2011년 3월 어느 연인의 이별이 있었다. 그러나 이별 이후는 여느 연인과 같지 않았다. A양은 “남자친구 B군이 이별 을 고하면서 줄담배를 피워 남성성을 과시했다”라며 사노위지지 서울대모임에 B군을 성폭력 가해자로 제소했다.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장녀로 알려진 서울대학교 사회대 학생회장 유수진씨는 성폭력이 아니라는 판단에 이 제소를 반려했다. 

갈등은 번졌다. A양은 유수진씨를 ‘성폭력 2차 가해자’로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A양이 속한 서울대 여성단체에서도 A양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유씨를 비난했다. 상황은 학생회장 사퇴까지 이어졌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것이 성폭력이 맞느냐’를 두고 거센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서울대 내 여성단체들은 지난 10월 23일 사과의 뜻을 담은 입장서를 내놨다. 사노위 학생위원회(이하 사노위)와 서울대 학생행진(이하 행진), 여성주의 자치모임 공간(이하 공간)으로 이루어진 대책위는 입장서를 통해 "(사건 당사자인) A양이 자신의 경험을 명백하게 '성폭력'이라고 규정하는 상황에서 대책위 또한 피해자중심주의를 왜곡된 방식으로 적용했다"라고 밝혔다. 논란 이후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유씨는 2년간의 마음고생으로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지난 1월14일 오후 서울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고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에서 유수진 서울대 단과대학생회연석회의 의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사건이 거의 2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다.
2011년 3월에 흡연 사건 있었고 내가 요청서를 반려한 게 지난 해 4월 무렵이다. 나를 2차 가해자로 지목하고 사과를 요청한 게 9월이다. 2012년 2월 대책위가 꾸려졌고 내가 대책위를 거부한 게 2012년 8월이다. 실질적으로 대책위 개념이 중단 된 건 4월이었다. 2년째다. 살면서 그렇게 힘들어 본 적이 없다. 사과문이 나갔지만 아직 직접 사과를 받진 못했다.

- ‘피해자 중심주의’가 근거가 되었다.
한국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서구 다른 나라보다 해결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먼저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빈번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남성이 “쟤는 원래 문란해”라고 소문을 낸다거나 주변에서 피해자에게 “그냥 넘어 갈 수 없냐”고 종용한다거나 피해자를 더럽혀진 존재로 간주하는 식이다. 또 법적으로는 ‘성폭력’을 매우 좁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맥락에 따라 ‘성기 삽입’만 안 했을 뿐 준 성폭력에 해당하는 사안도 있다.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게 바로 ‘피해자 중심주의’다. 첫 번째로 (성폭행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지 않는다. 또한 2차 가해를 성폭력에 준해서 처리한다. 내가 공격받은 것이 바로 이 ‘2차 가해’ 부분이다. 2차 가해 문제는 여성주의 운동에서 성폭력 가해자만큼 비난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피해자를 좀 더 신뢰한다. 이 정의는 여성운동 진영에서 일반화된 것이다.

- 서울대 여성주의 단체와 의견이 달랐다.
나는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없다 해서 가해자를 ‘유죄추정’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2차 가해를 방지 한다는 건 피해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걸 막아야 하는 것이지 사건에 대해 발언 일체를 못하게 하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발언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공간·행진에는 실질적으로 ‘가해자는 유죄추정’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피해자의 허락 없이 사건을 외부에 얘기하고 다니는 건 2차 가해’라고 했다. 피해자가 성폭력이라는데 성폭력이 아니라고 외부에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노위 입장은 어떤가?
사노위는 처음에는 이 입장에 동의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나 논의 없이 ‘피해자가 그렇게 말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이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사노위 입장이었다. 

- 대책위라는 기구자체가 재판관으로 개입을 한 것인가?
해결을 위한 기구인데 결과적으로 재판관 역할을 했다. 단순히 누구를 처벌하고 징계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전무한 채 사실상 징계위원회가 되었다. 징계위원회면 재판관은 중립적이야 할 것 아닌가.

- 대책위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왜곡에 대해 사과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은 현재 고수하고 있나. 철회한 것인가?
행진은 모르겠고 공간은 가장 마지막으로 낸 입장서가 내가 사퇴 이후였는데 거기서도 철회하고 있지 않았다. 사과문에 서명은 했지만 잘 모르겠다.

 

아직 직접 사과 받진 못해. “살면서 그렇게 힘들어 본 적 없다”

- 수진씨나 B군과 같은 형태의 ‘피해자’에 대한 대책은?
지금 사노위는 새로운 대책위를 꾸리려고 한다. B군이나 나에 대한 피해 부분에 대한 대책위를 꾸려서 운영을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 거 같다.

- 연애와 같은 사적인 관계에서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공적으로 회자되고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남자친구에게 ‘콘돔을 끼지 않으면 관계를 하지 않겠다’라고 요구했는데 술 취한 상태나 강제로 콘돔을 안 쓰고 관계를 했을 때 그것은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별의 방식이 무리했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같은 페미니즘 안에 있는 사람들과 모여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 남성을 호출해서 사과하라고 공동체가 압력을 강제하는 것은 폭력이다.

- 둘 다 사적 공간 안에 일어나는 일 아닌가? 구별이 애매하지 않은가?
권리가 침해당했느냐가 문제다. 모든 것을 권리로 칭하진 않는다. 학생들이 교수님께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게 예의인 건 알지만 교수님에게 ‘인사를 받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안전한 피임이 안 된 상태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을 권리는 성적 자기 결정권에 속한다. 그런데 이별통보를 할 때 상대방 앞에서 흡연하지 않는 건 (예의이지) 권리가 아니다. 상대방의 태도가 무례하기 때문에, 고압적이라 해서 무조건 권리침해라고 보긴 어렵다.

- 어쨌거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꼈고 이것이 보고된 것이 아닌가.
이런 종류의 발언권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들어가는지는 회의적이다. 이별통보를 하는 애인한테 자기가 지금 얼마나 서운한지 쏟아 부을 권리를 사회가 나서서 보장해 줄 순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 이 부분이 여성주의의 대표되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나?
이 사건에 연루된 여성주의자를 자칭하는 모두가 이 말도 안 되는 원칙에 동의를 해줬다. 비호하는 여성주의자들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 모습을 여성주의 일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여성주의 진영의 문제다. 정말로 이것이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문제라면 왜 단호하게 이것은 여성주의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말을 못하는가.

- A양과 B군 간의 결론은 어떻게 났나?
B군은 전적으로 A양의 요구를 들어줬고 폭언에 대해서도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A양이 B군에게 ‘연인관계에 있을 때 했던 스킨쉽도 성폭력이다. 왜냐하면 나는 연인관계라고 생각해서 이걸 받아들였는데 본인은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킨쉽한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B군은 그 부분에 있어서까지 사과를 했다. 지금은 A양이 B군에게는 좀 누그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 이번 사건처럼 ‘성폭력’의 자의적 해석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합리성을 전면 폐기하고 주관으로 달려가 버리는 순간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밖 에 없다. 이번 사태는 주관성이 지나치게 개입되었다고 하기보다 객관성을 폐기한 경우다. 감정을 중심으로 윤리체계를 재편해버린 상황이다.

- 앞으로 계획은?
나 스스로도 여성주의자이고 피해자 중심주의를 전면 반대하지는 않는다.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워선 안 되고 피해자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개념을 구체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포괄적으로 정의되어 있으면 이번 사건처럼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B군과 나 같은 피해자가 계속해서 늘어갈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 말 말고 다른 말이 없을까 고민 하고 있다. ‘중심’이라는 것은 ‘주변’을 상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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