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망명’, 아니 땐 굴뚝 연기인가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11.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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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망명 요청설’부터 ‘서방 망명 준비설’까지 진상 추적

왼쪽은 2007년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언론에 노출된 김정남의 모습. 아래는 2001년 찍힌 것으로, 김정남의 부인 (선글라스 쓴 여성)과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 연합뉴스
‘김정남(41) 망명설’의 여진이 심상치 않다.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와 관계 당국의 강력한 부인에도 “김정남이 망명을 요청했다”라는 관측이나 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한때 후계자 1순위로 거론되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망명설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해 전례 없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망명설의 발단이 된 것은 지난 10월31일 서울발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국의 정보 당국 핵심 관계자가 비공개 석상에서 “김정남이 최근 제3국에서 한국 정부의 정보 채널을 통해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라고 언급한 내용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 핵심 관계자가 “관계 당국이 안전하게 신병을 확보한 상태이며 곧 큰 뉴스가 될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확산되자 국회 정보위원들도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SNS에 누군가 올린 글이 확산된 것”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국정원 핵심 인사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런 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확인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라고 전했다. 국정원측은 이날 정보위원이나 언론의 문의에 대해 “일본의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누군가 올린 글이 확산된 것이 루머처럼 번진 것이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망명 요청설이 확산되면서 김정남의 행방에도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그는 행적을 남기지 않은 채 오랫동안 잠행 상태에 있었다. 김정남은 지난해 12월 아버지 김정일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이복동생 김정은(28)이 북한 후계 권력을 거머쥔 직후 행방을 감췄다. 카지노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마카오에서는 올 1월부터 자취가 끊겼다. 4월 싱가포르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지만 사실로 확인되지는 못했다.

그와 관련한 동향이 마지막으로 언론에 거론된 것은 10월 초 싱가포르에서였다. 당시 신병 치료차 싱가포르에 들른 김경희 노동당 비서를 김정남이 만났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김정일의 여동생으로 현재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강력한 후견인 역할을 하는 김경희는 예전부터 장조카인 김정남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남은 고모인 김경희를 잘 따랐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상의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망명설이 불거지자 김정남이 망명 결행을 앞두고 김경희와 마지막 담판을 위해 만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는 시각도 나왔다.

오랜 잠행에 김정남의 침묵까지 겹치면서 망명설은 수면 아래에서 꾸준히 진화하는 분위기이다. 김정남이 이미 망명을 결심하고 한국 정보기관과 접촉했으며, 신병도 사실상 넘겨받은 상태라는 얘기도 나왔다. 다만 대선 정국에서 김정남의 한국행이 이뤄질 경우 부담이 작지 않다는 점 때문에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스토리도 대두했다.

한국행이 아닌 서방 망명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관측도 있다. 신변 위협 등의 문제가 있는 서울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쪽을 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남의 망명이 한국 정부의 주선 속에 미국 CIA의 주도적 개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정은과의 권력 갈등이 배경으로 지목돼

정부 당국이나 국정원 등 관계 기관은 “망명설은 근거가 없으며, 김정남은 현재 잘 지내고 있다”라고 말한다. 망명설 관련 보도를 한 언론기관에는 관계자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 데스크와 해당 기자에게 “사실 관계가 잘못된 기사이며,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라고 설명하는 전례 없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언론의 확인 요청에 “오늘이 만우절인 줄 아는 모양이다”라는 얘기까지 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언론들은 김정남의 망명 가능성에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며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매달리고 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김정남 망명과 같은 메머드급 사안의 경우 정부 당국이나 공보 라인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사태의 민감성으로 볼 때 김정남의 망명이 추진되고 있다면 안보 관계 장관회의 정도에서 극비리에 다루어질 사안이지 실무선까지 확산될 사항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극단적인 경우라면 국정원 수뇌부가 미국 정보 라인과 긴밀히 공조해서 움직이고, 진행 상황도 원세훈 국정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정남을 둘러싸고 망명설이 제기되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복동생 김정은과의 권력 갈등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김정은은 먼저 자신의 권력 구축에 걸림돌이 될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는 데 공을 들였다. 2009년 4월에는 김정남이 평양 체류 시 머무르던 우암각 별장을 급습해 세력 기반을 없애려 했다. 우암각은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이 살던 곳으로, 김정남이 평양에 들어갈 때면 친구나 지지 세력을 모아 파티를 열고 만남을 갖던 곳이다. 이곳을 보위부 군대를 동원해 들이닥쳐 관리인 등을 잡아가고 김정남의 지인들에 대한 조사까지 벌이자 김정남이 등을 돌렸다고 한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추대된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 이후 한 달 뒤 김정남은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라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 사망 이후 올 들어 김정남이 심각한 신변 위협에 시달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 검찰은 지난 10월 탈북자 위장 간첩 김영수(50)를 조사한 결과, 북한 보위부가 김정남에게 테러를 가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직접 제거하려 암살조를 파견했다는 첩보도 있다. 2009년 6월에는 김정남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중국 당국이 파악해 이를 제지시키고 북한측에 자제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앞서 2004년 12월에는 “김정남이 11월 유럽 지역 방문 중 암살 위기에 처했으나 오스트리아 정보 당국의 밀착 경호로 모면했다”라는 언론 기사도 나왔다.

해외 생활에 필요한 자금 문제도 한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 당국자와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남은 생모인 성혜림이 남긴 유산과 김정일이 보내주는 달러로 마카오의 호화 주택에 머무르며 카지노 등으로 소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돈줄을 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틈타 한국 정보기관이 해외 계좌를 통해 김정남에게 정기적으로 자금을 제공해왔다는 설도 있다. 홍콩을 거점으로 건네지던 돈이, 올 초 김정남이 싱가포르로 옮긴 다음부터는 중단되고 다른 루트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17일 보스니아 국제학교에 등교한 김정남 아들 한솔군. ⓒ 연합뉴스
아들 김한솔은 보스니아 학교 정상 등교

외삼촌인 성일기씨가 한국에 살고 있는 데다, 이모인 성혜랑씨가 이미 서방으로 망명한 점도 김정남 망명설의 배경일 수 있다.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의 오빠인 성일기씨는 김정남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김정남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나 친지의 망명이나 망명설에 노출된 삶을 살았다. 20대 중반에는 생모인 성혜림을 둘러싼 서방 망명설이 나왔다. 결국 성혜림은 김정일에게 버림받고 우울증에 심장병 등을 앓다 2002년 모스크바에서 쓸쓸히 숨졌다. 이종사촌(이모인 성혜랑의 아들)인 이일남은 1982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이름을 한영으로 바꾸고 살던 그는 199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총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이일남의 여동생 이남옥도 유럽의 한 국가로 망명했고, 이모 성혜랑도 서방으로 망명해 살아가고 있다. 이런 환경이 김정남에게 결국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서방 망명을 결심하게 한 요인이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남으로서는 아버지 김정일과의 후계 경쟁에서 밀린 뒤 오랜 시간 해외 생활을 강요받고 있는 작은아버지 김평일의 사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복동생 김정은과의 공존이 어렵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과 김정은 체제에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진 것도 한 배경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김정남의 망명이 이미 상당 수준 진행되었다는 관측과 배치되는 정황도 있다. 망명설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기된 지난 10월 말까지도 김정남의 아들 한솔(17)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제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점이 그중 하나이다. 당국자들은 “김정남이 진짜 망명을 했거나 준비 중이라면 가족부터 먼저 행방이 묘연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솔은 지난 10월15일 핀란드 TV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이를 두고 북한 당국과의 사전 조율을 통해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데도 북한측이 동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석연찮은 점도 있다. 북한 당국과 사전 협의가 있었다면 어떻게 한솔이가 김정은 통치를 ‘독재’로 표현하고 김정일을 독재자로 언급하는 것이 가능했겠느냐는 얘기이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이 한솔의 입을 통해 북한 체제와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김정은을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대선 정국·남북 관계에 메가톤급 파장  
김정남 망명설이 현실화한다면…

김정남의 망명이 현실화할 경우 남북 관계에 큰 충격파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가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택한다면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할 수 있고, 차기 정부도 남북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코앞으로 다가온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요동이 칠 수 있다.

김정남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북한 세습 정권에서 이른바 ‘백두혈통’을 이어받은 인물이다. 장손이 왕위를 잇는 봉건 왕조의 시각에서 보면 적통을 이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의 망명은 이제 막 권력 기반 다지기를 시작한 김정은 체제에 큰 타격일 수 있다. 주민들로서도 탈북 도미노에 ‘수령의 손자이자 장군님의 아들’이 가세하는 셈이 된다.

1997년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김정일의 사실상의 첫 부인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인 김정남 그리고 처형인 성혜랑의 일가가 모두 망명이나 이에 준하는 외국행을 택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따라서 ‘김정남 망명’은 평양 로열패밀리의 몰락을 알리는 전주곡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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