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용 신발로 명맥 이어가는 전통 신발의 세계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11.2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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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5대째 갖바치로 살고 있는 황해봉 가문 이야기

ⓒ 시사저널 전영기
문화재보호법 시행 50주년을 기념해 2012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전승공예전 <오래된 미래>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11월28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회에는 5대째 갖바치로 일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116호 황해봉 화혜장의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황화혜장에게 갖바치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갖바치라는 직업은 과거의 직업 중 대중문화 코드에 가장 자주 소환되는 직업일 것이다. 홍명희의 <임꺽정>부터 영화 <황진이>, 최근의 사극 <짝패>에 이르기까지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갖바치라는 직업은 자주 등장한다. 갖바치는 가죽으로 신을 만들던 사람이다. 조선 시대에 목이 있는 신발은 화(靴)라고 불렸고, 목이 없는 신발은 혜(鞋)라고 불렸다. 화혜장은 화와 혜를 만드는 장인이라는 뜻이다.

황해봉씨의 집안은 대대로 갖바치였다. 그의 할아버지 황한갑옹은 1973년 무형문화재 37호 화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았고 1983년에 별세했다. 그때 황해봉씨는 이수자 신분이었고, 화장 전수자였던 그의 부친은 할아버지보다 먼저 별세하는 바람에 화장 종목은 폐지되었다. 그러다 황해봉씨의 기능이 인정받은 2003년 황해봉씨가 무형문화재 11호 화혜장으로 지정받으며 가업을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 그의 부인과 둘째 아들이 전수자와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다행히 맥이 끊길 염려는 없게 되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 만드는 오래된 미래

“할아버지가 고종 황제 적석(평상화)을 만들었던 분이다. 고조부와 증조부는 할아버지와 30~40년 차이가 났으니까 순종이나 철종 연간에 궁궐에 신을 만들어 올렸을 것이다. 내 본적이 서울 인사동이다. 예전에 이 부근에 궁궐에 속한 장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인사동에서 태어났고 나는 수표교 초정골(을지로5가)로 이사 간 뒤 태어나서 신당동에서 자랐다.” 그의 집안이 신당동으로 이사한 뒤부터 전통 화혜에 대한 수요가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최근에 전통 화혜는 특별한 날의 의례용 신발로만 쓰이고 있다. 폐백에 남자는 목화, 여자는 당혜나 수혜를 신고 한복 파티에는 태사혜를 신는 것이 요즘 풍속이다. 이재용 삼성 사장이나 배우 전지현이 폐백에서 신었던 신발이나 최근에 별세한 문선명 통일교 교주나 구평회 E1 명예회장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신었던 신발이 그가 만든 전통 신발이다. “지금은 염습을 일률적으로 삼베옷에 짚신으로 하지만 예전 양반가에서는 습신이라고 해서 창호지나 공단으로 만든 신발을 신겼다. 요즘은 규모 있는 집에서는 활옷 같은 옷을 입히고 태사혜 같은 평상화를 신고 떠나게 한다”라고 전했다. 그의 작품이 쓰이는 또 다른 곳은 영화나 드라마이다. 영화 <스캔들>의 주인공과 드라마 <황진이>의 주인공 하지원이 그가 만든 혜를 신었다. 하지만 대다수 패션쇼나 사극에 등장하는 화나 혜는 ‘이미테이션’ 제품이라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이 일을 한 것을 후회했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내가 서른세 살이었다. 할아버지 어깨 너머로 이 일을 배웠지만 한창 나이에 에너지는 넘쳐나는데 골방에 들어앉아 혼자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 아니면 밥을 못 먹겠나, 할 게 없겠나’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까,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후회는 없다.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다행히 둘째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자기 일을 하면서 이수자로 배우고 있다. 이 일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고,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할아버지가 만든 백혜와 그가 복원한, 이방자 여사가 신던 청석과 적석이 선보인다.

ⓒ 문화재 보호청 제공


<오래된 미래>전

이번 전시는 지난 50년간 무형문화재-전통공예 분야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동하다 작고한 작가 53명, 명예 보유자 14명, 보유자 64명, 전수 교육 조교 49명 등 총 1백80명이 참가하는 전승 공예 전시 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이다. 이번 전시회의 기획자인 정준모 전시 감독은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지 50년이 된다. 우리의 전통공예가 이나마 유지되고 이어져온 것은 이 법이 역할을 한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의 ‘원형 보존’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면서 전통을 ‘박제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전통은 ‘흐르는 물’과 같다. 변화와 변신은 순리이다. 그러나 변화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전통공예’이며, 수단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쓰고 보며 만들고 의견을 내는 소통 또한 필수적이다. 이번 전시가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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