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바글바글’, 일자리 ‘가물가물’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2.11.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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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진핑 체제, 몰락하는 자영업자 살려낼 수 있을까

베이징의 한 옷가게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자고 있다. 중국의 자영업자들은 과열 경쟁 탓에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 AP 연합
중국 내륙 충칭(重慶) 시 부도심지인 싼샤(三峽) 광장의 한 옷가게에서 일하는 양리 씨(여·27). 그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차오톈먼(朝天門) 도매시장에 나가 신상품을 구매해온다. 의류 점포 종업원으로 하루 8시간 일하며 받는 월급은 1천6백 위안(약 28만원)이다. 대도시에서 한 달을 버텨 살아가기에는 빠듯한 수입이다. 양 씨는 “매달 주택 임대료에 교통비, 식비, 일상용품비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라고 푸념했다.

지금은 생활고에 찌들려 사는 양 씨이지만 3개월 전만 해도 한 옷가게의 사장이었다. 과거 6년간 뼈 빠지게 일하며 모은 돈으로 올 1월에 가게를 열었을 때 양 씨는 생애 처음 맛보는 희열에 가슴이 뿌듯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첫날부터 오르지 않던 매상은 서너 달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양씨는 “한 지하 쇼핑센터 내에 여성 의류 매장만 족히 30개가 넘어 경쟁이 극심했다. 여기에 매장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고 각종 잡비가 너무 많아 하루 12시간 일해도 줄곧 적자만 보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 7월 말 6만 위안(약 1천50만원)의 손해만 본 채 가게 문을 닫았다.

중국에서 양 씨처럼 영업허가증(營業執照)을 받아 점포를 열어 장사하는 자영업자를 ‘거티후(個體戶)’라고 부른다. 이들 거티후는 1949년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 문화대혁명 시기를 제외하고 줄곧 있었다. 혹독한 사회주의 체제도 중국인들이 가진 타고난 장사꾼 기질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의 대전환은 자영업자를 엄청나게 양산했다. 30년간 정부가 지정한 공장과 농장에서 단순하고 고단한 일만 하던 중국인들 사이에 창업 열풍이 몰아쳤다.

사료·금융·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신시왕(新希望)그룹의 류융하오(劉永好) 회장도 당시 창업 전선에 뛰어든 거티후 중 한 명이었다. 국유 기업 엔지니어였던 류 회장은 자전거와 손목시계를 팔아 1982년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시의 한 거리에 자전거 수리점을 열었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덕택에 한 달 만에 일반 노동자 월급의 10배를 벌었다. 이어 업종을 바꿔 판 메추라기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 뒤 6년간 악착같이 일해 번 1천만 위안으로 사료 생산 기업을 세워 기반을 다졌고, 오늘날에는 중국 10대 부호 반열에까지 올랐다.

중국 민영 경제의 메카 원저우(溫州)는 거티후들이 이룬 최대 성과이다. 윈저우는 저장(浙江) 성 남부에 있어 중국 내에서 2선급 도시로 치부되었었다. 비좁은 땅에 인구는 많고 부존자원이 거의 없어 살기도 척박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을 원저우 사람들은 강한 의지와 근면, 특유의 장사 수완, 뛰어난 손재주로 극복했다.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시내 골목골목의 가게에서 쏟아져 나온 상품은 1980년대 저장 성과 중국 전역을 차례로 석권했다. 1990년대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 이름을 달고 세계 시장을 잠식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는 라이터는 지금도 거티후가 운영하는 점포와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차이니즈 드림 붕괴 조짐 보여

금세기 들어서도 거티후의 활약은 이어졌다.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중국 내 자영업자 수는 3천6백여 만명에 달해 전년에 비해 8.5% 늘었다. 1978년 10만개에 불과했던 거티후가 30여 년 만에 3백60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이들이 고용하는 종업원 수도 7천4백만명을 넘어섰다. 등록된 자본금은 무려 1조5천억 위안(약 2백62조5천억원)에 달했다. 특히 2009년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 내수 경제의 발전을 지탱했다.

지난 3~4년간 거티후의 숫자가 꾸준히 늘어난 것은 고학력자의 취업난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중국 고용 시장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 하지만 고급 인력 시장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대졸자의 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대학 졸업생 수는 2008년 5백59만명에서 2009년 6백11만명, 2010년 6백31만명, 2011년 6백40만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올해 대졸자는 6백80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도시에서 생겨나는 신규 사무직 일자리 수는 2백50만개에 그치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올해 대졸자 중 1백50만명이 실업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대졸자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방 정부도 대졸자 창업에 대해 세금 및 부담금 감면, 무료 직업훈련 등 각종 지원을 잇달아 내놓았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는 중국에서 새로운 창업 붐을 일으켰다. 고객의 성별과 세대, 취향에 따라 장사하는 신세대 거티후도 등장했다.

겉으로 보이는 자영업 경제의 성장세와 달리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이전보다 늘어난 자영업자의 숫자는 업종·제품별로 치열한 경쟁을 불가피하게 했다. 이는 쇼핑센터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기존 거티후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신세대 거티후나 다를 바 없었다. 특히 가파르게 뛰어오르는 최저 임금은 점원 고용을 주저하게 만들어 사장이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하도록 한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과로와 장시간 노동에다 불규칙한 식사 습관 및 휴식 부족까지 더해져 현기증, 두통, 근육통을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목숨을 잃는 거티후까지 생겨났다. 지난 7월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에서 1인 쇼핑몰을 운영하던 20대 여성 아이쥔은 잠을 자다 갑자기 숨졌다. 원인은 열악한 노동 환경이 부른 과로였다. 대졸 창업자였던 아이쥔은 다른 점주들처럼 종업원 없이 혼자 제품 구입부터 사진 및 설명 업로드, 고객 상담, 배송까지 처리했다. 현재 타오바오 1인 쇼핑몰과 같은 인터넷 쇼핑몰 창업은 지난 수년간 자영업자 증가세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정보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타오바오에만 6백만개 이상의 1인 쇼핑몰이 등록되어 있다. 1인 쇼핑몰 간의 경쟁은 아주 치열하다. 하루에 1만개의 점포가 새로이 등록되고 1만개가 폐업한다. 극심한 경쟁 속에 여전히 큰 세금 부담과 어려운 금융권 대출은 자영업자를 몰락의 길로 내몰고 있다. 거티후 경제의 산실인 원저우도 흔들리고 있다. 2009년 이후 문을 닫은 사영 기업만 1천개에 달하고 올 들어 하루 100개꼴로 사채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채를 갚지 못해 도산하거나 사장이 야반도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수치상으로도 잘 드러난다. 지난 9월까지 중국 정부가 거둔 개인소득세 수입은 12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까지 자영업자에게 물린 개인소득세는 전년 동기보다 24%나 감소했다. 이는 일반 노동자에 물린 급여분의 감소율 16.7%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거티후의 성공 신화가 무너지면 극심한 빈부 격차 속에서 작은 희망의 빛이 되어주었던 차이니즈 드림이 붕괴된다. 중국인은 누구나 ‘내 가게를 열어 사장이 된다(開店當老板)’는 소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 거티후는 장사를 해서 돈을 번 차이니즈 드림의 주역이었다.

거티후가 되어서도 돈을 못 벌게 되면 일반 중국인은 달리 성공할 방도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충칭 대학의 한 교수는 “중국에서는 공무원이 되거나 국영기업에 들어가려면 권력이나 돈이 있는 부모가 받쳐줘야 한다. 문제는 그런 힘 있는 배경을 가진 중국인은 극소수라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이 들어선 시진핑 체제가 앞으로도 13억 중국인들을 돈벌이 전선으로 내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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