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인사 직계 라인이니 걱정 마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11.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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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기록에 나타난 ‘제일저축은행 수사 무마 청탁 의혹’ 전말

김광준 검사(오른쪽)는 김병화 전 인천지검장(왼쪽)과 가까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제일저축은행의 유동천 회장은 1만1천여 명의 고객 명의를 도용해 1천4백억원대의 불법 대출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지난 10월12일 1심에서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중 고양터미널 사업 불법 대출 사건은 제일저축은행이 개별 차주에 대한 대출 한도 초과 금지 규정을 어기고 고양터미널 사업 시행사에게 6백억원을 불법 대출해준 사건이다. 문제는 이 사건을 수사할 당시 제일저축은행이 검찰에 수사 무마 청탁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대검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의 수사 기록에는,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제일저축은행 수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진술이 여러 군데서 드러나고 있다.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는 김병화 전 검사장

제일저축은행이 수사 무마를 청탁한 제1 당사자로 지목된 것은 바로 검사장을 지낸 김병화 전 인천지검장이다. 지난 7월께 열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과 대검 합동수사단(합수단)의 수사 결과를 종합하자면 “유회장이 박 아무개 재경태백시민회장을 통해 제일저축은행 고양터미널 사업 불법 대출 수사가 확대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며 김 전 검사장에게 청탁했다”라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 2011년 3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제일저축은행의 고양터미널 사업 불법 대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용두사미였다. 고양지청은 같은 해 5월, 6백억원을 불법 대출해준 대가로 상품권 1억4천만원어치를 받은 제일저축은행 전무 유 아무개씨와 유씨에게 상품권을 전달한 업체 대표 공 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고양지청은 수사 결과 발표 하루 뒤 제일저축은행에서 1천6백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가는 ‘뱅크런’이 발생하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은 제일저축은행 임직원 등의 개인 비리에 한정된 것이었고, 전반적인 부실·불법 대출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하고 있지 않다”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검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의 수사 결과는 달랐다. 합수단은 유회장의 1천4백억원대 불법 대출은 물론, 박씨가 김 전 검사장을 통한 수사 무마 청탁 대가로 수십억 원의 이익을 얻은 사실도 추가로 밝혀냈다. 박씨는 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 수재)가 인정되어 지난 7월20일 징역 1년과 추징금 2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해 인사청문회 당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고양지청의 수사를 막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 누군가는 수사를 막을 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수사 청탁 의혹으로 결국 대법관에서 낙마한 김 전 검사장은 박씨의 진술 조서에 모두 39차례 나온다. 물론 정확히 그의 이름 석자가 명시되지는 않는다. 박씨는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라는 표현을 썼다.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와 중학교 선후배 간이어서 친하다”라는 진술도 찾아볼 수 있다. 고양지청이 제일저축은행을 수사할 당시 김 전 검사장은 의정부지검장이었고, 김 전 검사장과 박씨는 강원도 태백의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수사 관계자들은 의정부지검의 고위 관계자가 김 전 검사장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수사관 ; 피의자(박씨)는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유전무의 고양지청 사건(고양터미널 불법 대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지요?

박씨 ; 네, 있습니다.

수사관 ; 피의자는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요?

박씨 ; 네, 있습니다.

수사관 ; 피의자는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2천만원을 유전무의 고양지청 사건 관련하여 받은 것이지요?

박씨 ;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와 교제비로 받은 것이 맞습니다.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받은 2천만원에 대하여는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한 푼도 준 적이 없이 저 혼자 태백시민회 산악회 경비 등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수사관 ; 그런데 지금까지 왜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 교제비 명목으로 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갑자기 인정하게 된 건가요?

박씨 ; 그 전까지는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그분에게 미안해서 제가 지금까지 극구 부인한 것인데, 사실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사건을 알아봐달라고 한 것도 밝혀져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이제는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수사 기록에서 나타난 것처럼 박씨는 김 전 검사장에게 부탁 전화를 한 것은 인정했지만, 금품을 전달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전 검사장 역시 “박씨가 전화를 해서 (제일저축은행 수사 무마) 관련 얘기가 오면 바로 끊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검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의 수사 기록 일부. ⓒ 시사저널 임준선

김검사 등 3인 하얏트호텔 회동 밝혀질까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검사가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고양지청 차장검사’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관련 수사 기록에는 박씨가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의정부 고위 관계자의 직계 라인이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언급한 내용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진술은 수사 기록 내내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 즉, 박씨는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수사 무마 청탁을 하면, 그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가 제일저축은행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고양지청의 차장검사에게 힘을 써줄 수 있다”라는 점을 제일저축은행측에 강조했던 것이다. 이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바로 김광준 검사이다. 김검사는 2010년부터 고양지청 차장으로 근무했고, 김 전 검사장도 같은 해 의정부지검장이 되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00년에 나란히 대구지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도 갖고 있다. 또한 둘은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선후배 간이기도 하다.

 

수사관 ; 진술인(제일저축은행 유전무)은 2011년 3월31일 경기도 광주시 희덕동 땅에 설정된 근저당권(채권최고액 95억원, 담보대출 80억원)을 피의자(박씨)에게 임의로 해지해준 사실이 있지요?

유전무 ; 네, 그렇습니다. 피의자와 유동천 회장님은 아주 가까운 사이이며 제가 그 무렵 고양지청에서 수사를 받고 있어 의정부지검 고위 관계자와 친분이 두터운 피의자에게 고양지청 사건을 잘 처리하도록 부탁을 한 것 때문에 피의자에게 근저당권을 임의로 해지해준 것입니다.

수사관 ; 당시 박씨가 진술인으로부터 사건 청탁을 받고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유전무 ; 박씨가 저에게 고양지청 부장인지 차장검사가 의정부검찰청 고위 관계자의 직계 라인이라고 하면서 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수사관 ; “고양지청 부장인지 차장검사가 의정부 고위 관계자의 직계 라인이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나지요?

유전무 ; 예, 차장검사입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2011년 2월께 박씨의 통화 목록을 주목하고 있다. 당시 박씨가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에게 연락을 취한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다. 좀 더 상세한 첩보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당시 박씨와 김검사, 유진그룹의 유경선 회장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자리에서 김검사가 유진그룹에 3백억원 상당의 신용대출을 해줄 것을 박씨, 즉 제일저축은행측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현재 수감 중인 박씨를 다시 한번 조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만약, 이 회동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김검사는 수사 무마를 대가로 제일저축은행의 부실 대출을 알선한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양지청의 제일저축은행 수사 당시 김 전 검사장과 박씨는 수십 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 전 검사장은 단 한 차례의 조사도 받지 않았다. 당연히 김검사도 조사를 받았을 리 만무했다. 특임검사와 경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제일저축은행 고양터미널 불법 대출 수사 무마 의혹을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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