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진창에 빠져 멈춰버린 K2 전차
  • 조해수 기자·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2.11.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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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K2 전차 개발비 횡령 사건’ 무혐의 처리… ‘봐주기 수사’ 의혹

대한민국 육군의 차기 주력 전차인 ‘K2 전차’를 두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연합뉴스
K2전차는 일명 ‘흑표 전차’로 불리며, 헬기 요격 능력까지 겸비한 대한민국 육군의 차기 주력 전차이다. ‘한국형 차기 전차(KNMBT)’ 사업의 하나로 1995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약 2천4백억원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당초 2010년 야전에 배치되었어야 할 K2전차의 양산 시점은 2년이 넘도록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K2전차를 둘러싼 온갖 비리 실태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K2전차 개발비 횡령 사건’이다. 지난 2011년, 파워팩 중 엔진의 개발을 맡은 해당 업체가 국가 지원금 중 일부 금액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새롭게 밝혀졌다. 이를 놓고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들어온 제보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10일 ‘해당 업체가 2005~2010년에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약 3백70여 억원을 지원받아 흑표 전차 엔진을 개발하면서, 회사 자체 판매용 엔진에 사용된 부품이나 연료비, 인건비 등을 흑표 엔진 연구·개발에 사용한 것처럼 속여 일부 금액을 편취하고, 이를 다시 초도 양산 계약(100대 분)을 하면서 원가를 부풀려 또 다른 일부 금액을 편취했다’라는 내용의 제보가 권익위에 접수되었다. 이 밖에 해외 연수 중인 직원 10명의 인건비도 허위 청구되었다는 혐의도 제기되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제보자가 관련 내용이 담긴 컴퓨터 자료를 화면 캡쳐 방식으로 확보해, 확실한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익위 “제보 확인 결과, 수사 필요성 제기”

권익위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 지난해 5월16일 위원회 의결을 거쳐 대검과 방위사업청에 이 사건을 각각 이첩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본 위원회에서는 흑표 전차 엔진 개발 정부 지원금 편취 의혹 등을 부패 신고로 접수해 확인한 결과, 신고자가 제기한 내용에 대해 수사와 함께 관련 기관의 행정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대검과 국방부(방사청)로 각각 이첩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은 지난해 6월29일 국회에 제출한 국방위 답변 자료에서 “검찰 수사 결과에 적극 협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규에 의거해 부정당 업자 제재 및 부당 이익금을 환수하는 조치를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대검은 이 사건을 인천지검 특수부에 배당했다. 인천지검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수사 시작 1년여 만인 올 8월16일 인천지검은 권익위에 수사 결과를 접수하면서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와 관련 해당 업체의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 모든 의혹이 해소되었다. 이미 끝난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권익위와 방사청이 상당한 혐의가 있다고 본 사안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하자 제보자는 즉각 반발했다. 인천지검의 수사 결과가 통보되고 1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29일, 제보자는 조사 결과에 대해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지난 9월10일 대검에 조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대검이 이에 대한 답변을 보내온 것은 두 달이 지난 후인 지난 11월9일이었다. 대검은 인천지검 설명 요구 답변서를 권익위에 접수했다. 권익위는 신고자 신변 보호·비밀 보장 등의 이유로 검찰 답변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검과 인천지검 역시 “관련 사항에 대해 밝힐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당시 인천지검장은 김병화 전 검사장이었다.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되면서 김 전 검사장이 새롭게 구설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은 무혐의 처분의 이유를 듣기 위해 11월22일 김 전 검사장의 자택까지 방문하는 등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결국 이에 대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권익위에 제보된 내용이 상당히 자세했고, 권익위의 조사도 충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인천지검에서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 권익위와 대검 쪽을 통해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을 방사청에서도 조사하고 있다. 만약 방사청 조사 결과가 검찰 조사와 달리 혐의점을 입증한다면, 검찰 역시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파워팩 문제 놓고 정부-업체 이전투구

K2전차의 핵심 기술인 파워팩(엔진+변속기)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었다. 지난 4월 방사청은 K2전차의 2013년도 양산분인 100대에 한해 파워팩을 독일로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 11월16일 감사원은 방사청 사업 실무자가 해외 파워팩의 결함은 축소하고 국내 개발 파워팩의 결함은 부풀리는 식으로 부당하게 업무를 수행해 해외 파워팩에 유리하도록 했다면서 관련자를 징계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발맞춰 기획재정부는 감사가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올해 전차 생산에 배정된 예산의 거의 전부인 1천9백97억원의 집행을 보류했다. 이에 따라 전차 양산을 기다려온 1천100여 개 전차 협력업체와 4만명 직원들의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사업이 더 지연되면 업체 도산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애초 방사청 결정대로 해외 파워팩 도입이 재결정된다면 이번에는 정부를 믿고 국산 파워팩 개발에 참여해온 국내 업체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국회는 내년도 전차 양산 예산에 대해 방사청의 재결정 여부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그동안 정부와 업체가 막대한 혈세와 노력을 쏟아부어 구축한 한국형 전차의 생산 기반이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자동차보다 전차를 먼저 생산한 나라이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 시대의 기계와 설비 기술을 일구어왔다. 전차는 단순한 군의 무기 체계에 국한되지 않는 우리의 자존심이자 국격이다. 그런데 파워팩 국산화 문제로 지난 3년 동안 업체와 정부 기관끼리 이전투구를 벌이다가 전차 생산 전체가 공멸의 위기를 맞는 지금의 사태는 세계 13위 경제 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원시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하다. 이미 지난 2008년에 전차 체계 개발을 완료하고도 그 구성품을 국산으로 할 것이냐, 해외에서 도입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하느라 일손을 놓고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감사에서는 현역 장성인 방사청의 실무자에 대해 “계급을 강등하라”라는 징계 요구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장군은 “차라리 군복을 벗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장군의 계급이 강등된다는 상식 밖의 징계 요구는 감사원의 감사에 감정이 실린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이런 식이라면 2014년 전차 양산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형 전차는 총체적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2010년에 야전에 배치되었어야 할 전차가 아직도 이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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