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지면 안 되는데…” 살얼음판 지하철 서점
  • 윤고현 인턴기자 ()
  • 승인 2012.11.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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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업’인데 ‘수익률’에서 밀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동네 서점이 없어서 불편한 마당에 지하철 서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면 교보·영풍처럼 큰 서점을 가야 하는데 그 근처에 사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방향에 있는 지하철 서점에서 잡지를 산 한 30대 초반 회사원의 말이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는 한국 여행을 온 일본인 케이 무사시 씨(24)가 잡지를 한 아름 산 뒤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 자주 온다. 올 때마다 길을 찾기 쉬워서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지나가다 내가 좋아하는 K팝 가수들이 커버로 나오면 기념품으로 사곤 한다. 오늘은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몇 권 더 샀다”라고 말했다.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이 시작된 후 1986년부터 지하철에서 서점을 운영해온 ‘한우리문고’는 26년간 지하철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그런데 이 지하철 문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1986년부터 1~5호선에서 총 1백23개 점포로 시작했으나 현재 1~4호선 50개 점포만 남아 있다. 패션·액세서리점, 카페처럼 수익률이 높은 상점들이 속속 지하철에 입점하면서 점포를 얻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09년 전자 입찰로 방식이 바뀐 뒤에는 임대 입찰 경쟁에서도 서점끼리가 아니라 ‘무제한 임대 경쟁 입찰’ 방식이 되었다. 임대료도 이전 월 14만원에서 42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낮은 마진에서 임대료, 전기료, 물류 배송비, 소모품 비용을 빼고 나면 수수료로 임금을 받는 각 점포 판매원의 월 수입은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우리문고 엄철호 이사는 “서울메트로측에서 수익성이 낮아서 한우리문고를 없앨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메트로 부대사업팀 담당자인 손기동 대리는 “현재 어떤 계획도 없다. 특별히 지하철 서점을 철거한다는 방침을 정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무제한 임대 경쟁에 임대료도 껑충

한우리문고는 직원 약 62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엄철호 이사는 “판매원들의 평균은 60.3세 여성들이다. 4인 가족으로 보면 2백40명 정도는 한우리와 동고동락하는 셈이다. 지하철에서 한우리 매장이 사라지면 회사 자체도 사라진다”라고 밝혔다. 홍대입구역 지하철 서점에서 책을 판매하는 허인선씨(61)는  “우리 나이가 되면 마땅히 일할 데가 없다. 서점 일은 재미있다. 책도 계속 읽으면서 뇌를 깨우니 좋다”라고 말했다. 지하철 서점이 줄어드는 상황에 대해서는 “(서울)메트로가 적자 때문에 상업지구를 많이 개발했다. 그런데 밥만 먹고 살 수 있나. 이런 서점도 필요하다.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책을 살 수도 있겠지만 다들 바쁘게 살지 않나. 지나가다 흥미로운 책이 보이면 안 사보던 책도 사게 된다. 또 요즘 K팝 가수들이 커버에 나오면 외국 사람들은 몇십 권씩 사간다. 그게 문화적 힘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우리 유재홍 대표이사는 “서점은 임대 수익이 많지 않다. 수익을 많이 내면 당연히 임대료도 많이 내겠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다. 적자가 나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자부심으로 문화 사업 가치에 우선을 두고 경영을 해왔다. 영업장만 있으면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 등 4개 부처는 2008년 6월부터 전국 각 시·도와 공동으로 ‘독서 문화 진흥 시행 계획’을 수립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엄이사는 “문광부 같은 정부 부처에서 (지하철) 서점 임대료는 무료로 해주는 등의 지원을 좀 해주면 좋겠다”라며 절박한 심정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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