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변수’ 대선 판도 태풍의 눈
  • 감명국·안성모·이승욱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11.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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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안철수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 선언이었기에 파장은 컸다. 하지만 ‘감동 단일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민주당은 왠지 찜찜한 표정이고, 새누리당은 썩 나쁘지만은 않은 분위기이다. 안후보는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안철수 변수’가 대선 정국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안후보 지지층의 이탈 현상이 이번 대선 승부의 분수령이 될 듯하다. 문후보측은 이탈 표를 막기 위해, 박후보측은 이탈 표를 잡고자 안간힘이다.

 

11월23일 밤 안철수 후보가 서울 공평동 선거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후보를 사퇴한다고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단일화는 이루어졌다. 하지만 ‘감동 단일화’ 시나리오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 성사에 성공했지만, 왠지 찜찜한 표정이다. 반면 내심 ‘결렬’을 기대했던 새누리당은 아쉬워하면서도 분위기는 썩 나빠 보이지 않아 대조적이다. 후보 등록일을 눈앞에 두고 단일화 협상 마무리 시한 초읽기에 몰린 11월23일 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느닷없이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결국 18대 대선은 ‘박근혜 대 문재인’의 맞대결을 통해 승부를 결정 짓게 되었다. 유력 두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는 2002년 16대 대선에 이어 두 번째이다.

10년 전에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단일 후보를 선출했다. 노후보가 정후보를 간발의 차로 제쳤다. 정후보는 승복했고, 노후보의 선거 지원 유세에 동참했다. 비록 선거 하루 전날 정후보가 갑자기 노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노후보는 단일화 이후 여세를 몰아 선두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물리치는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당초 단일화 협상에 나섰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역시 저마다 10년 전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다. 단일화 이후 두 후보가 나란히 손잡고 전국을 돌면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제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자구도는 야권 필승, 3자 구도는 여권 필승’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민주당 “안후보 너무 압박했다” 자성론도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안철수 양측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 ‘통 큰 양보’는 고사하고라도 서로를 배려하는 협상 자세도 보여주지 못했다. 욕만 안 나왔을 뿐, 거의 막말 수준의 험한 공방전도 오갔다. “이렇게 가다가는 설령 단일화를 성사시키더라도 상처뿐인 단일화가 될 것이다”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두 후보가 최종 담판으로 단일 후보를 결정한 채 서로 손잡고 나오는 것뿐이다”라는 절박한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안후보 혼자서 기자회견장에 나섰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새 정치를 실현시킬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냥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라고 말하는 일방적인 사퇴 선언이 연출되고 말았다. 야권으로서는 가장 볼썽사나운 모양새의 단일화 과정을 연출한 것이다.

안후보의 예상치 못한 후보 사퇴 발표에 문후보측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결과적으로 문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단일화 협상에서 안후보를 너무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소 불리한 방식으로 진행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통 큰 맏형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지지율 상승 추세로 보았을 때 안후보측 안으로도 한번 해볼 만한 승부였는데,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쳐 고집불통의 이미지만 심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 모든 관심은 기존 안후보 지지층의 움직임에 쏠리고 있다. 대다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1+1=2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1.7 또는 1.8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야권은 단일화 효과를 통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즉, 단일화 이후 이탈층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 분석을 통해서 문후보로 단일화되었을 때 안후보 지지층의 이탈 현상이 안후보로 단일화되었을 때 문후보 지지층의 이탈 현상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문후보 지지층은 전통적인 진보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로 구성된 반면, 안후보 지지층 가운데에는 기존 정치권에 실망감을 느낀 중도 무당층이 많았다. 따라서 새 정치를 표방하는 안후보가 사퇴할 경우 안후보 지지층이 아예 투표를 하지 않거나 오히려 박근혜 후보 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문후보 지지층은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더 크기 때문에 안후보 쪽으로의 표 결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안후보측이 단일화 협상 마지막까지 ‘적합도’보다는 ‘가상 대결 지지도’에 집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1월18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박근혜 후보 비전 선포식’ 행사에 참석해 말춤을 추고 있다. ⓒ 연합뉴스
새 정치 기대하는 무당층 이탈 움직임은?

안후보가 결국 후보를 사퇴함에 따라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새 정치에 대한 기대를 걸었던 안후보 지지층 중 중도·무당파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이번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안후보는 “이제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이다”라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뱉은 말의 행간에는 “문후보가 전혀 양보를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양보할 수밖에 없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이것이 안후보 지지층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후유증이 제법 오래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후보가 곧바로 “안후보와 안후보 지지자에게 미안하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안후보 지지층 가운데 이탈 현상이 꽤 생길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사퇴로 안후보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문후보가 더 많은 것을 잃은 듯한 모습이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단일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박후보 쪽만 유리하게 되었다”라고 평했다.

반면에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당장 문후보의 지지율이 요동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결국 단일화에 따른 컨벤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안후보의 사퇴로 일부 실망해서 이탈하는 층도 나타나겠지만, 새로 유입되는 층도 생길 것이다. 단일화 전에 나타난 ‘박근혜 대 문재인’의 가상 양자 구도 지지율에서 문후보가 조금 더 상승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당장은 양측의 갈등에 따른 봉합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이 가면 모든 흐름은 박후보와 문후보 두 사람에게 쏠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야권 성향 지지층은 문후보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라며 “안후보가 ‘함께 손잡고 나가자’는 문후보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어렵고, 또 거절할 이유나 명분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단일화 효과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11월14일 부산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직접 구입한 광어를 들어보이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새 정치’ 아이콘 된 안철수, 영향력 여전

문후보가 안후보 지지층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향후 안후보와 어떤 관계를 형성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안후보가 사퇴를 하더라도 문후보와 만나서 사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양보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는 문후보가 나서서 빠른 시일 내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공동정부론 약속을 지키는 등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문후보가 정권 교체를, 안후보가 정치 개혁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론도 제기된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안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대여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안후보 지지층을 민주당이 설득하는 과정이 남은 셈이다. 안후보가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정치 개혁을 실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민주당이 만들어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제 대선은 20여 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10여 명이 넘는 숱한 잠룡들이 뜨거운 혈전을 벌여왔던 대권 레이스는 이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각축전으로 판가름 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선 정국의 핵심 변수로 당분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인물은 후보직을 사퇴한 안철수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관건은 문후보 쪽에서 안후보를 얼마나 꼭 끌어안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문후보가 당초 제안했던 ‘공동정부론’이나 ‘책임총리’의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얘기가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 안후보는 ‘새 정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안철수 변수’가 이번 대선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이다.

박근혜 후보측 역시 안후보의 ‘새 정치’에 부합하기 위한 다양한 공약과 정책들을 쏟아낼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 방황하는 안후보 지지자들을 최대한 끌어당기겠다는 전략이다. “후보 사퇴가 안후보로서는 결코 나쁠 것만은 아닌 또 하나의 기회이다”라는 말들도 그래서 들려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선 정국의 최후 진검 승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진짜 정치인’으로 거듭난 안철수 
대선 후보 전격 사퇴한 ‘안철수의 생각’은?

안철수 후보가 11월23일 갑자기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안후보는 그동안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양보 없는 단일화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런 그가 대권 도전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후보가 대선 후보직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오히려 그의 향후 정치적 입지는 넓힐 여지가 많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루한 단일화 협상으로 인해 이탈할 수 있는 자신의 기존 지지층과 단일화 지지층을 동시에 다잡을 정치적 명분을 쌓을 수 있는 선택이라는 의미이다. 

일단 안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그동안 표방해왔던 ‘아름다운 단일화’에는 흠집이 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안후보의 후보 사퇴로 인해 일정 정도 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안후보가 아름다운 양보를 했다기보다는 문후보와 민주당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는 사퇴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야권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당초 예상보다는 저조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자칫 ‘반쪽짜리 단일화’로 인해 정권 교체가 수포로 돌아갈 경우, 안후보로서도 책임론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문후보 지지자뿐만 아니라 안후보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공산이 큰 셈이다. 

하지만 안후보의 후보직 사퇴 카드는 “더는 잃을 것이 없다”라는 판단에 기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이상 야권 단일화가 지루하게 진행될 경우,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해온 그의 정치적 명분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21일 단일화 TV 토론에서 문후보에게 뒤처졌다는 여론의 향배가 드러난 것도, 문후보와의 ‘정면 승부’보다는 향후 입지를 모색하는 전략으로 급선회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안후보의 의중은 문후보와 민주당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면서도 정권 교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후보 사퇴 기자회견 문구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안후보가 통 큰 양보를 한 만큼 안후보가 고집해온 정치 개혁안에 대해 문후보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안후보의 사퇴는 최종적으로 본인이 결심했다는 전언이다. 주변에서는 모두 말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따라서 안후보의 결심을 굳히게 만든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일종의 자기 완결주의와 같은 안후보의 성격적 특성으로 보인다. 자기 만족이 안 되면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는 게 그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한동안 안후보측과 거리를 두었던 ‘멘토’ 박경철 신세계연합의원 원장이 최근 들어 다시 안후보 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도 주목된다. 캠프 주변에서는 “박원장에 대한 안후보의 신뢰는 의외로 꽤 큰 듯하다”라는 말이 들려온다. 안후보의 고민에 대해 박원장이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결국 안후보가 후보 사퇴를 선언했지만, 문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는 소극적이더라도 가시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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