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방석 앉은 금융지주 회장님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11.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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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운명 같이할까 … 어윤대·이팔성·강만수 등 ‘MB맨’들 교체 가능성

(왼쪽부터)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 연합뉴스
국내 금융지주회사 수장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예외 없이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점이다. 최대 지주사이면서 정부를 대주주로 두고 있는 우리금융의 이팔성 회장은 경남 하동 태생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경남 진해,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부산 출신이다. 지난 6월 마지막으로 금융지주 회장단에 합류한 신동규 농협금융 회장도 경남 거제가 고향이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연고와 맥을 같이하는 결과라는 분석이다. 금융지주 수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관여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선이 끝난 후 금융지주 회장 중 상당수가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 금융지주사에서는 정권 말기의 권력 누수 현상을 뜻하는 ‘레임덕’까지 감지되고 있다.

한동우·김정태·신동규, 상대적으로 느긋

금융권의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히는 사람들은 이른바 ‘4대 천황’이다. 어윤대 회장과 이팔성 회장, 강만수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김 전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이번 정부 들어 선임되었다. 15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면서 하나금융을 4대 금융지주 반열에 올려놓은 김승유 전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를 끝으로 지난 2월 용퇴했다. 김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이다. 다른 세 명의 금융지주 회장도 김 전 회장처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왔다. 어회장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09년부터 부실을 대폭 줄이고 1조~2조원의 순익을 매년 기록하는 초석을 놓았다. 강회장은 다이렉트뱅킹 돌풍을 일으키며 수신 기반이 취약한 산업은행을 변모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내년에 김 전 회장처럼 어떤 식으로든 물갈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동안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금융권 CEO가 대폭 교체되는 관행이 있었다.

 특히 이회장과 어회장은 이대통령의 고려대 인맥이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인연도 깊다고 한다. 강만수 회장의 경우 서울대 출신이지만 2007년 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위 간사를 맡아 ‘MB노믹스’를 입안했다. 이후 기획재정부장관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을 역임하는 등 이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했다. 이회장과 강회장의 원래 임기는 2014년 3월, 어회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MB맨들의 영향력은 정권 말기와 맞물리며 급격히 퇴조하는 모습이다. 우선 우리금융 민영화가 잇따라 좌초하면서 이회장의 힘이 빠졌다. 어회장과 강회장도 우리금융 인수·합병(M&A)에 관심을 보였지만 논란만 키운 채 손을 떼야 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신동규 농협금융 회장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평소 ‘MB맨’이 되는 것을 거부한 데다 임기도 많이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2월 신한금융 회장으로 깜짝 발탁된 한회장은 부산 출신이라는 점을 빼놓고는 이번 정권과 연결시키기 어렵다.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는 “4대 천황이니 뭐니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다”라며 다른 금융지주사를 겨냥하기도 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독자적인 CEO 승계 프로그램을 구축해 제도적으로는 한회장이 계속 연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신한금융 신임 회장은 만 67세 이하여야 하지만, 재임할 때는 70세까지 가능하다. 한회장의 나이가 64세인 만큼 최장 3연임까지 가능하다. 금융계 관계자는 “한회장이 라응찬 전 회장과 가깝지만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선 이후에도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김정태 회장과 신동규 회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회장은 지난 3월, 신회장은 6월 각각 새 CEO가 되어 임기가 많이 남았다. 특히 하나금융의 경우 정부 지분도 전혀 없다. 신회장은 뚜렷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 것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정부가 인사하는 관행은 후진적” 지적도

변수는 있다. 신한금융의 경우 ‘신한 경영권 갈등 사태’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법원 판결이 대선 직후쯤 내려질 예정이다. 신한 사태는 경북 상주 출신인 라응찬 전 회장이 전북 군산 출신인 신상훈 전 사장을 횡령 및 부실 대출 압력 혐의로 고소한 뒤 동반 사퇴한 사건을 말한다.

 김정태 회장의 경우 김승유 전 회장과 여전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승유 전 회장은 지금도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및 하나고등학교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김회장은 여당 의원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규 회장 역시 이번 정권 때 CEO로 낙점된 것이 부담이다.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농협 노조는 출근 저지 투쟁까지 벌였다.

한편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간 기업 CEO를 교체하는 관행이 매우 후진적이라는 점을 제기하고 있다. 올 초까지 금융투자협회장을 지낸 황건호 서울대 초빙교수가 최근 한 강연에서 ‘관치 금융’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교수는 “미국에서 씨티은행장을 뽑는 데 정권의 눈치를 보던가요? 정부가 관여해 뽑은 CEO는 단기 업적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에 투명하게 열어두고 공개 경쟁을 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새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 관여할 경우 금융지주 및 은행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국가적인 금융 리스크를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더욱이 국내 금융지주사의 실적은 악화 일로이다. 올 상반기까지 선방했던 영업 실적은 3분기부터 급락하고 있다. 우리·KB·신한·하나금융의 3분기 순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평균 20% 정도 감소했다. 저금리와 경기 침체, 가계 및 기업 부실을 감안할 때 금융권 불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가도 6개월 전에 비해 10~20% 하락했다.

정권 말기가 되면서 일부 금융지주에서는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팔성 회장이 긴급 제안을 통해 개발한 하우스푸어 대책은 실제 시행 뒤에도 신통치 않은 실적을 내고 있다. 우리은행을 통해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 제도를 선보였지만 은행원들조차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2금융까지 걸친 다중 채무자가 문제인데, 우리은행만의 제도로는 하우스푸어에게 혜택을 주기 어렵다”라고 못박았다. 이회장이 숙원으로 추진해온 우리카드 분사 역시 번번이 우리은행의 반대에 부딪혀왔다.

어윤대 회장은 수개월째 ING생명 한국 법인 인수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일부 사외이사가 인수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서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정치권과는 하등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금융권이 대선의 영향을 받는 것은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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