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왜 광주를 한 맺히게 만들었나, 이 말이여”
  • 윤고현 인턴기자 ()
  • 승인 2012.12.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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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피해자 초청 <26년> 시사회 동행 취재

지난 11월27일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관한 영화 시사회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 가족들이 초청되었다. ⓒ시사저널 전영기
‘광주 트라우마센터’는 지난 11월27일 광주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26년>의 시사회를 가졌다. 이날 시사회에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 25명이 초청되었다. 

 “아직도 잠을 잘 못 자. 꿈에라도 ‘전가(전두환 전 대통령)’가 나타나면 피를 토할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올라서….” 시사회장에서 만난 5·18 피해자 이 아무개씨(75)는 32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영화 <26년>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의 자녀들이 26년이 지난 시점에서 법이 응징하지 못한 학살의 최고 책임자를 단죄한다는 내용의 액션 복수극이다. 만화가 강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개인 9천4백20명, 9개 단체, 35명의 개인 투자자 등 모두 1만5천명의 두레 회원이 십시일반 제작비를 마련해 만든 영화이다. 

5·18 당시 아들을 잃은 손금순씨는 혼자 시사회장을 찾았다. ⓒ시사저널 전영기
“광주 시민이니까 맞았다. 그 원수를 어떻게 갚느냐”

이날 영화 초반의 애니메이션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족을 잃는 장면이 나오자, 시사회장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쏟아졌다. 한 여학생이 계엄군이 쏜 총에 등을 맞아 창자가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내 영화 속 심미진(한혜진 역)이 학살 최고 책임자인 ‘그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쏴! 죽여버려라!”라는 분노 섞인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시사회장에서 만난 이 아무개씨는 “그때 하도 심하게 맞아서 심장도 나쁘고, 자다가도 전두환 생각이 나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팍 일어나버린다. 같은 민족으로 그럴 수가 없다. 시민군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도 폭도로 몰아 두드려맞았다. 왜 맞았느냐. 광주 시민이니까 맞았다. 그 원수를 어떻게 갚느냐. 그×× 죽기를 원한다 이거다. 혈압 올라서 더 얘기 못 한다. 저것들이 다 죽어버려야지”라며 울분을 토했다.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을 보였다.

김점례씨(74)도 당시 상황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김씨는 “첫째 아들을 잃었다. 1980년 5월23일 아홉 시쯤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르다 총에 맞았다. 오른쪽 눈, 가슴, 어깨, 무릎 등 모두 네 군데 맞았더라.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시내를 하루종일 돌아다녔는데 못 찾았다. 26일 도청에 (시신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알코올로 다 씻고 보니 총알 구멍이 크더라. 정신을 잃었었다. 지금도 못 잊는다. 지금 살았으면 56세이다. 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화 내내 “쏴버려라”라고 소리를 지른 손금순씨(80)는 셋째 아들을 잃은 유족이었다. 손씨의 아들은 당시 15세였다. 손씨는 “아들이 행방불명되었다. ‘구경 나간다’고 하더니 안 들어와. 그때가 1980년 5월20일이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손씨는 “전두환 집 앞에 몇 번이나 갔었다. 집 앞에서 난동 피우면 다 잡아가서 차 안에서 구타하고 봉고차에 실어다 쓰레기 하치장이나 강원도 골짜기에 버렸다. 전두환 집에는 왜 찾아갔겠나.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내 아들 내놓으라고. 아들놈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 장가가서 아기를 몇 명은 낳았을 것이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말투는 담담했으나, 단어마다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이) 아직도 사죄 안 했다. 국가 돈만 먹고 있다. 사죄를 안 할 바에는 죽여버려야 된다. 본보기로 사형시켜버려야 그런 일이 다시는 안 생긴다. 5·18 당시 바깥에 있는 사람들만 죽인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공수부대가 들어와 밥상머리에서 밥 먹고 있는 사람도 잡아갔다. 세수하던 늙은이들도 잡아가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묻어버렸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 ⓒ청어람 제공
“청와대, 영화 투자자들에 투자 철회 압력 행사”

영화 <26년>에 대해서는 “옛날에 영화 <꽃잎>도 보고 <화려한 휴가>도 보았다. 영화를 보면 현실과 비슷해도 빠진 대목이 많았다. 우리 삶의 10분의 1도 안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 <26년>에서 바짝 쫓아들어간 게 속이 시원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손씨는 일어서면서 “말도 못 해, 광주는. 인간 대접 못 받았다. 죽어도 그 한을 다 못 풀어. 5·18 가족들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우리 자식들은 엄마 소리도 못 불러보고 죽었다. 그러니 한이 된다. 한이 맺히니 광주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안 찍어준다고 뭐라 말할 수 없다. 광주를 왜 그렇게 한 맺히게 만들었는가”라며 자신의 지팡이를 챙겨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강용주 광주 트라우마센터장과 영화에 등장한 배우 한혜진·배수빈, 당시 시민군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김공휴 5·18 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회 대변인(53), 영화를 제작한 청어람 최용배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최용배 대표는 “나도 극 중 인물 미진·주안·진배·정혁의 고통스런 삶에 슬퍼했고 가해자의 모습에 분노했다. 2008년에는 이 영화를 개봉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많았다. 촬영에 들어가려 했는데, 투자자들에게 청와대에서 압력을 행사해 투자를 철회시켰다. 연쇄적으로 투자자들이 투자를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제작이 무산되었다.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털어놓았다. 

‘광주 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고문이나 가혹 행위 등 국가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신체적 손상뿐 아니라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광주 피해자와 그 가족의 41.6%가 오랫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자살자의 비율도 10.4%로 일반인(0.02%)의 5백배에 달한다. 2012년 8월 작성된 5·18구속부상자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 46명이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기질적 뇌 손상, 우울 장애 등 정신적 후유증도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준근 광주 트라우마센터 운영지원팀장은 “광주 트라우마센터는 국내 최초의 국가 폭력 생존자를 위한 치유 센터이다.  5·18 피해자들은 울화, 울분, 분노, 자살, 죽음이 가까이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이다. 현재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40여 명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26년>을 시사회 영화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26년>은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다루었고 ‘그 사람’을 단죄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치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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