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 절세형 상품이 ‘대세’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12.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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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부동산 동반 침체…단기 상품 MMF, CMA, MMT로 자금 몰려

2009년 중소기업에서 퇴직하고 예금 이자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 성현근씨(64).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국민연금 외에 100만원 정도의 이자 소득이 있어 여유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올 들어 이자 소득이 70만원 수준으로 확 낮아졌다. 성씨는 “지난해까지는 퇴직금으로 받은 목돈을 주로 저축은행에 맡겨서 이자가 꽤 쏠쏠했다. 저축은행 몇 군데가 망하면서 시중 은행으로 옮겼는데 생활비가 너무 적어졌다”라고 하소연했다.

초저금리 현상이 예상외로 장기화하면서 예금 이자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한숨이 커졌다. 직장인들이 집을 장만하거나 자녀 교육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꼬박꼬박 불입하는 적금 금리도 곤두박질쳤다. ‘강남 부자’들이 선호하던 산업금융채권이나 중소기업채권의 수익률 역시 연 3.4% 수준에 그치면서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재테크 암흑기이다. 시중에 흘러넘치던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경영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송재문씨(41)는 최근 서울 동대문의 아파트를 팔고 전셋집으로 옮겼다. 저금리 기조 덕분에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은 줄었지만, 집값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서다. 그나마 취득세가 한시적으로 인하되었다는 이유로 매수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일부 남은 돈을 증권사 MMF(머니마켓펀드)에 넣었다. 송씨는 “전세금을 치르고 대출을 갚고 나니 3천만원 정도가 남았는데 이 돈을 맡길 마땅한 상품이 없더라. 일단 단기 금융 상품에 가입한 뒤 증시가 좋아지기를 기다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단기 금융 상품에만 돈 쏠림 현상

송씨의 사례처럼 갈 곳을 잃은 돈이 단기 상품에만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동반 침체되고 있는 영향도 크다. 대표적인 단기 상품은 증권사가 주로 취급하는 MMF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특정금전신탁(MMT) 등이다. 은행이 판매하는 MMDA(수시 입출금식 저축성 예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말 기준 MMT 잔액은 78조4천7백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3천6백억원 늘어났다. MMF 잔액은 같은 기간 9조5천억원, CMA 잔액은 3천3백억원 각각 증가했다. 10월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75%로 낮춘 달이다. 반대로 은행의 저축성 예금은 증가세를 멈췄다. 올 1월 8백18조3천억원이던 저축성 예금은 9월 8백58조4천억원까지 불어났지만, 10월에는 8백58조1천억원으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MMDA나 MMF와 같은 단기 금융 상품의 장점은 하루만 맡겨도 일정 수익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수시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지만 이율이 높은 편이다. 요즘에는 연 2~3% 정도이다. 금융회사들은 고객의 자금을 모아 하루짜리 콜론(금융권 간 단기 대출)이나 CP(기업어음), CD(양도성예금증서), RP(환매조건부채권) 등으로 단기 운용해 이익을 내는 구조이다. CMA나 MMDA의 경우 예금자보호법 적용을 받는다. 금융사가 망하더라도 1인당 5천만원까지 원리금을 전액 보장한다. 하지만 MMF는 예금자보호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MMF는 자산운용사와 제휴한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쉽게 가입할 수 있다. 판매처에 따라 수익률이 제각각이다. 운용 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결제 기능이 없어 다른 상품과 달리 자동이체 계좌로 사용할 수 없다.

MMDA는 은행 창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거래하기 쉽다. 금액이 클수록 더 많은 이자를 얹어준다. 예컨대 예치액이 5천만원 미만이면 연 2.0%, 5천만~1억원이면 연 2.2%를 주는 식이다. 요즘 가장 뜨고 있는 MMDA는 산업은행(산은)이 출시한 ‘하이어카운트’이다. 점포가 전국적으로 80여 곳에 불과한 산업은행은 새 영업점을 내는 대신 파격적인 고금리를 앞세워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다. 영업점 개설 비용을 아껴 고객에게 높은 이자를 준다는 전략이다. 산은은 올해만 6조원이 넘는 자금을 이 상품으로 끌어모았다. 산은 하이어카운트의 수시 입출금식 예금 금리는 연 3.25%이다. 시중 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임경택 산업은행 부행장은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생각해 지금 적용하는 고금리 기조를 자주 바꾸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CMA와 MMF의 경우 금리나 수익률이 매일 조금씩 변한다. 시장이 불안하거나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잠시 넣어두었다가 추후 주식이나 펀드 매수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박미희씨(42)는 2003년부터 부어온 연금 상품에 최근 한꺼번에 4백만원을 추가 납입했다. 자신이 가입한 연금의 적용 금리가 연 4.5%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저축은행 금리보다도 높아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보험 상품의 추가 납입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도 크게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데다 다른 상품과 달리 사업비(수수료)도 적게 떼기 때문이다. 보험사 상품 중에서 추가 납입이 가능한 상품은 연금저축·변액연금 같은 연금과 저축성 보험 등이다.

연금·저축성 보험 추가 납입도 ‘붐’

삼성·한화·교보 등 대형 3개 생명보험사의 보유 연금 중에서 지난해 한 해 동안 기본 보험료 외에 추가로 납입한 계약 건수는 총 19만6천6백10건이었다. 1년 전에 비해 79.1%(8만6천8백8건) 급증한 수치이다. 추가 납입 금액 역시 2010년 1천9백65억원에서 지난해 2천8백89억원으로 47%가 늘어났다.

올 들어 적극적인 보험 영업을 펼치고 있는 농협생명에서도 추가 납입 건수가 급증했다. 농협생명은 지난 3월 농협금융지주 산하의 독립 법인으로 새 출발한 회사이다. 농협생명의 연금 추가 납입 건수는 2010년 9천4백83건(7백40억원)에서 지난해 2만2천3백78건(1천5백86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추가 납입 제도가 각광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적용 금리는 연 4.5% 안팎이다. 은행권은 물론 저축은행 수신 금리보다 높은 편이다. 보험 상품에서 초기 사업비를 좀 더 많이 떼는 손보사가 생보사에 비해 0.1~0.2%포인트 더 얹어준다. 보험 상품에 추가 납입하면 수수료도 최소한만 낼 수 있다. 사업비는 모집 수당·관리 수당 등의 명목으로 보험료에서 일정액을 공제하는 비용으로, 보험사 상품의 최대 단점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연금 사업비는 가입 후 약 10년간 기본 보험료의 8~12% 선인데, 추가 납입의 경우 단 한 차례 2~2.5%만 뗀다. 보험업 감독 규정에 따라 별도 모집 수당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도에 일정액을 인출했다가 나중에 보험료를 추가할 경우 수수료가 최저 0.5%까지 떨어진다.

 다만 추가 납입액에는 제한을 두고 있다. 감독 규정은 주 계약 총 보험료 대비 두 배를 한도로 정하고 있다. 뭉칫돈이 몰릴 경우 보험사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부 보험사는 연간 기본 보험료의 두 배까지만 추가로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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